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의 생각

幽居

아리박 2012. 3. 12. 11:52

幽居(유거)  은거하며

 

幽居一味閑無事(유거일미한무사)

그윽하게 사는 맛이 좋아 한가로이 지낸다

 

人厭閑居我獨憐(인염한거아독련)

남들은 한가로움 싫어하나 나는 혼자가 좋네

 

置酒東軒如對聖(치주동헌여대성)

동헌에 술이 있으니 성현을 옆에 있는 듯 하고

 

得梅南國似逢仙(득매남국사봉선)

남국에서 매화가 도착하니 신선을 만난 듯 하네 

 

巖泉滴硯雲生筆(암천적연운생필)

바위 샘물로 벼루를 적시니 붓끝에서 구름이 일고

 

山月侵狀露灑編(산월침상로쇄편)

산에 뜬 달이 방안에 드니 이슬이 책을 적시네

 

病裏不妨時懶讀(병이불방시라독)

병 든 몸 상관없이 글 읽기도 나른하여라 

 

任從君笑腹便便(임종군소복편편)

그대와 함께 웃을 수 있으니 속이 편안하구나

 

 

    ***時南中故人 新寄重葉梅 栽活甚佳(시남중고인 신기중엽매 재활심가)

        마침 남쪽에 사는 벗이 새로운 겹매화를 보내주어 심어 놓았더니 매우 잘

        자라 아름답게 키우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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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퇴계선생의 매화시첩을 읽고 있다

당대 최고 선각자요 주자학의 최고봉인 퇴계선생

임금의 벼슬자리를 수없이 사양하고 오히려 부름을 두려워했던 그가

은거하며 쓴 매화시첩 중에 있는 시 한편이다.

 

고매한 인격과 경세에도 안목을 가지고 높은 학문적 고양에도 불구하고

개인적 삶의 여정이 결코 평탄지 않았던 그가 한촌에 유거하며 매화를 벗하며 오직 좋아했던 심사는 무엇이었는가..

 

그에게 있어 매화는 단지 완물로서의 대상만은 아니었던 것 같다

매화에게 속내를 털어 놓고 스스로 감정이입하여 매화가 되어 기뻐하고 슬퍼하고 애달아 하면서 그야말로 삶의 동반이었다

 

매화를 통해 그는 겪는 생의 고뇌를 토로하고 위안 받고 가족이나 친구, 임금에게서 조차  느끼지 못하는 훈훈한 정을 주고 받음을 알 수 있다

 

시첩에 수록된  91수는 당시로서 매화 개인 시집으로서 사료적 가치가 있을 뿐만 아니라 한편한편이 그냥 쓰여진 것이 아니라 역사 현실을, 우정을 , 가족애를, 상열지사를 은유하며 주기를 달아 요즘 말하면 시작메모를 써 두었다

 

내가 지식이 얕고 미천해서 어찌 고매한 선각자의 깊은 뜻을 짐작이라도 하랴마는  그의 가슴안에 흐르는 허심탄회한 인간적 술회와 순수의 시심에  다가가 보려한다

 

 

며칠전 갑자기 마눌이가 매화나무를 심자고 채근하는데 고매한 품위을 알고나 그런건지 해동하고 나무 심을 때를 기다려 산방 자락에 매화나무 한그루 심어 옥설 그윽한 매향에 취해보려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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