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 시협 블라디보스토크 문학 탐방기 ( 6 )
신한촌 기념비. 러시아 정교 성당. 독수리 전망대
신한촌 기념비를 찾았다
수많은 독립운동 계획들이 수립되고 한인 독립운동의 기지였던 신한촌에 기념비를 세웠다
신한촌은 블라디보스토크 시내에서 버스로는 10여분 떨어진 곳으로 시내 중심부에 살던 고려인들을 한 곳에 모아 두려는 작은 고려인 이주 정책이었다. 이러한 작은 시도가 후일 고려인 이주 정책의 모태가 되지 않았을까 생각해 본다
그래서 신한촌으로 이주한 고려인들은 이곳에서 극장도 짓고 나름 소사어티를 이루고 살고 있었다.
그후에 말도 안되는 사회주의 집권적 정책인 스탈린의 고려인 대 이주 정책에 의해 다시 중앙 아시아로 대규모 이주 정책이 이루어지기전까지는 이곳 신한촌이 집단 고려인 거주지인 것이다
현재 이곳은 신한촌과는 관계없는 건물과 아피트가 들어서 있어 옛 신한촌의 모습은 없어지고 말아 가슴을 아리게 한다
블라디보스토크에서도 이곳으로 밀려난 고려인들이 다시 또 중앙 아시아로 속절없이 강제 이주 당하여야만 했던 조상들의 한이 맺힌 곳이다
작은 울타리 안에 초라하게 서 있는 기념비가 아직도 러시아에서 고려인들에게 대한 대우를 말해 주는 듯 하여 가슴 아프다
이런 현장을 보면서 아직도 우리의 뿌리를 든든히 하는 작업들이 아직 멀었다는 생각을 지울 수가 없다
민족의 독립을 위해 목숨과 전재산을 받쳐 지켜왔건만 후세들은 이국땅에서 외롭게 싸우다가 가신 선열들의 넋을 위로하는데 그렇게 인색하단 말인가
시인으로 수이푼강 앞에 서서 쓴 졸 시 한 편을 남긴다
연해주 수이푼강가에서
박 영 대
백골로 피어난 억새
조국의 얼굴도 모른 채
나라 잃은 설음 지금도 남아 꽃조차 하얗다
돌아가지 못한 여한이 질컥질컥한 진흙의 늪에서
차디차게 언 발 바다로 향해 걷지 못하고
이리 밀리고 저리 밀려 추위에 떨고 있다
아. 언제나 돌아가리 뼈가루 뿌린 강물
뿌리의 인적 광복은 진정 찾은 것인가
흰 몸으로 시달려온 유랑
헤매다 멈춘 타국에서 아직도 떠돈다
누군가에게 무엇이 되려는 것이 아니었다
옳다고 믿었기에
그 시절 다시 온다 해도 거친 길을 또 다시 가리
광폭열차에 실은 망향의 꿈
시베리아의 집단 횡포는 거역할 수 없는 것인가
바다와 육지가 부딪칠 때
항거할 수 없는 바위에 눌려
등골 휘어지는 가는 허리
무력함에 진저리를 친다.
수이푼강변에 이상설 선생의 유해가 재로 뿌려졌다
수이푼강변의 필자
마지막 날도 문학버스는 계속 달렸다
젊음의 거리를 내려다보는 호텔에서 출발전에
신한촌 기념비 입구에서 고광자 시인
신한촌 기념비 앞에서 숙연해진 시인들
신한촌 기념비. 가운데는 남한. 좌측은 북한. 오른쪽은 고려인을 상징한다고. 인구수대로 크기가 다르게 세웠다
연해주 신한촌 기념탑문
우리 자신을 다시 생각하게 하는 신한촌 기념비
아직도 열강들의 힘 대결 속에서 압박감을 느끼고 있지 않은가..
마음을 다짐하는 시인들
기념비를 보고 마음을 가다듬고 다음 행선지로..
러시아 정교 성모승천 대성당
깔끔하고 정교함이 돋보인다
독수리 전망대 가는 길
금각교
독수리 전망대에서 신혼부부가 촬영하고 있었다
러시아에서 결혼식은 꽃을 선물하고 사진을 찍는 것으로 예식을 대신한다고..
동상은 러시아 문자를 발명해낸 선각자 두 분의 상이다
독수리 전망대에서 바라보는 금각교
블라디보스토크항도 잘 보이고..
독수리 전망대에서
독수리 전망대는 예전에 독수리부대가 있었다고 한다
독수리 한마리 날개를 펴고
블라디보스토크에서 가장 전망이 좋은 곳이다
백두산 호랑이인가
정통 러시아식 건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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