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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백선 조동철교와 사북항쟁 ( 펌 )

아리박 2021. 2. 18. 08:08

 

이 글은 세상을 잇는 다리 오 마이 뉴스 이영천 기자의 연재 기사로 한 때 내가 그 지역에 있었던 사북 탄광과 관련되어 가져 온 글임을 밝힌다

 

살면서 제일 못하는 것 중 하나가 배려다. 다리는 등을 굽혀 그 위를 지나는 모든 것을 배려한다. 제 몸을 내리누르는 모든 압박을 견뎌낸다. 다리 중 가장 배려심이 많은 게 라멘교다. 상·하부구조를 일체형으로 만들어, 다리가 넘어지지 않는 한 낙교는 일어나지 않는다. 이런 장점으로 도로나 철로를 횡단하는 곳에 주로 설치한다. 그래서 다른 시설물을 돕고 배려하는 다리라 부른다.

특이한 라멘교
 

 
▲ 조동철교 모습 높이가 다른 3 × 3 라멘교를 이어 만든 특이한 모양새의 철교다. 철도 등반한계구배를 적용해, 열차가 천천히 달린다. 기관사들에겐 공포의 구간이기도 하다.
ⓒ 이영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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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원도 정선 신동읍에 있는 철도교다. 태백선 예미역과 조동역 사이 지방도 421호선을 횡단한다. 높은 건물을 짓듯, 두 겹 교각과 수평재 입체배열로 상판을 지지하고 있다. 속이 비어 있는 직육면체 기본단위 가로3칸 × 세로3칸 라멘교를, 단단한 지반 위에 연이어 세웠다. 총 6개 라멘교를 이어 붙여 상부에 레일을 깔았다. 멀리서 보면 직육면체 텅 빈 뼈대만 남은, 3층짜리 큰 집들 기둥이 연속해 서 있는 것 같은 모습이다.

조동철교((鳥洞鐵橋)는 1966년에 만들었다. 함백을 거치치 않고 예미에서 조동을 직선으로 잇기 위한 조치다. 경사도 30‰(Per Mil)이다. 철도에서 사용하는 구배(勾配, 수평을 기준으로 한 경사도)는 19‰을 넘지 않도록 설계한다. 열차 바퀴와 레일 마찰계수가 크지 않기 때문이다. 19‰을 넘게 되면 열차가 자칫 미끄러질 수 있어, 이를 방지하려는 조치다.
 

 
▲ 태백선이 지나는 조동철교 다리 위를 느리게 기차가 지나고 있다. 열차 등반 한계구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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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술적으로 30‰은 부득이한 경우에 해당하며 열차 등반 한계구배다. 이 구간을 운행하는 모든 열차는 속도를 최대한 줄이며, 기관사들에겐 공포의 구간이기도 하다. 태백선과 나란히 달리는 함백선, 함백역과 조동역 구간은 이런 경사를 극복하기 위해 똬리굴(Loop식 철도)로 통과한다. 이 점을 상기하면 30‰이라는 구배에 대해 이해가 쉬워진다.

석탄을 위한 철길

연탄에 대한 추억과 에피소드는 차고 넘칠 정도다. 시인 안도현은 '너에게 묻는다'는 단 3행 짧은 시에서 '연탄재 함부로 발로 차지 말라' 한다. '넌 다른 사람에게 언제 한번이라도 뜨거웠던 적이 있느냐' 묻는다. 혼신의 힘을 다하고 하얗게 재가 되어 본 적이 있느냐, 시는 묻는다. 하찮게 보이는 연탄재가 어쩌면 우리보다 훨씬 뜨거운 삶을 살아 냈다는 생각이다.

연탄을 흔히 구공탄(통상 19개로'십구공탄'이라 부름)이라 부른다. 석탄을 가공해 만든다. 영월, 정선, 태백, 삼척은 우리나라 대표적 석탄 산지다. 태백선은 제천에서 영월, 영월에서 함백, 함백에서 황지, 황지에서 고한까지 순차적으로 만들어진 철도다. 석탄과 석회석을 실어 나를 목적으로 건설되었다. 하루 수만 톤 석탄을 실어 날랐다.

남북이 분단되고 남한엔 에너지가 절대 부족이다. 이에 눈 돌린 곳이 강원도 석탄이다. 화력발전소에서 전기를 생산하기 위해선 절대적으로 석탄이 필요했다. 이런 필요로 곳곳에 광산이 개발된다. 강원도와 충청도 대천, 경상도 문경, 전라도 화순에서 석탄이 생산된다. 그 중 강원도는 전국 생산량의 80%을 감당해 낸다.

태백선은 이렇듯 국가에너지 충족이라는 필요에 의해 만들어진 철도다. 조동역에서 자미원역, 민둥산역을 지나면 사북역이 나오고 이어 고한역이 나온다. 우리나라 석탄탄광을 대표하던 '동원탄좌'가 있던 곳이다. 동원탄좌개발(주)라는 악덕기업이 소유한 탄좌다.

검은 사슴
  

 
▲ 갱도 모형 사북 석탄박물관 체험장에 만들어진 갱도 모형이다. 지보공을 통나무로 만들어 늘 붕괴 위험에 노출되어 있었다. 실제 노동환경은 사진보다 훨씬 더 열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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흔히 '막장'이란 말을 사용한다. '인생 갈 데까지 간 사람이나 혹은 그런 행위'를 비유하는 말이다. 본래 뜻은 '갱도 막다른 곳'으로 석탄 캐는 탄부의 소중한 일터다. 작업환경은 무척 열악하다. 갱도 안은 높은 온도에 먼지투성이다. 가스가 누출되어 언제 중독될지 모른다. 지보공은 통나무로 만들어 위험하기 그지없다.

갱도가 무너지면 꼼짝없이 갇혀, 목숨을 잃게 될 위험에도 항시 노출되어 있다. 먼지투성이 막장에서 도시락을 꺼내 먹는다. 먼지와 탄가루로 '진폐증'에 걸리기도 한다. 이런 최악의 노동환경에서 일을 한다. 장시간 가혹한 노동 조건은 개선될 기미가 보이지 않는다. 가족의 생계를 지켜낼 담보 없는 위험에 한 생과 온 몸을 내맡긴 꼴이다.

광부 가족들 삶도 무척 열악하다. 사택(舍宅)이라는 곳도 얼기설기 바람을 막아내는 수준에 불과하다. 다닥다닥 붙어 있는 작은 집들에선 비가 새는 일은 일상이다. 8평에 딸린 방 둘, 부엌 하나 공간에 많은 가족이 기대어 산다. 화장실이나 세면장은 공동이다. 아침마다 화장실 앞에선 긴 줄을 서야만 한다.

상수도 공급도 형편없다. 씻지도 못하는 생활이 이어지기도 한다. 빨래를 맘껏 널 수도, 푸른 하늘을 보는 것도 쉽지 않다. 고지대 탄광은 물류수송도 여의치 않아 물가가 굉장히 비싸다. 쥐꼬리 봉급은 받자마자 공판장이나 술집 외상값으로 사라져 버린다. 공판장 운영자도 사장 친인척이다. 총체적인 수탈구조다.
  

 
▲ 사북 석탄박물관 석탄박물관에 그려진 광부 모습이다. 사진은 웃는 모습이나, 노동환경이나 임금, 생활여건은 열악하기 그지 없었다. 2020년 12월 박물관은 코로나19로 폐쇄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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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가 한강 장편소설 <검은 사슴> 공간 배경이 탄광이다. 깊은 갱도 안에 사는 검은 사슴은 항상 빛을 갈구한다. 자기 보물 같은 뿔과 이빨을 내어주고서라도 빛을 보고 싶어 한다. 하지만 빛을 희구하면 할수록 점점 더 깊은 어둠 속으로 빨려 들어가는 삶이다. 검은 사슴은, 검은 탄을 밥으로 삼아야 하는 광부들 모습 그대로다. 탄광촌은 블랙홀 같은 곳이다. 비인간화의 막장이었다.

회사의 횡포

동원탄좌는 사북과 고한에 걸쳐 있는 우리나라 최대 단일 탄좌다. 1980년엔 동원탄좌와 부수적인 소규모 탄좌를 합해 5000여 광부가 년 160만t, 우리나라 석탄생산량의 11%를 차지할 정도다. 하지만 임금수준은 매우 열악했다.

1970년대 내내 저임금에 시달린다. 1980년 당시 4인 가구 최저임금이 월 24만 원이다. 하지만 탄부들 월평균임금은 15만 5천원에 불과하다. 거기에 고용도 불안정하다. 관리자 눈에 들지 못한다면, 언제 건 일터를 잃을 수 있는 고용구조다.
   

 
▲ 사북역 태백선 사북역이다. 석탄이 주 연료로 사용될 때 이곳을 통해 하루 수만톤 탄이 실려 나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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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상가상이다. 회사는 일명 국토개발대라는 전과자 집단과 지역 불량배들을 앞세워, 어용노조를 만들어낸다. 노조위원장을 대의원이 뽑는 간선제를 유지한다. 해마다 임금협상 때만 되면, 3∼4개월 전부터 수당 등을 조정해 광부들 임금을 깎아 내린다. 임금인상률을 눈속임하기 위해서다. 이런 방법으로 10% 이상 임금이 인상된다 해도, 실질 인상률은 4∼5%에 불과하다.

어용노조는 광부 복지개선이나 임금인상, 작업환경개선보다 회사 측 주장에 동조하기 바쁘다. 노조대의원 선출시기가 되면 막대한 돈이 뿌려진다. 선출된 대의원을 어용노조위원장이 전국 관광지로 끌고 다닌다. 엄청난 향응이 제공된다. 수일동안 이곳저곳 끌고 다니다, 선거 날이 되면 탄광 앞에 내려준다.

광부들 분노는 극에 달한다. 이제 더 이상 참고 있으면서 눈감고 앉아서 빛을 갈구하지 않는다. 오직 싸움이 있을 뿐이다. 1980년은 18년 유신독재가 막을 내린 직후다. 그동안 억눌린 폭압에 대한 반작용으로 민주주의에 대한 열망이 매우 드높았다.

1978년 일어난 '2차 석유파동'으로 에너지 자립이 필요한 시점이기도 하다. 정부는 석탄산업 보호라는 명분을 내세우며, 국민연료로 자리 잡은 연탄가격을 억누를 필요성을 부각시킨다. 이는 광부들 임금인상억제라는 극약처방으로 이어진다.

하지만 광부들 요구는 다르다. 동원탄좌의 경우 40% 임금인상을 요구한다. 그마저 최저생계비에도 미치지 못하는 수준이다. 하지만 어용노조 직무대리였던 전 노조위원장 이재기는, 회사 요구안 20%를 독단적으로 수용한다. 광부들이 반발한다.

사북노동항쟁
  

 
▲ 사북항쟁 당시 모습 저임금과 열악한 노동환경, 착취와 가난에 시달리던 광부들을 회사는 어용노조를 앞세워 임금인상 억제 및 속임수와, 비민주적인 노조 운영을 획책한다. 이에 광부들이 항쟁에 나선다.
ⓒ 정선군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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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0년 4월 16일 광부들은 어용노조퇴진과 임금인상 40%, 노조직선제 등을 주장하며 농성에 들어간다. 4월 18일 항의집회에서 경찰은, 4월 21일에 예정된 집회를 약속하며 해산을 요구한다. 하지만 정작 21일엔 집회를 불허한다. 수백 명 광부들이 탄좌 사무실 앞에서 항의 농성을 벌인다.

경찰은 당초 약속을 어기고, 시위에 나선 광부들을 촬영하여 시위주동자를 색출하려는 증거채집에 나선다. 이에 흥분한 광부들이 항의하자, 경찰은 차를 타고 달아나려 한다. 몇몇 광부들이 바닥에 드러누워 도주하려는 차량을 가로막는다. 경찰은 그 중 한 광부를 치여 상해를 입히고 도주해 버린다.

이 소식을 전해들은 광부들이 이성을 잃는다. 여기에 가족이 가세한다. 시위대는 어느새 6000명으로 불어났다. 인구 3만의 도시다. 다섯 명 중 한 명은 시위에 참가한 꼴이다. 그만큼 탄좌의 착취가 심했다는 반증이다. 시위대가 사북 주요 관공서를 점령한다. 경찰은 줄행랑을 치고 말았다.

4월 21일부터 24일까지 사북은 해방구다. 그러나 도심에선 어떤 불상사도 일어나지 않는다. 공동체 질서가 정연하다. 이재기 위원장은 어딘가로 도망치고 없다. 다만, 그의 부인이 광부가족들 손에 이끌려 탄좌 사무실 근처 전봇대에 묶인다.

언론은 이 모습만을 대서특필한다. 질서가 깨어진 무정부상태라 호도한다. 광부들을 폭도로 몰아세운다. 그때나 지금이나 수구언론은 영혼이 없다. 진실 호도에 바빴고 사실을 제대로 알리지도 않는다. '왜 그런 일이 벌어졌나?'에 대한 근본적인 물음도 없다. 언론이 아니었다.
  

 
▲ 사북항쟁 당시 모습 인구 3만 도시에서 광부와 그 가족 6000여 명이 항쟁에 나선다. 1980년 4월 21일부터 24일까지 항쟁을 이어간다.
ⓒ 정선군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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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월 24일까지 진압 나온 강원도경 경찰과 극한 대치가 이뤄진다. 투석전이 벌어진다. 이 과정에서 돌에 맞은 경찰 1명이 사망한다. 경찰과 광부, 가족 등 160여 명이 부상을 입는다. 이재기와 노조위원장 자리를 놓고 경쟁했던, 광부 이원갑의 중재로 24일 시위는 진정된다. 11개 조항의 타협안이 제시되어 몇 차례 협상 끝에 타결된다.

하지만 권력 실세로 부상하던 집단은 신군부다. 사태가 진정된 후 '합동수사단'을 꾸려 31명을 구속하고 50명을 불구속시킨다. 정선경찰서에선 무지막지하고 치욕스러운 고문이 자행된다. 신군부는 비인간화의 상징이다. 이들 81명이 군사재판에 회부된다. 그 중 많은 사람들이 소요죄와 폭행죄로 2∼3년 실형을 살았다. 많은 아픔과 설움만을 남긴 채 사북항쟁은 그렇게 막을 내린다.

폐광의 그늘

사북·고한은 석탄산업 몰락의 상징이다. 나라는 이곳을 배려한다 했다. 그 명목으로 도박과 레저 시설이 들어선다. '강원랜드와 하이원리조트'다. 이 시설이 이곳에 어떤 활력을 주었는지 알지 못한다. 지역을 어떻게 다시 살려내고 있는지 잘 모른다. 오히려 순박한 지역 인심과 문화를 알량한 푼돈으로 망쳐버린 것은 아닌지. 허풍선이마냥 잔뜩 바람만 불어넣고, 돈은 뒤에서 다른 족속들이 챙기고 있는 것은 아닌지.
  

 
▲ 수직갱도 승강기 사북 동원탄좌에서 사용하던 수직갱도 승강기다. 지금은 탄좌를 대표하는 유적으로 남아 있다. 수직갱도가 있었다는 것은 탄 생산량이 그 만큼 많았다는 반증이다. 횡갱도에 비해 시설비가 비싸, 잘 설치하지 않는다.
ⓒ 이영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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털털거리는 태백선 열차는 무심하다. 높은 산들로 막힌 하늘은 좁기만 하다. 손바닥 하나로 가려지는 사북 하늘이다. 도박과 레저라는 새하얀 손바닥으로 사북 하늘을 가리려 했던 것은 아닌지. 이 하늘을 영원히 가릴 수 있다고 생각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

조동철교는 라멘교다. 라멘교는 배려하는 다리다. '배려'라는 단어에 가슴 시린 지역이다. 사북·고한을 꿰뚫고 지나가는 지장천엔 오늘도 검은 물이 핏물처럼 흐르고 있다.

 

이 글은 이영천 기자의 세상을 잇는 다리에서 가져온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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