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석

와우암 이재규 수석인을 석정으로 보내다

아리박 2022. 6. 6. 17:05

와우암 이재규 수석인을 보내다 

 

 

 

이재규 수석인의 애장석 와우암. 이 사진은 한국수석 제2집(한국수석연구소 1985. 5. 25 간)에 실린 수석이다

 

1980년 남한강에 충주댐이 생긴다고 한창 공사를 할 때 남한강을 같이 헤집던 수석인 이재규 애석인의 부고를 받았다

1936년생이니까 87세를 일기로 마감한 것

그때를 생각하면 와우처럼 묵묵하게 힘이 셌던 장사같은 큰 덩치로 어지간히 큰 돌을 파고 짊어지는 우골 장사였는데 어느 새 생을 마감하다니 믿기지 않는다

절대로 늙지 않고 어지간한 아픔 정도는 괜찮아 하면서 견뎌버리는 뚝심과 힘은 주위 사람들에게 믿음을 주기에 충분하였다

우직한 소장석 이름대로 와우암이 그의 자화상 같은 단단함을 어디 두고 벌써 생을 마감한단 말인가

돌밭 강가에 가면 야생 식용 약초를 어느 새 따 와 고추장 된장에 버무리고 물고기를 금방 잡아와 술로 소독하고 회를 쳐 안주거리를 만들던 수덕이 뛰어났던 솜씨로 막걸리 한 잔으로 탐석의 즐거움으로 세월을 함께 하며 돌을 좋아하시던 모습이 선연하다

수석인들 사이에서는 석수만년 일생일석 축경산수라고 한다

인간세 백년을 넘기지 못하나 수석은 천년 만년의 수를 누리기 때문에 인간의 한계를 초월하고 돌에서 산수경을 찾고 천지 만물을 돌속에서 찾아내 즐기는 것이 수석이다

 

 

 

와우암 이재규 애석인

 

이재규 수석인과는 같은 직장 동료로 근무하면서 마침 수석 붐이 일고 있던 시기에 취미를 같이 하게 되었다

승용차가 귀하던 시절 봉고차를 대절하여 5~6명이 새벽 같이 전국 각지를 돌며 탐석 여행을 다녔다

그때 남한강 바닥을 훑으며 세계에서 가장 좋은 수석 산지라는 남한간 오석과 초코렛석 미석을 만나기 위해 거의 매 주말이면 강과 계곡을 뒤지고 다녔다 

매주 일요일이면 그때는 토요일 근무가 있었으니까 서부수석회를 조직하여 많이도 수석을 찾아 헤맸다

같이 근무하면서 친해진 것보다 탐석 다니면서 끈끈해진 인연이 훨씬 더 크다

 

그 많은 대작의 수석들을 어찌 하였는지 단독 주택에 살던 우리는 극구 아파트를 폄하하면서 단독 주택을 고수하였다

당시에는 우리가 살던 단독주택 가격이 반포아파트 가격과 맘먹는 가격이었으니 수석을 즐긴 대신 재산 증식은 십분의 일로 줄어든 셈이다

나의 경우는 근무 사무소를 옮기면서 아파트로 옮겨 살게 되면서 8톤 트럭으로 돌을 실어 지방에 사는 동생에게 보내고 아파트로 옮기고 지금에 이른다

 

 

이 돌을 제천 지곡에서 함께 탐석한 그때가 생생하다.서울 수석연합회 석보에서

 

우리는 단지 수석을 좋아하는 부류의 관계가 아니다

돌 한 점을 찾아 수십년간을 강과 계곡에서 같이 다니면서 서로의 향기에 배었다

말 수도 적은 우리는 그리 많은 말도 필요하지 않았다

하지만 서로 배인 향기는 잊히지 않는다

직장을 끝내고 서로 다르게 살면서 몇 차례 연락을 하다가 무심하여 근래는 거의 소통 없이 지내 왔다

지금 그를 보내고 피가 돌며 사는 동안 더 만나서 석담의 자리조차 갖지 못했다는 것이 가슴을 미어지게 한다

빈소(세브란스 신촌)에 들려 사모님을 만나 옛날 그 시절 탐석 다녀 오면 집에 들려 막걸리 파티로 집안을 들쑤숴 놓던 횡포를 지질렀다는 이야기를 전할 때 사모님께서는 "그저 오래된 이야기이군요" 단지 한 마디였다

이제 다 지나고 와우암 수석인까지 보내니 다만 기억속의 한 때로 허전만이 남을 뿐이다

 

사람은 갔으나 수석은 오래 남을 것이다 그와의 인연 향기처럼 내 가슴속에. .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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