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리산방(단양)

[스크랩] 신 귀농시대 “흙에 살리라” 시골로 가는 4050

아리박 2009. 8. 4. 10:44

대부분 고학력 … 번듯한 직장 박차고 ‘생태형 귀농’
수십 가구 집단 이주 … 은퇴자들 귀농과 달라
“행복지수 높아졌지만 생계·자녀교육이 숙제”

백창혁(49)씨는 1년 전만 해도 금융회사에서 잘나가던 간부였다. 서울대 영문과를 나와 증권사에 입사, 펀드매니저를 거쳐 자산운용사(투신)의 이사를 지냈다. 연봉도 1억원 이상을 받았다. 올 3월 그는 회사에 사표를 던지고 부인과 함께 전북 진안군 동향면 학선리의 새울터 마을로 들어왔다. 백씨는 “늘 쫓기듯 도시생활을 하면서 영혼의 목마름을 채울 수 없다는 생각을 해 왔다”며 “50살 이후 인생의 후반전은 심신을 풀어놓고 평화롭게 살고파 농촌으로 들어왔다”고 말했다.

김오수(43)씨도 지난해 8월 새울터로 들어왔다. 그는 대학 졸업 후 인천에서 직장을 다녔으며, 5년간 개인 사업을 했다. 김씨는 “아이들이 밤 늦도록 학원을 뺑뺑이 도는 것에 회의를 느꼈다”며 “주변 환경이 비슷한 도시의 아파트에 살면서 이 같은 생활구조를 바꾸기 힘들어 농촌행을 택했다”고 말했다.

전북 진안군 동향면 새울터 마을 뒷동산에서 주민 백창혁·임종찬·김오수·김웅찬·최진현(왼쪽부터)씨가 활짝 웃고 있다. [진안=프리랜서 오종찬]
새울터 마을에는 현재 백씨 가족을 포함해 28가구 100여 명이 옮겨와 살고 있다. 모두가 서울·인천·대전 등 도시에서 왔다. 대부분 기업체 임직원, 교사, 대기업의 연구원, 사업가 출신이다. 연령은 30~50대가 주류다. 박사학위 소지자가 10명이나 된다.

이들은 2~3년 전부터 귀농운동본부와 인터넷 카페를 통해 만남을 갖고 친목을 다져 왔다. 그러다 “귀농자들을 위한 전원마을을 조성하겠다”는 진안군의 제의를 받아들여 지난해 귀농을 결정했다. 진안군은 마을 부지·도로 등 기반시설을 제공했다. 주민들은 1억4000만~1억5000만원을 들여 100㎡ 크기의 주택을 짓고, 900㎡의 가구별 텃밭을 구입했다. 교사 출신인 이장 최진현(40)씨는 “내년부터 본격적으로 농사를 지을 계획”이라며 “주변의 산·들을 활용해 임산물을 가공하고 도시 아이들을 위한 산촌 유학 프로그램도 마련하겠다”고 말했다.

귀농 패턴이 변하고 있다. 고액 연봉과 번듯한 직장 등 도시의 화려한 삶을 뿌리치고 스스로 농촌을 선택하는 귀농인이 늘고 있다. 번잡한 도시를 떠나 자연과 더불어 살기를 원하는 추세를 반영해 ‘생태적 귀농자’라고 부르기도 한다.

농림수산식품부에 따르면 지난해 귀농자는 2218명이다. 지역별로는 경북이 485명으로 가장 많고 전북(385명), 경남(373명)이 뒤를 이었다. 귀농 행렬은 1997년 말 외환위기 직후 크게 증가했다. 98년 6400여 가구, 99년에는 4100여 가구나 됐다. 구조조정으로 직장을 잃고 도피처로서 농촌을 택하는 이주자들이 태반이었다. 이후 급격히 줄기 시작한 귀농자는 2001년부터 1000명 이하로 떨어졌다가 3~4년 전부터 다시 오름세를 보이고 있다.  

최근에는 평화로운 시골의 삶을 찾는 40, 50대 고학력 생태적 귀농자들이 두드러진다. 이들은 바쁘게 사는 도시생활 대신 적게 벌어 덜 쓰면서 흙을 밟고 사는 소박한 삶을 추구한다.

박용범 전국귀농운동본부 사무처장은 “자연과의 소통, 내면의 행복을 찾는 생태적 귀농자들이 눈에 띄게 늘고 있다”며 “직장을 잃고 어쩔 수 없이 농촌을 택하는 생계형 귀농이나 돈·시간 여유가 많아 목가적 생활을 그리는 전원파들과는 구별된다”고 말했다.

산세가 높고 계곡이 깊은 지리산 자락인 전북 남원시 산내면의 경우 현재 400여 명 정도의 생태 귀농인들이 곳곳에 터를 잡고 흩어져 살아간다. 장수군 계남면에는 서울·광주·전주 등에서 온 20여 가구의 귀농자들이 ‘하늘소 마을’을 꾸며 살고 있다. 컴퓨터 프로그래머로 일하다 무주군 안성면 진도리에 귀농한 안병서(50)씨는 “도시의 편한 삶은 버렸지만 자연 속에서 마음 가는 대로 사는 지금이 훨씬 행복하다”고 말했다. 나산그룹의 최고경영자(CEO) 출신으로 5년 전 장수군 장수읍 선창리에 정착한 유춘석(59)씨는 “수입은 예전에 비해 5분의 1 수준으로 줄었지만 소박한 생활 속에 행복지수는 높아졌다”고 말했다. 유씨는 6000여㎡의 밭에서 마 농사를 짓고 있다.

그렇다고 귀농이 낭만적인 것만은 아니다. 농사로 일정한 수입을 확보하는 게 제일 큰 문제다. 귀농자들은 4인 가족 기준 월 70만~100만원은 벌어야 생활이 가능하다고 말한다. 일부 귀농인들은 지자체나 사회단체에서 부업을 한다. 지자체는 이들 고학력 귀농자들을 사회복지사, 촉탁 교사, 마을 간사 등으로 활용한다. 대기업 정보기술(IT) 전문가로 활동하다 4년 전 지리산 자락 남원시 산내면 대정리로 들어온 강병규(45)씨는 주변 자연풍광을 담은 사진 촬영과 주민·관광객을 위한 갤러리 겸 쉼터를 운영한다.

자녀교육은 귀농에 가장 큰 걸림돌로 작용한다. 열악한 교육 환경 때문이다. 하지만 귀농자들은 “농촌에서 인성을 기를 수 있고 이웃과 더불어 사는 인간 형성에 도움된다”고 말한다. 새울터 마을의 김오수씨는 “아들(고 1학년)이 농촌학교로 옮긴 뒤 활발하고 자신감 넘치는 성격으로 변했다”고 전했다. 초등생 20여 명, 중·고생 5명인 새울터 마을의 경우 마을회관에 교육문화센터를 마련하고 교육 품앗이를 한다. 주민들이 전공을 살려 아이들에게 독서·영어·음악을 돌아가면서 가르치고 있다.

출처 : 횡성주말주택[농장]
글쓴이 : ^전원생활 귀농인^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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