석등
박영대
뒤틀린 가을에 핀 철쭉, 짓 없는 얼굴로
달 오름 때맞춰 부석사 들러 석양을 뵙는다
만삭 배흘림은 겉늙은 풍경을 그리는데
의상대사님은 지팡이 들어 오늘을 가르치시고
발등에 얹어주는 천년 등불
저리 묵직하게 한 줌의 서운함 들고 서 있다
말씀 담고 있는 탑파 길 밝히는 시좌
귀 기우려 듣고 있는 묵은 별
어둠은 그냥 두고 귀 열리는 불빛
가쁘게 몰아 쉬는 박명의 숨소리
돌아갈 곳 서두르는 마지막 재촉이라
어덕길 차마 알아차리지 못하고
하루에 지친 냉랭한 얼굴들
높고 낮음이 따로 있는 건 아니지만
바다에는 울음 그치지 않고
팍팍한 다리로 오르락 내리락
불심마저 저어 바람 앞에 깜박거리는데
세월 품고 흐르는 돌빛 눈 감은 듯 고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