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의 생각

주왕암 꽃차 이야기

아리박 2012. 11. 29. 07:52

주왕암 꽃차 이야기

 

애달픈 주왕의 사연이 깊숙히 숨겨진 청송 주왕산 주왕암에 들려 주지스님(혜휴스님)에게 차 한잔을 얻어 마시게 되었다

 

전쟁에 패해 숨어 지내던 주왕의 은신처는 구불구불 몇차레를 굽어서 바위틈을 끼고 돌아 천혜의 요새다

주왕굴을 앞에 두고 벼랑 끝에 매달린 주왕암은 새집처럼 바위 틈자락에 끼어 붙어있다

 

골 바람 세기로 이름 난 주왕골에서 초겨울 찬 바람이 얼굴을 때리는데 길 옆에 만들어 놓은 쉼터에서 가져간 물 한잔으로 목 축이고 있는데 마침 스님께서 보시고 들어와서 차 한잔 하라시기에 스님 방에 들렸더니 고맙게도 차를 대접해 주셨다

 

이야기중에 단양에서 왔다고 하였더니 황정산 광덕사에 자주 가신다며 반가와 해 주신다

그러면서 갖춰놓은 차를 풀어 놓는다

 

이 차는 산목련차입니다

팔공산에서 가져온 것인데 향이 괜찮을 겁니다

따끈하게 우러난 산목련향에 얼었던 몸이 녹아가고 있었다

찻물 진하게 든 찻잔에 인연의 향기가 가득가득 따라져 담겨 있다

 

오늘은 날씨도 차가운데 향긋한 봄꽃을 피워드리지요 하면서 다른 찻병을 내어 오신다

이 꽃차는 칠레꽃차입니다

 

차시로 꽃 한송이를 찻물에 띄우니

스르르 꽃 모양으로 되살아나 순식간에 칠레꽃이 찻잔 위에 피어난다

봄 뜰에 갓 피어난 함초롬한 봄아씨 같은 자태다

이 찔레꽃은 7년 묵은 것입니다

 

아 . 사람도 7년전의 향기를 간직하지 못하는데

너는 7년간이나 그 여린 향기를 아직도 간수하고 있구나

 

꽃잎 하나하나가 더운 찻물에 펴지고 꽃술 하나하나까지 노란 색갈로 되살아난다

무슨 마술을 보고 있는 듯하다

코에 갖다대니 일곱 해를 간직해 온 찔레의 향이 꿈에 그리던 연인의 품에 안기 듯 온 몸을 파고 든다

 

언 몸이 스르르 녹아 내린다

따뜻한 차로 언 몸이 풀리고

스님의 따뜻한 마음으로 내 마음까지 풀린다

 

우리들의 다담은 계속되었다

이 차는 송이차입니다

송이를 적당한 크기로 찢어 말리기만하면 이 향기 좋은 송이차가 됩니다

이렇게 송이차로 우려 마시고 난 다음에 모아 두었다가 국에 넣어 끓어 먹어야 송이를 제대로 먹는 것입니다

 

스님의 절제된 수행 모습을 보는 듯하다

그 외에도 야생차 법제법을 알려 주시면서

차 많이 드시면 괜찮습니다 하신다

 

다선일체라 설파한 초의선사라도 만난 듯하다

끽다거의 선계에 잠시 머무르다 온 듯하다

 

 

 바위 틈에 끼어 아스라이 매달린 주왕암

흐르는 구름도 내 안 같아 갈갈이 마음 찢누나

 

인연의 향기 가득한 다담틀( 茶啖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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