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의 생각

아름다운 초대

아리박 2012. 11. 16. 06:18

아름다운 초대

 

이보다 더 반가울수는 없다

가슴이 뛴다

 

올 봄에 가져다가 세워 놓은 우듬지 표지목

수 년을 강물속에  담가 모든 것 다 씻겨내고 백골만 남아 있던 우듬지 하나  힘들게 가져다가 울타리가에 세웠다

모습이

모습이 너무도 하얗게 바래서 윤회를 강론하는 스승으로 모시고자 함이었다

 

그래서 글도 하나 지어 바치고 숭상하고 바라보고 있었다

올 여름에는 표고버섯을 피워내어 살아 있는 모습으로 회귀하여 보여주시더니

 

오늘은 딱다구리한테 집 한칸 내 주었다

한 열흘 서울에 갔다 왔더니

아 글쎄 딱다구리가 해 뜨는 동향으로 집 한칸 지어 놓았다

 

지금까지 바로 옆 고목나무에 둥지 트느라고 다닥다닥 다다닥

요란스레 집을 짓더니

우듬지 표지목에다도 보금자리 하나 마련해 놓았다

 

우듬지 표지목

밑둥은 기둥으로 잘라주고

중간 토막은 버섯 대목으로 내어주고

마지막 우듬지로 백골 남은 혼백 보여 주시더니

이제는 마음까지 내놓았구랴

 

딱다구리

그 동안 몸을 숨겨 사진 한번 찍으려고 겨누었지만

아직 그 모습은 찍지 못하고 소리로만 들어왔다

창가에 앉아 있으면

한 여름 집을 짓느라 요란하게 톱질 대패질하는 소리에

아무리 찾아봐도 쉽게 보여주지 않더니

오늘 영롱한 모습으로 와 주었구나

 

우리 한 번지 안에 같이 살게 되었으니

너와 나는 식구이니라

 

딱다구리에게도 글 한편 지어 주고 한 동네 사는 걸 마냥 반겨왔었는데

우듬지 스승님의 조화로 현실이 되었네

 

아름다운 초대다

 

 

   아리산방 울타리에 우듬지 표지목

 

   아름다운 초대를 받아준 딱다구리. 배는 단풍색. 머리는 주홍색. 등은 검은 줄무늬.  원래는 딱다구리의 동네에 내가 더불이로 들어왔다

 

    딱다구리가 지어 놓은 새 보금자리. 튼실하게도 지었다

 

   지금껏 딱다구리가 살던 백 년 넘은 고목나무 숲

 

 

 

 ( 졸시 )

 

우듬지 선생의 특강

 

 

백 년을 넘게 청춘으로 지내 본 우듬지 선생

 

늙어서 잘 살고 싶은가

젊어서 잘 살고 싶은가

 

맨 꼭대기에서

아래로 내려다보고 사는 동안

선량 학생들만 가르치고 살았다

 

단장한 거울 속 얼굴만

새로 태어난 귀여움만

안개로 가린 눈발림속에서

겉만 보고 살았다

 

백이 넘는 세월은 잉여 시간

밑둥 베어지고 잎 지고 잔가지 촐개지고

흙과 바람과 햇빛이 꼬아낸 세 가닥 동아줄

백골로 남아 내생來生에 든다

 

밑둥지 땅 그늘 새기는 참회의 길

전생의 세 절반 낮추라는 말씀이다

 

청춘의 꿈 토막토막 잘라내 제 몫으로 키운 그루터기는 썪어가면서 말하고 있다

밑둥은 기둥이 되지만

우듬지는 땔감이란 걸

바닥 흠결은 지워지지만 우등생의 잘못은 배신

 

죽은 가지에서 시작하는 윤회의 길

이생은 긁힌 상처의 따끔한 아픔 한번

내생은 아픔 잘라내는 고통

 

주어진대로 사는

만들어가며 사는

제 몫 넘어 사는 것은 내생의 차용

 

당신의 모골로 가슴에 풍화를 안고

한 생을 보여 주고 있다

 

빨리도 말고

늘리지도 말고

 

 

 

   딱다구리가 둥지 튼 우듬지

 

 

 

 

( 졸시 )

 

주민등록

 

예 숲 접어드는 길목에

딱따구리 한 가족 집을 짓는다

 

여기서 한  오백 년 살려는지

묵은 고목 양택에

청룡 백호 주작 현무

배산임수 살펴보고

 

양지 곁 외지지도 번잡지도 않은

서출동류 국화 뿌리 석간수에

앞산 멀지막이

들고나는 바람길

 

요모조모 둘러보니

고택 한 채 설 법한 터

 

다다 다다 톱질이야

닥닥 다다닥 도끼질이야

두두두 도도도 대패질이야

 

딱따구리 목수 되어

소리로 집을 짓는다

 

이 동네 주민등록 해야겠네

 

    숲으로 난 고욤나무가지에 앉아 있는 딱다구리.  귀한 모습을 보여 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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