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의 살아있는 말씀
박 영 대
서른한 살의 한 남자 이야기입니다
그는 애먼 고사목 하나 되었습니다
나라 밖 서글픈 북만주 하얼빈에서
하늘의 명으로
나라의 울분으로
삼천만의 원한으로
세계 지도 위에 피 한 방울 그려 넣었습니다
죄인이 죄인을 잡아 가두었습니다
죄인이 죄인을 문초하였습니다
죄인이 죄인을 심판하였습니다
죄인이 죄인을 끝내 죽였습니다
불개미들 집단에 홀로 뛰어들어
안된다고
그래서는 아니 된다고
비겁한 침묵의 세상을 향해
외칠 말을
누군가가 꼭 외쳐야 할 말을
브라우닝 권총에 장전하고
방아쇠를 당겼습니다
외침의 정의는 부정의 심장을 꿰뚫었습니다
외침의 평화는 불평등의 복부를 갈랐습니다
외침의 구국은 침략의 옆구리를 파고들었습니다
힘에 눌려서
겁에 질려서
보고도 못 본 체
듣고도 못 들은 체
당하고도 말하지 못하는
공포 살벌조차 얼어 붙은 계절
누가 누구의 손에 수갑을 채워야 합니까
누가 누구의 몸에 붉은 수의를 입혀야 합니까
누가 누구의 머리에 눈 가린 용수를 씌워야 합니까
“내 죽거든
나의 뼈를 하얼빈 공원 곁에 묻어 두었다가
우리 국권이 회복되거든 고국으로 반장해다오
나는 천국에 가서도 마땅히
우리나라의 회복을 위해 힘 쓸 것이다”
1909년 10월 26일 그는 총성으로 태어났다
그때 그는 어른이었다, 151일간의 짧디 짧은 어른
그때 그는 스승이었다, 차디찬 감옥에서 붓 한 자루로
그때 그는 군인이었다, 빼앗겨버린 총탄마저 지니지 못한
그때 그는 아들이었다, 어머니의 눈물을 속으로 삼키게 한 불효
그때 그는 지아비이었다, 결코 사랑할 수 없는 남편
그때 그는 아버지이었다, 따뜻한 손 한 번 잡아 주지 못한 아비
그때 그는 한 사람 국민이었다, 이 나라보다 더 큰 한 사람 국민
“너희는 돌아가서 동포들에게 모두 나라의 책임을 지고
국민의 의무를 다하며
마음을 같이 하고
힘을 합하여 공로를 세우고
업을 이루도록 일러다오”
시인은 시를 쓴다, 그의 영혼으로
공직자는 직무를 본다, 그의 충정으로
군인은 나라를 지킨다, 그의 결기로
회사원은 소임을 맡는다, 그의 책임으로
성직자는 기도를 올린다, 그의 순명으로
서른한 해
죽임은 아직 살아 있다
오래 살려 하지 마라
서른한 해면 충분하다
“대한 독립의 소리가 천국에 들려오면 나는 마땅히
춤추며 만세를 부를 것이다”
지금도 한 맺힌 여순 감옥에서 풀려나지 못하고
이국땅 잡초 밑에 떠돌고 있을 당신의 혼백
구사일생 건져내어 물려준 조국
후손은 진정한 광복을 알기나 하는지
아~ 아직도 지키지 못한 당신의 살아있는 말씀
아~ 안중근.
*** 이 글은 2018. 6. 16 대학로 마로니에 공원 '시가 흐르는 서울' 제 97회 호국시 낭송회에서 처음 발표하였고
2018. 6. 19 남산 안중근 기념관 아카데미에서 두번째로 발표한 글입니다
유튜브 동영상 https://www.youtube.com/watch?v=Pk_2EoKAs6w&t=8s
중국 여순 감옥에 전시된 안중근 의사 동상과 인영앞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