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리산방(단양)
한편 퇴계가 떠난 후 두향은 부유함과 호사스러움을 앞 새우는 시중잡배들과 어울리는 것이 단 10개월 동안이나마 모시던 그 어른의 인격에 대한 모독이라 생각하고 아예 기적에서 물러 날 것을 결심하고 새로 부임한 사또에게 그 사연을 말하고 허락을 요청하였다. 신임 사또의 허락을 받아 기적에서 면천되어 물러난 두향은 오로지 퇴계만을 생각하고 그리워하면서 함께 노닐던 강변을 혼자서 거닐기도 하고, 수많은 사연들을 추억하면서 외롭게 살아갔다.두향의 마음이야 오매불망 퇴계를 잊을 수 없었으며, 당장이라도 찾아가고 싶었으나, 퇴계의 처지를 생각하면 참아 그렇지를 못하였다. 하는 수 없이 간접적으로 인편을 보내 문안을 여쭙곤 하였다. 헤어진지 어언 4년이 되는 봄날에 문안 여쭈러 보낸 인편에 퇴계는 다음과 같은 시 한 수를 두향에게 보내주었다.黃卷中間對聖賢(황군중간대성현) - 누렇게 바랜 옛 책 속에서 성현을 대하며,虛明一室坐超然(허명일실좌초연) - 비어 있는 방안에 초연히 앉았노라.梅窓又見春消息(매창우견춘속식) - 매화 핀 창가에서 봄소식을 다시 보니莫向瑤琴嘆絶絃(막햑요금탄절현) - 거문고 마주 앉아 줄 끊겼다 한탄을 말라.퇴계는 이 시문 끝에 壬子 正月 二日 立春이라 쓴 것으로 보아 그의 나이 52세(1552)되는 해의 작품이다. 이 시문의 끝 구절에 "거문고 마주 앉아 줄 끊겼다 한탄 마라"는 분명히 두향의 마음을 위로하는 내용이다. 두향은 이 시 한편을 받고 평생을 거문고 가락에 실어 노래로 불렀다.노년에 벼슬을 떠나 안동 도산서원에 머물던 퇴계는 서원 입구에 '절우사'라는 정자를 짓고 소나무, 대나무, 국화 등과 함께 매화를 심고 즐겼다. 사랑하는 여인 "두향"을 단양에 홀로 남겨두고 떠나 이곳 도산서원에서 후학을 가르치며 그녀를 잊지 못하다가 두향이 인편으로 보낸 난초를 보고 함게 단양에서 기르던 것임을 즉시 알아보고는 밤새 잠 못 이루다가 새벽에 일어나 도산서원 마당에 있는 열정이라는 이름지어진 우물물을 손수 길어 두향에게 보낸다. 이 열정의 우물물을 받은 두향은 차마 물을 마시지 못하고 새벽마다 일어나서 님.. 퇴계의 건강을 비는 정한수로 소중히 다루었다. 열정세월이 흘러 두향과 헤어진지 대략 20 여 년이 지난 1570년 12월 8일 유시 추운 겨울날...저녁 5시 경에 자리을 정돈하라고 다시 이르며 부축하여 일으켜 앉히니 마지막으로 퇴계는 방안의 매분을 가리키며 "매형(梅兄)에게 물 잘 주라"는 말을 남기고 조용하고 편안하게 임종하였다.그날 여느날과 마찬가지로 사모하는 퇴계의 건강을 빌고 있는데 이 정한수가 갑자기 피빛으로 변하였다. 이에 퇴계가 돌아간줄을 간파한 두향은 소복차림으로 단양에서 머나먼 도산서원을 찾아 간다. 첩첩산중의 소백산맥을 홀로 넘어 찾아간 도산서원에서 차마 신분을 밝히지는 못하고 곡하며 세번 절하고 돌아 와서 스스로 곡기를 끊고 자진하였다.두향묘 그 옛날 두향이가 퇴계와 이별할 당시 선물한 매화는 풍기군수 시절에 동헌앞에 심어 기르다가 이후 관직을 버리고 도산서원으로 오면서 그 매화를 다시 가져와 도산서원 광명실앞에 옮겨 심었는데 이것이 도산매다. 하지만 안타깝게 도산매는 1986년에 죽었다. 후계목도 없어 그 모습을 영원히 찾아볼 수 없게 됐다. 현재 남아있는 매화는 1970년, 서원을 보수할 때 심은 것들이라고 한다. 서원 내에 약 15그루가 심어져 있다. 이중 가장 오래된 것은 약 60년 된 것이라고 한다. 1000원권 새 지폐에 보면 퇴계와 함께 그가 가장 사랑한 매화 20여개가 그려져 있다.1000원의의 매화와 퇴계다음은 퇴계가 풍기군수로 떠나기전 단양에서 헤어질때의 장면을 재구성한 것이다.
"나으리, 나으리에게 묻겠나이다. 나으리께오서는 상원사의 동종을 아시나이까?""알고 있다""상원사의 동종이 죽령고개를 넘을 때의 고사를 알고 계시나이까?""들은 바가 있다""하오면 나으리"두향이가 무릎을 꿇고 앉은 채 낮은 목소리로 물어 말하였다.상원사의 동종이 죽령고개를 넘을 때 산기슭에서 꼼짝도 하지않았다는 이야기를 알고 계시나이까?""알고 있다""자그마치 닷새 동안이나 5백 명이나 되는 장정들과 말 백 필이 끌어 당겨도 제자리에서 꼼짝하지 않았다는 이야기도 들은 적이 있으시나이까?""들은 적이 있다고 내 말하지 않았더냐""하오면 나으리, 제 자리에서 움직이지 않자 운종도감이 처음에는 고개를 넘느라 힘이 빠져서 그렇겠지 하고 생각하였으나 닷새가 지나도 움직이지 않자 묘책을 강구했다 하더이다. 그 이야기에 대해서도 알고 계시나이까?"글쎄 그 이야기는 들은 것 같기도 하다만 하도 옛 기억이라 가물가물하니 네 입으로 말해보도록 하여라.""나으리"무릎을 꿇고 앉은 두향이가 천천히 말을 이었다."갖가지 묘책을 찾았으나 방안이 없어 초조해하던 중 마을의 촌로 하나가 찾아와 이렇게 말하였다고 하나이다. '백살을 못 사는 사람도 생이별을 서러워하거늘 하물며 8백살이 넘어 숱한 애환을 지닌 범종이 이 죽령을 넘으면 다시는 못 볼 고향이 아쉬워 제자리에서 움직이지 않는 것입니다' 라고 말입니다."퇴계는 묵묵히 두향의 말을 경청하고 있었다."제자리에서 꼼작하지 않은 것은 이처럼 상원사의 동종뿐이 아니나이다. 나으리, 나으리께오서는 송도기생 황진이에 대해서 들은 적이 있으시나이까?""들은 바 있다""나으리, 황진이는 15세 무렵에 동네 머슴이 연모하여 상사병으로 죽자 그 길로 기계에 투신하였다고 하나이다. 그런데 황진이 집앞을 지나는데 상여는 그 자리에 멈춰 꼼짝도 하지 않았다고 하더이다. 마치 죽령고개에 닷새간이나 멎어 꼼짝하지 않았던 동종처럼 옴짝달싹하지 않았다고 하더이다.그 상여가 어찌하여 움직였는지 그 소문은 알고 계시나이꺼?"퇴계는 묵묵부답이었다."소첩이 대신 말씀드리겠나이다. 황진이가 자신이 입던 속치마와 저고리를 벗어 관을 덮자 비로소 상여가 움직이기 시작하였다고 하는데, 이는 황진이의 속곳이 머슴의 넋을 달래주었기 때문이나이다."두향은 낮은 목소리로 말을 이었다."백년도 못 사는 인생에서 생이별을 슬퍼하는 머슴의 넋을 달래기 위해서 황진이가 입고 있던 속곳을 벗어 관을 덮어주어 상여를 움직이게 하였다면 8백살이 된 범종은 어떻게 하여 움직였는지 그 이야기를 알고 계시나이까?"퇴계는 여전히 묵묵부답이었다."역시 소첩이 대신하여 말씀드리겠나이다. 동종에 있는 젖꼭지 하나를 잘라내었다 하더이다."상원사 동종은 36개의 유듀가 있어 소리울림이 독특하고 청아하였다. 그런데 이 36개의 유두 중 하나를 잘라낸 것이다."젖꼭지 하나를 잘라낸 운종도감은 이를 종이 있었던 안동 도호부의 남문루 밑에 파묻고 정성껏 제를 올렸다고 하더이다. 그러고 나서 다시 죽령에 돌아와서 범종에게 이렇게 말을 하였다고 하더이다. '이제는 미련을 버리시고 먼 길을 떠나시지요'"두향은 일단 말을 끊었다."그러자....."두향이가 긴 침묵 끝에 다시 입을 열었다."그러자 동종이 다시 움직였다 하더이다. 나으리, 이로써 동종은 죽령을넘어 제천, 원주, 진부령을 거쳐 오대산에 안치되었다고 하더이다. 나으리."두향의 눈에서 맑은 이슬이 굴러 떨어지기 시작하였다."나으리께오서는 날이 밝으면 단양을 떠나시나이다. 단양을 떠나시면 상원사의 동종처럼 죽령고새를 넘으실 것이나이다. 나으리께오서는 지척지간이라 마음만 먹으면 불원간 또 다시 만날 수 있다 기약하셨사오나 소첩이 보기에는 이제 한 번 가오시면 다시는 돌아오지 못할 것임을 잘 알고 있나이다. 나으리, 죽령고개가 아무리 높다 하여도 나으리를 향항 소첨의 그리움은 구름이 되어 단숨에 뛰어오를 수 있고, 동종의 무게가 3천3백 근이나 되어 무겁다고는 하지만 나으리를 향한 소첩의 마음에 비하면 한갓 검불에 불과하나이다. 장정 5백 명과 말 백 필이 끈다 하면 상원사릐 동종을 움직일 수 있사오나 소첩의 마음은 절대 끌지 못할 것이나이다. 나으리, 나으리를 향한 내 단심은 그 무엇으로도 끌 수도, 당길 수도, 밀 수도 없는 요지부동이나이다. 상원사의 동종이 8백 년이나 되었다고는 하지만 나으리를 향한 내 상사는 전생으로부터 이어진 천겁의 업이오며, 하늘과 땅이 갈라지기 전부터 맺어온 숙연이나이다. 하오니 나으리, 이제 정히 가시겠다면 나으리께오서 소첩의 젖꼭지 하나를 칼로 베어내고 떠나시오소서."두향의 얼굴은 흘러내린 눈물로 젖어 있었다. 두향은 천천히 저고리를 벗기 시작하였다. 고름을 풀어 내리고 가슴을 헤쳤다."나으리, 젖꼭지 하나를 베어내소서. 그래야만 나으리를 향한 소첩의 미련이 끊어질 것이나이다. 하늘과 땅이 갈라지기 전부터 이어진 나으리와의 천겁의 인연이 끊어질 것이나이다."천천히 저고리를 다 벗은 두향이 은장도 하나를 꺼내어 방바닥 뒤에 놓았다.달빛이 두향의 가녀린 어깨를 감싸고 있었고, 풀어헤친 긴 머리카락 사이로 두향의 젖가슴이 흔들리고 있었다."정녕 가슴 하나를 베어달라는 것이냐?"침묵을 지키던 퇴계가 마침내 입을 열어 물었다."베어주소서."결연한 목소리로 두향이 대답하였다.퇴계는 칼을 들어 곁에 벗어둔 두향의 저고리를 펼쳤다. 퇴계는 망설임 없이 저고리의 깃을 잘라내었다. 당시 양반사회에서는 이혼이 금지되어 있었으나, 저고리의 옷섶을 잘라 아내에게 줌으로써 아내는 자유의 몸이 될 수 있었다. 퇴계가 은장도로 저고리의 깃을 베어낸 것은 두 사람의 연분을 끊어내는 것이었다."이로써...."퇴계가 나비모양으로 베어진 세모꼴의 저고리 깃을 두향에게 주며 말하였다."상원사의 동종이 죽령의 고개를 넘어가듯 내 몸도 죽령을 무사히 넘을 수 있겠느냐?"말없이 울고 있던 두향이가 퇴계가 내민 세모꼴의 저고리 깃을 두 손으로 받으며 말하였다."나으리께오서 저고리의 깃을 자르시니 이것으로 인연이 다 된 것을 알겠나이다. 상원사의 동종에서 잘라낸 젖꼭지를 남문루에 파묻고 제사를 지냈듯 소첩이 이 저고리를 나으리와 함께 지내던 강선대 바위 밑에 파묻으오리다. 그리하여 마침내 다붇쑥 우거진 무덤에 함께 묻히겠나이다. 나으리"퇴계는 두향이가 입던 치마폭에 정표로 다음과 같은 시를 한 수 적어주었다고 한다.
"죽어 이별은 소리조차 나오지 않고(死別己呑聲)살아 이별은 슬프기 그지 없네.(生別常惻測)"이글은 德田 張俸赫님의 '퇴계를 혹애매(惑愛梅)토록 한 두향의 비석'과 네이버블로그 '빛과 어둠'님의 유림 3권중 상사별곡을 풀이한 내용등을 인용하고 이곳저곳의 자료를 모아 정리한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