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리랑

[스크랩] 밤꽃향 그윽한 정선 아리랑 유적지 여량(아우라지강)

아리박 2009. 10. 20. 09:12
여량 5리 가구미(가금) 마을 - 강원도 정선군 여량면
 
강릉시 왕산면에서 닭목령을 넘어 발왕산과 노추산의 가파른 골짜기를 구비구비 돌아 나오니
옛 탄광마을 구절리가 보였다. 구절리로 가는 길목 곳곳에는 왕산(旺山)이라는 마을 지명에 걸맞게
우뚝우뚝 솟은 왕산들 투성이었다
 
왕산(旺山)과 구절리는 주변 산들이 대부분 급경사로 되어 있어
산비탈의 작은 화전들만 듬성듬성 있을뿐 너른 들판은 보이지 않는다
 
구절리에서 송천과 협곡길을 따라 20리 길을 더 내려오다 보니 너른 들판도 보이고
벼를 심은 논도 보였다. 정선땅은 논과 너른 들판을 보기가 힘든 곳이다
대부분 가파른 산등성이에 자그마한 화전들만 듬성듬성 있을 뿐이다
 
하지만 구절리에서 이곳 여량땅으로 접어드니 사정은 달랐다. 가구미(加九味)라 불려지는
여량 5리 마을에는 구절리나 정선군의 남부, 동부지역에서 봤었던 풍경하고는 또 달랐다
 
정선 아리랑의 유적지 아우라지 마을 입구 - 정선군 여량면
 
아우라지 마을 입구에는 드넓은 들판이 시원스럽게 펼쳐져 있었으며 들판 옆으로는 "정선아리랑의
유적지" 라고 새겨진 표지석도 보였다. 이 표지석이 가르키는 화살표 대로 따라 들어가면
가구미(加九味)라 불리는 아우라지 마을이다
 
아우라지마을 입구의 너른 논과 들판  
 
여량(餘量)...
뭔가 남아 돈다는 이야기다
 
이렇게 온통 사방팔방 가파른 산으로 꽉 막힌 척박한 땅에서 뭐가 남아 돌아가냐고 묻는 사람들도
있겠지만 그래도 정선땅 중에서 이곳 여량은 벼농사를 지을수도 있고 또 아우라지 강변에 넓고
기름진 들판이 있어 식량이 여유가 있었다고 한다. 그래서 붙은 이름이 여량(餘量)이란다
 
밤나무 향 그윽한 넓고 기름진 땅, 아우라지 들판
 
지금은 아우라지강에 현대식 다리가 놓여 여량역과 가구미(가금) 마을을 쉽게 오갈수 있지만 다리가
완공되기 전인 90년대 이전 까지만 해도 나룻배를 타고 건너와야 했었던 마을이 바로 이곳 아우라지
가구미 마을이었다
 
아우라지 마을의 울타리 없는 집
 
아우라지 마을에는 이처럼 울타리도 없고 문고리에 자물통도 없는 집들이 많다. 그리고 인기척도
없다. 저렇게 집을 비워두고 밭 일을 가거나 아니면 마을회관으로 마실을 가기도 한다
 

 옥수수가 잘 자라고 밤 나무꽃이 화사한 아우라지 마을

 
옥수수가 잘 자라고 밤 나무꽃이 화사한 아우라지 마을 - 정선군 여량면
 
아우라지 강변으로 내려가는 마을 골목
 
아우라지 마을 강변에는 딱히 찝어서 이야기 하자면 특별나게 볼만한 구경거리는 없다. 그곳엔 역사
적으로 알려져 있는 유적지나 유물같은 것들도 없고 그렇다고 해서 한 번 보고 탄성을 자아내게
할 만한 빼어난 경치가 있는 것도 아니다. 보이는 것이라고는 아우라지 강변에 수북하게 쌓인
자갈뿐이다. 큰 기대를 걸고 이곳에 들어 섰다가는 실망하기 십상이다
 
하지만 이곳엔 우리 민족의 오랜 정서가 배여 있는 정선 아리랑의 유적지로서 삶의 고달픔과
애환을 가락으로 승화 시킨 정선 아리랑 노래 한 토막이 전해 내려오는 곳이기도 하다
 
강원도 다운 찐덕하고 순수한 맛을 그대로 느낄 수 있는 정선 뗏사공들의
아리랑 노래 한 토막은 아직도 아우라지 강변에 고스란히 녹아 있다
 
아우라지 강변의 돌탑
  
아우라지 강변 사랑의 돌탑쌓기
 
송천과 골지천이 서로 아우러져 아우라지강이 되는 지점
 
이곳은 발왕산에서 발원하여 구절리를 지나 흘러오는 송천(왼쪽)과 태백산 줄기에서 발원하여
임계 방향에서 흘러오는 골지천(오른쪽) 합류하면서 두 강이 아우러지는 지점이다
그래서 강의 이름도 이곳에서 부터는 "아우라지강"이라 불려진다
 
아우라지강은 남한강 물 길을 따라 목재를 운반하던 유명한 뗏목터로서 각지에서 모여든 뗏사공들
의 아라리 소리가 끊이지 않았던 곳이다. 때문에 뗏사공들의 고단함과 애환이 서려 있기도 한 곳인
데 그 중 뗏배를 타고 서울로 간 총각을 기다리는 아우라지 처녀의 애뜻한 사랑 이야기 한 토막도
전해 내려온다
 
저 앞에 보이는 다리 왼쪽으로 정자가 하나 있는데 정자 옆으로는 아우라지 처녀상이 세워져 있다
그 처녀상은 아우라지강에서 익사한 처녀의 원혼을 달래 주고자 80년대 중반쯤에 세워진 동상이다 
 
아우라지 처녀 동상
 
50년대 중반쯤 혼인식날 나룻배타고 가다 물에 빠져 익사한
신부의 원혼을 달래고자 세운 동상 옆 비문에는 또 이런 글이 새겨져 있었다
 
아우라지 뱃사공아 배 좀 건네주게
싸리골 올동박이 다 떨어졌다
 
떨어진 동박은 낙엽에나 싸이지
잠시 잠깐 님 그리워 나는 못살겠네
 
이 비문에 새겨진 글씨는 저 아우라지 처녀상과 관계는 없어 보이지만 옛날 아우라지강을 사이에 두고
각각 여량과 싸리골에 살았던 처녀 총각의 애뜻한 사연을 적어 놓은 글귀처럼 보였다
 
사연인즉은 대충 이렇다
 
옛날 여량과 싸리골에서 아우라지강을 사이에 두고 서로 마주보며 살던 처녀와 총각이 있었는데
그들은 서로 깊은 사랑을 나누었다. 그러던 어느날 둘은 싸리골에서 서로 만나기로 약속을 했으나
전 날 밤 내린 폭우로 인하여 갑자기 강물이 불어나자 나루배를 띄울수 없게 되었다
 
때문에 이들은 아우라지 강을 사이에 두고 서로 마주보며 노래를 불렀다
그 노래는 지금 정선의 아리랑 중, 한 토막으로 전해지는
"아우라지 뱃사공아 / 배 좀 건네 주게 / 싸리골 올 동박이 다 떨어진다 /" 라는목이다
 
물에 빠져 익사한 신부의 원혼을 달래주고자 세운 아우라지 처녀동상 - 정선군 여량면
 
정선땅에는 수많은 아리랑 가락이 존재하고 있는데 그 내용을 들어보면
삶의 고단함과 애환을 가락을 통하여 덤덤하게 승화 시킨 듯한 느낌을 받는다
 
아우라지 뱃사공아 / 배 좀 건네주게 / 싸리골 올동박이 다 떨어졌다
떨어진 동박은 낙엽에나 싸이지 / 잠시 잠깐 님 그리워 / 나는 못살겠네
아리랑 아리랑 아라리요 / 아리랑 고개로 날 넘겨 주게
 
이것이 아우라지강 여량에서 전해 내려오는 아리랑 노래 가사의 한 부분이다
 
백이산 골짜기에 숨어 살았던 칠현비 - 정선군 남면 낙동리
 
정선 아우라지강 여량마을에서 전해지는 아리랑 가락은 뗏사공들의 삶의 고단함과 사랑에 얽힌 구
성진 가락이 많은데 비하여 정선 남면 백이산쪽의 아리랑 가락은 처연함을 넘어 비장하기 까지 한다
 
눈이 오려나 / 비가 올려나 / 억수 장마 지려나 / 만수산 검은 구름이 / 막 모여 든다 /
 
이것은 6백년전 정선 남면 백이산 골짜기에 숨어 살던 고려의 마지막 충신들이 불렀다는
아리랑의 한 대목으로서 만수산은 고려의 수도인 송도(개경)를 뜻하는 것이고
먹구름은 고려 왕조의 위기를 뜻하는 것이다
 
멸망한 고려의 수도 개경을 떠나 정선땅의 백이산 골짜기에 숨어 살았다는
김위, 변귀수, 신안, 이수생, 고천우, 김충한, 전오륜 등 7인의 충신들 !
 
이들은 비좁고 가파른 길을 스스로 선택해 백이산 골짜기에 초암을 짓고
산나물과 칡뿌리 등으로 주린배를 체우며 이런 비장한 아리랑 노래로 평생을 살았단다
 
아리랑의 어원에 대하여서는 아직도 어디에서 왔는지 누가 제일 먼저 불렀는지
 알수는 없지만 정아리랑은 " 어느 누가 내 처지를 알아 주리오 "라는 뜻에서
" 아라리 " 가 되었다는 전설을 가지고 있다
 
아우라지강을 건네주는 나룻배 - 정선군 여량면
 
80년대 까지만 해도 이 아우라지 강변에는 뱃사공이 강 건너 마을 사람들을 태워주고
그 댓가로 일년에 한 번씩 쌀이나 콩을 조금씩 받았다고 한다
 
지금은 위 사진에 보이는 교량이 놓여짐에 따라 아우라지 뱃사공도 자취를 감추었다가
다시 부활 되었는데 주로 여행객들이 이 나룻배를 이용한다. 배삯은 편도 5백원이고
운행시간은 09시부터 18시 까지다
 
아우라지강
 
구절리 방향에서 내려오는 송천(왼쪽)과 임계방향에서 내려오는 골지천(오른쪽)이 아우라져
이곳에서 부터는 강의 이름을 "아우라지강"이라 부른다
 
아우라지강을 건네주는 나룻배 - 배삯 편도 5백원
 
아우라지강에서 만난 마을 분들 
 
아우라지 강변 나무그늘에서 쉬고 있는 마을 분들
 
아우라지역 소공원에서 바라본 아우라지강
 
아우라지역(여량역) - 정선군 여량면
 
정선에 철도가 들어오기 전이었던 70년대 이전까지만 해도 이곳 여량(아우라지)은 뗏사공들이
산에서 베어온 목재로 뗏목을 만들어 서울로 향하던 산간 벽지의 강마을이었다 
 
그랬던 벽지마을이 70년대에 정선선 철도가 개통되고 기차가 들어오게 되었다
따라서 아우라지강의 뗏목들도 모두 자취를 감추었고 뗏목이 하던 역할은 기차가 대신 했다
 
아우라지역에서 차를 돌려 나가는 정선선 무궁화 열차
 
이제 아우라지역이 정선선의 종착역이 된지도 어언 5년 세월...
증산역에서 정선선 철도를 따라 숨가쁘게 달려온 기차는 이곳 아우라지역에서 차를 돌려야 하고 
구절리역 까지는 꼬마 풍경열차를 타고 들어가야 한다
 

정선아리랑(강원도 무형문화... - 뗏목아리랑(남자,여자) | 음악을 들으려면 원본보기를 클릭해 주세요.

 

 

출처 : 비단장수 왕서방 이야기
글쓴이 : 나먹통아님 원글보기
메모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