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

죽령의 낙조

아리박 2012. 4. 17. 10:37

죽령의 낙조

 

영남에서 한양에 이르는 길에는 세 갈레 길이 있다

첫째 맏이 죽령이요

둘째가 문경 새재, 막둥이가 추풍령이라고 한다.

 

풍운의 꿈을 안고 과거 급제를 위해 짚신과 노잣돈 꾸러미 봇짐을 매고 넘던 고개.

그 맏형격인 영주 풍기에서 단양으로 넘어 오는 죽령.

옛날 죽죽이라는 도인이 이 험한 산길을 개척하고 난후 그 고통과 몸살로 죽으니 후세인들이 그를 기리기 위해 죽령이라 하였다는데 아마도 죽죽이가 없었다면 영남인들은 오늘의 영화를 빛 보지 못했으리라

이제 터널이 뚫려 지하로 다니지만 얼마 전까지만도 이 길을 거쳐 영남의 중심인 영주 안동 봉화 인근은 모두 이 길로 문물이 이동하였다

차도가 해발 696m라는데 도로 양옆으로 험한 산봉우리가 협곡을 이룬 사이로 시원한 바람이 옷깃을 날린다

죽령의 해넘이 절경을 보기 위해 부석사에서 의상대사의 불경 목탁소리에 마음을 씻고  희방계곡에 숨어 있는 비경들을 둘러보고 시간에 거의 맞춰 죽령에 도착하다

남쪽으로 영주 풍기의 산자락들이 죽령을 깃점으로 머리 빗듯이 곱게 쓸어 빗겼는데 그 안온한 풍경에 풍덩 빠지고 싶다

영남제일문이라는 현판이 붙은 전망대에 올라 개나리 봇짐 매고 고향에 계신 부모님에게 급제 다짐을 하던 옛 선비가 되어 태백 준령을 넘는 과객으로 돌아가 마음을 다져 본다

옆에는 죽령 주막이 있어서 동동주 한사발에 안주로 산채부침이를 시켜 놓고 주막집 주모에게 실없는 농을 걸어 집 떠난 남정네들의 헛헛함을 달래 본다

아마도 주막집 주모에게 홀린 과객은 노잣돈 다 뿌리고 과거는 팽개치고 세월만 탕진하였으리라

 

단양 땅으로 잔등을 넘으면 후게소 길 양옆에 소백산에서 구하였다는 희귀 약초 백초를 모아 파는 약초상 아지매들이 즐비한데 마즙, 하수오즙을 내어 팔고 있어 지친 나그네의 달린 다릿심을  보충해 준다

 

 

점점 서녁으로 붉은 기운이 퍼지기 시작하는데 오늘따라 청명하여 해넘이를 가려 감히 방해할 어떤 훼방꾼도 없다

구름 한점 없는 하늘에 오직 스스로 몸을 낮추어가는 주인공 하나만이 장엄한 몸 사름 의식을 해 내고 있다

 

해 오름을 탄생이라 한다면 해 넘이는 죽음이라 해야겠지만 그것은 죽음이 아니었다

하루를 닫는 장막이고

내일을 열기 위한 쉼이었다. 포근한 휴식의 잠이었다.

잠은 죽음이 아니다.

내일

모든 생명에게 생장 에너지를 다시 주기 위한 재 충전이다

 

해가 잠자리에 드는 의식이 이리도 장엄하단 말인가

점점 붉은 기운이 소백산 줄기를 비추어 준령에 오미자물을 타서 끼얹은 듯 속살 비치는 붉은 속치마로 한겹 두른 듯 온 산이 색조를 입는다

서쪽으로는 가리는 산이 없어 해가 지는 가이 끝을 짐작할 수 없다

아마 육지의 끝이 아닐까

낮으막한 가리개 뒤로 침수에 드는 군왕의 뒷 기운 사라질 때까지 이 세상 모든 것들이 숨 죽이고 바라보고 있다

아니 내일 다시 빛을 내리 쪼여 달라는 생명의 구원 의식이다

 

오 ~

탄성만이 터져 나올 뿐이다

 

거처에서 가까이 죽령이 있어 여름날 더위를 피해 고개마루에서 잠시 땀을 식히고 간적은 있으나 오늘처럼 장엄한 낙조를 보기는 첨이다

 

이제 나도 잠자리에 들 때 하루를 마감하는 종례의식을 가져야 겠다는 생각이 든다

 

 

 죽령 고갯길. 경상도. 충청도를 잇는 고갯 목 이정표들

 

 해넘이 의식 준비

 

 시작~

 

 아 ~~

 

 오~~~

 

 으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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