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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마고지에서 읽는 시 한 편 낭송 영상. 박영대
백마고지에서 읽는 시 한 편
박 영 대
어느 집 아들이었을까
백마고지 참호 속 시가 되어 돌아온 이등병
70년간 꺼내지 못한 전장의 시를 뼛조각으로 생생하게 쓰고 있다
쏘다 남은 실탄 스무 발을 제 나이처럼 한 해 한 해 세고 있는데
누구의 오빠였을까
여인의 손 잡고 떠나올 때 걸어준 동그란 다짐
한번 내어준 사나이 약속 전쟁이라고 꺾일 수는 없다
폭음 속에 불렀던 마지막 반지의 이름 포연 속에 생생한데
제목도 알 수 없는 어느 피 끓는 시인이었을까
쏟아지는 포성 위에 만년필이 써 놓은 애국 시 한 편
날아드는 이념의 포탄 숫자는 아직도 다 쓰지 못한 바람 끝 역사
쪽지에 쓴 주검의 잉크는 푸른 시어로 조국의 심장을 때린다
울다 지친 일흔 번의 낙엽이 다시 울어도 결코 풀 수 없는 거총 자세
무명 고지 흰 말발굽 소리는 한탄강이 쓰고 있는 난중일기
부동자세 주상절리는 이 땅의 화강암 받쳐 주춧돌이 되고
휴전선 철조망에 토막 난 숟가락은 철원 평야 오대미 쌀밥이 미안하다
아직 쓰지 않은 총탄은 누구를 위하여 목숨처럼 아껴 두었는지
구멍 난 철모는 아직까지 분단의 피 철철 흘리고 있다
**** 시작 메모 ****
2021. 10. 28 백마고지 정상 부근 395 고지(무명 고지)에서 6.25 전쟁 때 전사한 이등병 유해가 발굴되었다
쏟아지는 포탄을 피해 개인 참호 속에서 M1소총을 턱 밑에 괴고 사격자세를 취한 모습 그대로였다
구멍 뚫린 철모 두개골 갈비뼈와 함께
이등병 계급장. 개인화기. 실탄 20발. 만년필. 반지. 토막 난 숟가락이 같이 발굴되었다
군번 줄은 발견되었는데 군번은 발견되지 않아 신원은 밝혀지지 않았다
백마고지 전투는 1952. 10. 6 아군 9사단 백마부대와 중공군 3개 사단이 피아 탈취를 19번이나 반복하는 등 포탄 30만 발이 쏟아진 치열한 전투지역이다
포탄이 하도 많이 떨어져 말 같이 생긴 산에 숲이 다 없어지고 백마처럼 하얗게 벗었다 하여 백마고지라고 한다
가슴 먹먹한 사건이다
이등병 계급장이 출토된 걸 보면 이제 갓 입대하여 투입된 병사일 것인데 갓 스무살이나 되었을까
개인 초소에까지 반지와 만년필을 가지고 간 것으로 보아 고향에 두고 온 여인에게 편지를 쓰려고 필기구를 준비했거나 읽고 있는 책이라도 같이 있었을 듯하다
그녀에게 전할 말이 무엇이었는지 읽고 있던 책은 어떤 책이었는지 극한 상황에서 볼 수 있는 책은 시집이 제격이다
아마 편지지에 저 만년필로 쓴 쪽지가 있었으련만 그 편지는 흙이 되고 말았다
내 경험에 의하면 보초 근무설 때 가장 할 수 있는 일이 책 읽는 것이다. 나는 그 때 탄약고 보초 설 때 시를 써서 전우신문에 투고하여 발표한 적이 있었는데 이를 본 전우 친구들에게서 연락이 오고간 적이 있다
내가 중동부 전선 근무할 때만 해도 무장공비가 내려와 실제로 대간첩작전을 한 적이 있다 나는 직책이 작전병이어서 도상 작전을 상황실에서 맡아 적의 침투로와 아군 병력 배치 상황을 상황판에서 배치하고 작전을 수행했던 기억이 난다. 당시 공비 3인조가 침투했는데 2명은 우리 사단에서 사살하고 1명은 옆 사단에서 사살한 작전을 실제로 수행해 본 경험이 있다
이 기사를 대하는 순간 이 사진은 그냥 처절한 시 한 편을 읽는 것이었다
포탄이 터지고 총알이 빗발치는 인간의 가장 부끄러운 전장의 생생한 모습과 아우성을 이보다 더 극적으로 보여줄 수는 없다.
전쟁을 일으키는 것은 인간으로서 범할 수 있는 가장 큰 죄다
지금도 계속되고 있는 우리들의 슬픈 역사.
이 유해는 1928년 경뷱 의성 출신으로 1952년 제주도 제1훈련소에 입대한 고 조응성 하사(당시 계급 일등병)로 확인 되었다
국군 제 9사단 30연대 소속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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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마고지에서 읽는 시 한 편. 박영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