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의 생각

가을 채집

아리박 2010. 9. 2. 19:53

가을 채집

 

아리산방 주변으로 가을 채집을 다녀 왔다

 

  카메라 하나 들고 장화 신고 작은 베낭하나 둘러 매고 가을 오는 길목으로 마중을 갔다

 

  엊저녁 비바람이 그렇게 밤을  괴롭히더니 오늘은 파아란 하늘을 구름 사이로 언듯 언듯 내보이며 수수모개처럼 얼굴을 보여 주고 있다

 

  무더위 속에서 부채질하느라 모르고 지내왔는데 곳곳에 살며시 파고 들어 온 소슬한 흔적들이 렌즈에 잡힌다

 

  하나하나 착실한 결실을 준비해 온 산중 친구들의 가을걷이가 한 해를 허둥거린 나보다 훨씬 튼실하다는 생각이 든다

 

  가을은 봄부터 차분하게 준비하는 자만이 누릴 수 있는 필연의 댓가인 것이 분명하다

 

 

귀한 손님을 마중 나온 해바라기가 길목에서 가을을 기다리고 있었다

 

가을색으로 익어가는 호박이 가는 세월을 단단히 감아 잡고 버티고 있다    

 

바람과 햇빛만으로 그 고소함을 안에다 모아놓은 호도는 누구를 위한 헌신인지?  

 

척박한 자갈밭에서도 이렇게 많은 수확을 달고 있는 콩의 가을 걷이.. 

 

그 동안 상처의 모습도 그대로 안고 있는 모과의 파란만장한 한 해.  저 상처는 아마도  전에 내가 겪은 내 몫인지도..

 

대롱대롱 매달린 산수유의 도란도란 익어가는 모습이 어린시절 친구 같다 .

아~  그리운 유년이여.

 

그 고소함을 만들어 내기 위해 참깨는 그렇게 무더위를 견디어 내었나 보다. 

 

끈질긴  질경이의 튼실한 목표 달성. 이 정도면 인센티브감이지요..   

 

철 모르는 가을꽃.  붉으려다 만 흰 청초함이 서러워 가슴을 찌른다 

 

이름도 알 수 없는 잡풀들의 군상. 민초들의 지하철 입구 같다 

 

이 계절을 대미로 장식할 단풍나무. 이 열매를 끝으로 그렇게 붉은 최후를 맞나... 

 

봄부터 그렇게 보드라움만 보이더니 어느새 제몫을 다한 자귀나무의 외유내강. 

 

강아지풀 가족. 새끼들을  데리고 가을 소풍을 간다. 

 

시간 위에 띄워진 나의 모습.  물이 차가운 것인가,  내가 차가운 것인가

 

살아 천년, 죽어 천년인 주목나무도 한 해 또 한 해를 빨갛게 익히고 있다 

 

순백의 신사 앙드레 김도 저런 열매를 남기고 갔을까. 흰 목련의 가을 준비 

 

다른 나무를  감고 기대고 귀찮게하는 삶의 방식도 귀결은 하나. 

가을을 준비하기 위함  

 

이렇게 가을이 벌어졌다. 옹고집 같은 가시로 지켜낸 결실 이제 그만 터 트린다 

 

 오매.  단풍 들것네

 

 주변 친구들의 한 해 가을 걷이를  지켜보면서 깊은 사유에 잠겨 있는 아리산방.

 

 

 

 

 

 

'오늘의 생각' 카테고리의 다른 글

아리산방 백자  (0) 2010.09.08
Violet  (0) 2010.09.04
세계시인대회(WCP) 개막  (0) 2010.08.24
길목, 가을  (0) 2010.08.22
산중 식물  (0) 2010.08.2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