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학이론

현실의식과 낭만적 시세계

아리박 2012. 2. 17. 09:03

문숙

현실의식과 낭만적 시세계

― 하종오 『입국자들』, 산지니, 2009.
― 박주택 『시간의 동공』, 문학과지성사, 2009.




   오늘날 우리 사회는 뚜렷한 이데올로기가 사라지고 거대담론이 없는 시대라고 한다. 그러나 지구촌 시대를 살고 있는 현실에서 사회적 울타리를 국가로 한정지어 생각한다는 것은 대단히 모순이다. 현대인들은 지금 공간을 달리한 다양한 삶들과 쉽게 소통하며 살고 있다. 문명과 반문명적인 삶을 접하고 다양한 정치와 문화를 경험하며, 더 커진 사회 속에서 살고 있는 것이다. 따라서 여러 유형의 삶들이 드러나는 가운데 과거와 현재적 시간이 혼재한 듯한 상황 속에서 이쪽과 저쪽의 사회적 가치를 따로 둘 수 없는 세상살이를 시작한 것이다.
그래서인지 오늘날 문학예술에서 나타나는 문예사조적 현상도 어느 특정한 사조를 형성하기보다는 다양한 사조가 혼재해 있는 듯하다. 그렇기에 어떤 사조도 이 시대의 구닥다리라고 치부할 만한 것은 없다고 판단된다. 특히 리얼리즘과 낭만주의 문학은 서로 상반된 경향을 띠고 아직도 꾸준히 생산되고 있으며 독자로부터도 사랑받는 사조가 아닌가 한다. 따라서 최근에 이 두 사조의 성향이 짙다고 생각되는 두 시인의 작품집이 나와서 살펴보고자 한다.

1. 삶의 현장을 부감하는 정신

    90년대 이후 리얼리즘 시인들의 훼절에도 불구하고 리얼리즘 시를 끌어안고 있는 하종오 시인이 17번 째 시집 『입국자들』을 발간하였다. 그의 시는 앞서 펴낸 시집에 이어서 우리나라에 입국한 이주민들의 삶에 포커스를 맞추고 있다. 총 4부로 구성 되어 있는 이 시집의 등장인물은 탈북자를 비롯한 중국과 몽골 등 아시아 여러 나라에서 온 사람들이다. 탈북자를 포함한 이주민들의 다양한 삶은 물론 그들의 고향에 남아 있는 가족들의 모습도 적나라하게 보여준다. 앞서 발간한 시집과 마찬가지로 시인의 시선이 이 땅에서 약자로 불평등을 겪고 있는 이주민들에게 천착해 있는 사실은 지구촌 시대를 살고 있는 사회문제를 빠르게 감지한 결과라 볼 수 있다. 따라서 단일민족 국가에서 다문화가정이 빚어내는 갈등과 함께 세계화로 인한 새로운 이산가족 문제, 여전히 해결되지 않는 심한 빈부격차의 현실을 다양하게 짚어내고 있는 것이다.
   또한 세계는 하나라는 새로운 가치를 좇아, 나/너/우리라는 경계를 지우며 평등하게 하나 되는 세상을 선도해가는 시인의 의도도 다분히 엿보인다. 시인은 이러한 현실문제를 이 시대의 새로운 이데올로기로 인식하고 있으며, 시적 구성을 통해 다양하게 보여준다.  

북조선을 탈출한 여자와
조선족자치주에 거주하는 남자는
서로 의식주를 해결하려고
동거하였다

한마디로 남들보다
돈 없이 사는 게 지긋지긋했던
북조선 여자와 조선족 남자는
돈 많이 벌 목적으로
한국으로 가고 싶었다

북조선 여자가 먼저
탈북자 신분으로 들어와서
정착한 뒤
조선족 남자가 나중에
노동자 신분으로 들어와서
결혼하였다

합법적으로 한국 국민이 된
조선족 남자와 북조선 여자는
직장에서 견디지 못하고
직업을 구하지 못해
여전히 가난하자
각자 한국 남녀를 구하려고 이혼했다
                                                                  ― 『부부』 전문

    이 시는 탈북한 여인이 남한에 오기까지의 과정과 정착이 쉽지 않은 얘기를 들려주고 있다. 가난을 피해 탈북한 여인이 의식주를 해결하기 위해 조선족 남자를 만나고 또 단순히 가난을 피해 결혼과 이혼을 거듭하게 되었다는 이야기이다. 또한 우리와 같은 민족이라 할지라도 체제가 다른 사회에서 살아온 탓에 적응이 쉽지 않아 “직장에서 견디지 못하고/ 직업을 구하지 못해” 여전히 가난을 면치 못하는 현실을 보여준다. 시인은 이런 탈북자에 대한 문제의식을 서사적으로 형상화해서 보여주며 사회적 대안을 유도하고 있다. 이런 사회참여적인 시는 어떤 방식으로든 뚜렷한 목적의식을 담아낸다.
   하종오의 대부분 시편들은 단순한 이야기 형식으로 구성되어 있으며 그가 초기 시에서 보여주었던 운문이 갖는 성격을 잘 볼 수 없는 특징을 지닌다. 이는 시인이 의도한 철저한 시적 전략으로서, 사실적인 내용을 독자에게 가감 없이 전달하기 위해 화자의 감정이입이나 시적 기교를 배제하고 있기 때문으로 풀이된다.
   다음 시편은 시집 2부에 실려 있는 몽골인의 이야기다. 같은 종족이라는 친근함을 가지고 서로 빈번하게 왕래하는 현실에서 그들이 우리로부터 어떤 문명적 영향을 받고 있는지 시인이 냉정한 시선으로 옮겨 놓은 작품이다.    

한국인들이 가지고 와서
물 다 마시고 버리고 간
10리터들이 흰 플라스틱 통을
할리오나 부인은 애지중지하면서도
고비사막 인근 마을들을 돌며
모래바람과 모래더미를 살펴보던
한국인들을 기억하지 않는다

10리터들이 흰 플라스틱 통이
멀리서 만들어져 가까이 내던져지는 동안
지구상에 그 일로 해서
무수하게 생긴 문제 중의 하나가
샘마다 물길이 끊긴 거라는 걸
할리오나 부인은 따져서 생각할 겨를이 없다

10리터들이 흰 플라스틱 통을
할리오나 부인은 손에 잡고 흔들며
다만 자신의 두 젖통도 나이 먹어가니
젖줄이 마르더라는 정도로 알고
오늘은 아이들이 마실 물을 길러 간다
                                                           ― 『플라스틱 통』 부분

    이 시는 몽골인들의 열악한 생활상과 함께 산업발달로 인해 생겨나는 환경 문제의식을 담아낸다. 동시에 문명국의 산업발달에 의해 애먼 지구촌 사람들이 폐해를 입는 억울한 현실도 보여준다. 그러나 절대빈곤 속에 있는 사람들은 먹고 살기에 급급해서 자신들이 겪는 고통의 원인을 따져볼 여유조차 없이 살아간다. 자신들에게 고통을 주는 대상도 모른 채 그저 주어지는 삶에 순응하며 살고 있는 것이다. “샘마다 물길이 끊긴” 이유가 먼 곳에서의 산업화로 인한 지하수 고갈문제임을 모르고 “다만 자신의 두 젖통도 나이 먹어가니/ 젖줄이 마르더라는 정도로 알고” 살아가는 순박한 사람들이다. 그런 이들에게 주어진 산업 혜택이란, 고작 문명인들이 버린 쓰레기나 주워서 사용하는 정도인 것이다. 따라서 시인은 이런 모순적인 사회문제를 감동적으로 드러내며 새롭게 충격을 주고 있다. 따라서 이 작품은 탄탄한 시적 구성을 통해 다양한 문제의식을 담아내고 있는 리얼리즘의 수작이라고 평가하고 싶다.
  이번에는 시인이 우리나라에서 거주하는 이주민들의 삶을 또 어떻게 드러내고 있는지 살펴보기로 하자.

캄보디아에서 시집 온 지
일 년 되는 판짠다라 씨는
아들을 낳지 못한다고
벌써 푸대접을 받는다
(중략)

자식을 볼 바엔
차라리 딸을 키우면
긴긴 타국살이에 여자끼리
위로 될 수 있겠지 싶어
얼른 임신되면 좋겠다고 생각하고
남편이 원하는 대로
판짠다라 씨는 잠자리를 한다
                                                            
                                                                ― 『여권』 부분

   이 시는 작금의 농촌 현실에서 신부가 부족해서 생겨난 다문화가정의 이야기다. 아직도 우리 농촌에서는 남아선호 사상이 강하게 남아있어 멀리 외국에서 시집온 새댁까지도 힘들게 하는 모양이다. 가난 때문에 어린 나이에 먼 타국으로 시집와 외로움을 견디며 사는 여인이 문화적 차이 때문에 더욱 고통을 겪는 내용이다. 오죽 외롭고 힘들면 딸이라도 낳아 키워서 타국살이에 서로 위로가 되고 싶다 하겠는가. 멀리 있는 고향을 쉽게 오고갈 형편이 못돼 외로움의 고통에 떨고 있는 어린 여인의 삶이 애처롭기 그지없다. 경제적 여유를 누리는 사람들은 이와 같은 이유로 가족을 떠날 필요도 없지만, 보고 싶을 때 볼 수 있는 자유도 돈 있는 사람들에게나 해당되지 이들에게는 꿈에 불과한 것이다. 가난한 사람들이 물질을 대신해서 풍족하게 채울 수 있는 것들이란 외로움이라든가 그리움이라든가 절망이라든가 좋게는 꿈이라든가 희망이라든가 그런 형이상학적인 것들 밖에는 없는 것인가.
   하종오 시인이 시를 통해 보여주는 삶들은 상황이 모두 비극적이다. 앞에서 다룬 것들뿐만 아니라 산업재해를 당하고 본국으로 돌아가서 더욱 고통스럽게 살아가는 삶이라든가, 악덕 기업인을 만나 노동의 대가를 갈취당한 억울한 이주노동자까지 다양하다. 또한 가족을 먼 타국으로 떠나보낸 이산가족들의 비애도 구체적으로 담아낸다. 따라서 시인은 코리아드림의 기대를 안고 온 아시아권 이주민들이 겪는 고통과 우리사회의 지나친 모순을 낱낱이 보고한다. 지구촌 시대를 살고 있는 오늘날 한민족 중심주의나 자본에 의해 무참히 짓밟히는 이주민들의 애처로운 삶을 시인의 눈으로 고발하고 있는 것이다.


2. 저녁 길을 가는 남자

   박주택 시인이 소월문학상을 받은 시집 『카프카와 만나는 잠의 노래』에 이어서 다섯 번째 시집 『시간의 동공』을 문학과지성사에서 펴냈다. 시인은 등단 이후 지금까지 꾸준히 개성 있는 좋은 시를 써오며 많은 주목을 받고 있다. 하종오의 시가 타자의 삶에 주목해 있다고 한다면 박주택의 시는 내적 자아에 천착해 있다고 볼 수 있다. 이번 시집에서도 시인은 여전히 시편마다 “저녁”이라는 의미를 동반하며 어두운 정서를 강하게 드러낸다. 또한 여러 시집에서 공통적으로 나타나는 우울한 정서가 이번 시집에서도 여전히 시 전편을 덮고 있다. 따라서 시를 감상하는 독자로 하여금 우울한 샹송을 듣는 듯한 기분마저 갖게 한다. 이는 낭만주의적 성격이 짙은 데서 오는 느낌 때문일 것이다. 특히 그는 낭만주의의 특징으로도 볼 수 있는 심미적 상상력이 크게 돋보이는 시인이다. 그런 박주택의 시는 화려한 수사와 함께 깊이 있는 철학적 사유가 잘 어우러져 아름다운 시의 세계를 한껏 드러내는 특징을 지닌다.
   이번 시집에서도 여전히 시인의 눈은 늘 밝은 곳보다는 어둔 곳을 응시한다. 그의 눈길이 가닿는 곳은 자아의 깊은 내면이거나 사물 너머에 생겨나는 입체감이 없는 어두운 그림자이다. 그는 낮보다는 밤을 사랑하고 일출보다 일몰에 마음을 빼앗긴다. 그리고 사랑 앞에서 이별을 떠올리고 삶 속에서 멀리 있는 죽음을 생각하는 비극적 정서를 가진 시인이다. 이는 박주택 시인만이 아닌 여러 시인들에게서 나타나는 정서이기도 하지만, 상처를 지닌 사람들의 특징이기도 하다. 그러나 어둠에 관한 서정을 뛰어난 상상력에 의해 이리도 아름답게 그려낼 수 있는 시인이 몇이나 되겠는가. 먼저 그의 자화상처럼 생각되는 저녁에 관한 시 한 편을 보면서 다음 말을 잇기로 하자.

영혼을 저녁에 가둔 사람, 걸어가네
낮과 밤이 섞이며 진눈깨비 내리고
우산 없는 가로수 밤의 우울한 노래를 게워내네
죽음과 싸우기 위해 펄럭이는
바로 그곳으로부터 누군가 숨 가쁘게 계단을 오르고
기억의 비린내 속으로 한 사내 내려가네, 숨결은 흩어지고
막 생명이 태어난 듯 애인들, 팔짱을 끼고
서로의 뱃속으로 들어가네, 비가 눈과 섞이며 진눈깨비로
퍼붓는 저녁, 자작나무 숲은 여기서 멀고
구두는 길과 싸우면서 두려움을 만든다
저녁의 저 윤곽들, 나서 한시도 자신을 결정하지 못하여
두통 없는 몸에 가 닿으려고 할 때
생애 가장 길었던 오늘은 어떻게 기록될 것인가
이별의 끝으로 이파리 져 날짜들의 지붕을 덮고
가로수 어둠에 밴 물을 토해낼 때
저녁을 가둔 영혼, 사내의 몸에서
빠져나와 윤곽 밖에 있는 빛으로 가네
진눈깨비 내리네, 등을 구부린 사내
흐르는 뺨으로 떨다
멀리 진눈깨비 속에 갇히네
                                            ― 『자작나무 숲은 여기서 멀고』 전문

   그는 늘 저녁 길을 가고 있는 자다. 시의 출발점도 언제나 아침이 아닌 저녁이다. 밝고 환한 곳은 그의 시선과는 멀다. 빛을 등지고 있기에 희망을 말하지도 않으며 철저하게 어둠만을 노래한다. 그는 이미 제 “영혼을 저녁에 가둔 사람”이며 동시에 “저녁을 가둔 영혼”이 되어버린 사람이다. 어떤 대상에게 영혼을 가두었다는 것은 대상의 매력에 푹 빠져들었다는 다른 말이기도 하다. 시인은 연애를 하듯, 저녁이 갖는 매력에 푹 빠져서 쉽게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어쩌면 처음부터 스스로 갇히기를 원했는지도 모른다. 그래서 그 많은 탐색을 거치고도 “서로의 뱃속으로 들어”간 것만큼이나 한 몸처럼 생각되어 쉽사리 빠져나오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시인은 “영혼, 사내의 몸에서/ 빠져나와 윤곽 밖에 있는 빛으로 가네// 등을 구부린 사내/ 흐르는 뺨으로 떨다/ 멀리 진눈깨비 속에 갇히네”라고 한다. 즉 어둠 밖의 빛을 향해 자신의 영혼을 풀어놓으려 하지만 다시 어둠에 갇혀버리는 운명을 노래한다. 시인은 아직도 어둠의 세계를 즐기며 그를 벗어나는 것을 두려워하는 것 같다. 따라서 이 시는 저녁 시간을 살고 있는 시인의 자화상으로 봐도 무리가 없는 시편이라고 할 수 있다. 이 시편의 형식적인 특징은 관념적 언어에 몸주기를 하며 “기억의 비린내, 저녁의 윤곽들, 날짜들의 지붕” 과 같은 독특하고 새로운 이미지를 만들어내고 있는 것이다.

문을 닫은 지 오랜 상점 본다
자정 지나 인적 뜸할 때 어둠 속에 갇혀 있는 인형
한때는 옷을 걸치고 있기도 했으리라
그러나 불현 듯 귀기鬼氣가 서려오고
등에 서늘함이 밀려오는 순간

이곳을 처음 열 때의 여자를 기억한다
창을 닦고 물을 뿌리고 있었다
옷을 걸개에 거느라 허리춤이 드러나 있었다
아이도 있었고 커피 잔도 있었다
작은 이면 도로 작은 생의 고샅길
오토바이 한 대 지나가며
배기가스를 뿜어대는 유리문 밖

어느 먼 기억들이 사는 집이 그럴 것이다
어느 일생도 그럴 것이다
― 『폐점』 전문

    이 시는 특별히 진술과 묘사가 잘 직조되어 있어 시의 그림이 잘 드러난다. 따라서 형상화가 잘 된 시로서 독자가 쉽게 시인의 사유를 따라가며 감동하기에 좋은 작품이다. 이 시에서도 여전히 시인은 어둠에 가려진 것들만 보려한다. 문을 연 상점보다는 문을 닫은 상점에 시선을 두며, 그를 통해 마무리된 한 일생을 떠올린다. 컴컴한 상점 안에 버려지듯 놓여 있는 마네킹을 통해 한 생을 마무리한 주검을 연상하고 그 주검이 펼쳐냈을 한 생의 드라마를 보여준다. 생전에 치열하게 살았을 삶이라도 생이 마무리 된 시점에서 돌아보면, 집집마다 “아이가 있고 커피 잔”이 있는 만큼이나 모든 삶이 별반 다르지 않다고 여기는 듯하다. 대부분은 자신의 생을 안전하게 “걸개에 거느라 허리춤이 드러나”기도 하고 “생의 고샅길을” 지나오게 되는 과정을 거친다고 보는 것이다. 따라서 시인은 지나간 인생은 다 통속적이며, 어떠한 삶도 결국 ‘시간의 동공’에서 다 지워져버리는 무상함을 환기시킨다. ‘그러니 인생이여, 산다는 것은 무엇이며 어떻게 살아야 하는 것이냐’의 물음은 여전히 남는다.
    박주택의 시가 지닌 방법적 특징 중의 하나는 언어미학적 효과를 거두고 있는 수사법일 것이다. 특히 화해 불가능한 단어들을 결합해서 빚어내는 독특한 이미지와 다소 난해하게 생각되는 환유적 글쓰기가 그의 시적 세계를 화려하게 만든다. 그런 시편들의 일부를 보기로 하자.
창백한 호흡을 멈춘 새들만이 나뭇가지에서 날개를 쉰다
꽃들이 어둠을 물리칠 때 스스럼없는 파도만이 욱신거림을 넘어간다
(중략)
언제든 배반할 수 있는 시간의 동공들
때때로 우리들은 자신 안에 너무 많은 자신을 가두고
북적거리고 있는 자신 때문에 잠이 휘다니,
기억의 풍금 소리도 얇은 무늬의 떫은 목청도
저문 잔등에 서리는 소금기에 낯이 뜨겁다니,
갈기털을 휘날리며 백사장을 뛰어가는 흰말 한 마리
꽃들이 허리에서 긴 혁대를 끌러 바람의 등을 후려칠 때
그 숨결에 일어서는 자정의 달
                                                            ― 『시간의 동공』 부분

그리하여 시간이란 계급을 재편성하는 과정이란 느낌이 들 때
햄버거는 입안에서 혈관을 터뜨리고 커피는 저녁처럼 어두워졌다
                                                                  ― 『강남역』 부분

   표제시인『시간의 동공』은 상상력에 의해 다양한 이미지를 창출해내며 수사적 화려함이 돋보이는 작품이다. 특히 앞서 인용한 시처럼 이 시에서도 여전히 관념적 언어를 물화物化시키는 특징이 두드러진다. 또한 번득이는 새로운 인식들로 인해 시가 더욱 빛을 발한다. 이를테면 “꽃들이 허리에서 긴 혁대를 끌러 바람의 등을 후려칠 때”라는 표현 같은 건 일반적인 사유의 법칙을 크게 벗어나는 인식으로서 낯선 감동을 안긴다. 사람이란 대부분 눈에 보이는 확실한 실체만을 사랑하게 된다. 그래서 눈에 보이는 예쁜 꽃은 사랑할 수 있지만 보이지 않는 바람에 대한 관심과 애정은 적다. 바람의 은유가 대부분 부정적인 이유가 그것 때문인지도 모른다. 눈앞에 보이는 여리고 사랑스런 꽃이 바람을 후려칠 수도 있다는 생각은 쉽게 못하는 것이다.
   어쩌다 꽃대가 부러져 있으면 바람이 후려쳤다고 여기지 꽃이 바람을 후려치다 꺾였다는 생각은 못하는 게 이미 고정되어버린 인간의 사고인 것이다. 자신의 아이가 울면서 집에 들어오면 즉각 다른 아이한테 맞았다고 생각하지 남의 아이를 때렸을 거라는 생각은 안하는 경우와 같다. 그러나 시인은 그런 모순을 볼 줄 아는 눈을 가진 사람이다. 어둠속을 읽어낼 줄 알고 실체가 없는 것까지도 보아내며, 있고 없는 모든 것을 사랑할 수 있는 게 시인인 것이다. 그래서 시인은 다양한 자아를 지니고 있어 “북적거리고 있는 자신 때문에 잠이” 휠 수밖에 없다.
    그의 시를 화려하게 치장하며 다소 난해함을 주고 있는 환유법에 의한 특징은 위에서 인용한 「강남역」역과 같은 시에서 두드러진다. “햄버거는 입속에서 혈관을 터뜨리고 커피는 저녁처럼 어두워졌다”에서 햄버거와 커피를 현대적인 청년과 중년으로, 또는 아가씨와 아저씨를 “반바지와 선글라스”로 변용해서 나타낸다. 이러한 시적 방법의 특징들이 그의 시를 더욱 풍성하게 하며 감칠맛을 자아낸다. 이런 수사가 가능한 박주택의 시는 한마디로 새롭고, 어렵고, 아름답다. 또한 그의 시적 세계관은 여전히 어둡고 비극적인 특징을 갖는다. 그러나 시인이 갖는 비극적 정서란 근원적으로 강한 생의 욕망에서 비롯된다고 봐야 할 것이다.

   이상으로 리얼리즘의 특징을 지닌 하종오 시인의 시와 낭만주의에 가깝다고 생각되는 박주택의 시를 일별하였다. 하종오 시는 이주민 노동자를 중심으로 한 사회 문제를 전달하고자 하는 목적을 가진 시편들이라고 볼 수 있다. 자아를 철저히 배제한 채 객관적 시선으로 사회 현실을 묘사한다. 따라서 벨린스키가 주장한 “시적 재현에 있어서 그것이 진실한 것이기만 하면 어느 쪽이나 마찬가지로 모두 아름답다”라는 리얼리즘의 정신을 좇고 있다고 판단된다. 따라서 그런 가치에 의해 빛을 발하며 감동을 주는 수작들이 많다.  
   박주택의 경우는 내적 자아에 대한 깊은 성찰과 함께 우울한 정서를 바탕으로 생의 어두운 면을 드러낸다. 또한 그의 뛰어난 상상력과 깊이 있는 철학적 사유는 시의 미학적인 면을 한껏 보여준다. 특히 그의 자유로운 상상력은 인간과 자연, 순간과 영원, 물질과 정신, 유한과 무한, 의식과 무의식을 화해시키고 동일시하는 힘으로까지 작용하는 낭만시의 한 특징을 보이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