자작시

낮달을 보시라

아리박 2010. 11. 9. 14:39

낮달을 보시라 / 박영대

 

낮달을 보시라

아니 낮달이 되어 보시라

 

한때 별보다 크고 더 넓게 화려한 밤을 누리던 CEO

달빛 아래 찾아와 찬사와 아부하지 않는 이 누구 있던가.

단 며칠이 한달 내내인 줄 알고 설치다

절반이 가는 동안 밤이 새는 줄도 모르고 낯만 냈다

  

대낮이 어둡다

침침해진 바늘귀가 자꾸 헛 곳을 찌른다

스위치를 켰는데 불이 들어오지 않는다

대낮이니까

 

새들이 자기 종족인 줄 알고 날아온다

버릇없는 것들

날개 힘만 믿고 곁에 다가와 견주고 간다

 

구름도 없는 맑은 하늘에 잘도 갖다 붙였다

힘 빠져 축 처진 것을

고문으로 아니 검불로

한데 모아서 태워 버릴 달집으로

 

배추 포기에 달이 떴다 

통 찬 포기 안에 숨어서 떴다

배추쌈 싸 먹고 푸르게 숨 죽이고 있다

잔별들 윽박에 겁 질려 다 내보일 수 없는 조마조마한 행적을

배추색에 물들어 보호색이 된다

 

다만 식욕을 달래는 입으로만

물결 출렁이면 짠물 둘러 쓰고

달의 노래를 흘리고 있다

 

반나절도 안되는 동안 희미한 굴욕으로 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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