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화론자 찰스 다윈 오늘 2월 12일은, <종의 기원>으로 19세기 유럽의 기반을 뒤흔든 찰스 다윈이 지난 1809년에 영국 잉글랜드와 웨일스의 접경지역인 슈루즈버리에서 태어난 날이다.
정확히 200년 전의 일이고, 찰스 다윈이 현대 문명에 끼친 학문적, 사회적 영향력 때문에 나라 안팎에서 '탄생 200주년 기념' 행사가 열리는, 그런 날이다. 우리나라의 여러 신문에서도 찰스 다윈과 진화론을 바탕으로 한 기획 연재물들이 현재 실리고 있는 중이다. 아래 주소들이 그것들이다.
한국일보의 [다윈은 미래다] http://news.hankooki.com/lpage/it_tech/200902/h2009021102413823760.htm
동아일보의 <다윈은 살아있다> http://www.donga.com/fbin/output?n=200901020125
조선일보의 [다윈 탄생 200주년 기념 '다윈이 돌아왔다'] http://news.chosun.com/site/data/html_dir/2008/12/31/2008123101133.html
중앙일보의 2009기획/ 다윈의 편지 http://news.joins.com/article/aid/2009/02/12/3309663.html?cloc=olink|article|default
노예제도에 반대하는 진보적 가풍의 의사 집안에서 태어난 찰스 다윈은 초중등학교 때 암기 위주 교육에 잘 적응하지 못하여 겨우 과정을 마치고 에든버러 대학 의학과에 입학하였다. 이 자유로운 학풍의 학교에서 잠시 숨통을 틔우긴 했지만 곧 찰스 다윈은 이 학교를 중퇴하고 케임브리지대학 신학과에 입학하였다. 외과 수술에 대한 부적응이 그 한 이유였다. 성공회 신부가 되기를 바라는 아버지의 뜻으로 신학과에 입학하여 1831년에 졸업을 했지만, 그 방면으로 활동하기 보다는 생물학에 깊이 몰두하게 되었다.
<종의 기원> 표지 마침내 찰스 다윈은 그해 겨울, 1831년 12월 27일에 '비글호'를 타고 1836년 2월 10일까지, 무려 5년 넘게 브라질, 우루과이, 포클랜드, 칠레, 에콰도르, 태평양 횡단, 뉴질랜드, 호주, 아프리카 남단을 거쳐 다시 브라질로 하여 영국 플리머스 항에 도착하는 학문적 순례를 하였다. 기나긴 항해 동안 뛰어난 지식인과 교류 하기를 원했던 비글호의 선장 때문에 찰스 다윈은 생생한 현장 학습을 할 수 있었고 그것은 곧 '붉은 공책'(Red Notebook)이라는 보고서로 정리되었다. 그 안에 '종의 기원과 변화'에 대한 모든 착상이 들어 있었다.
귀국 후, 찰스 다윈은 지질학회 서기로 일하는 한편 남미를 중심으로 한 학문 여행을 정리한 끝에 1842년에 <산호초의 확산과 그 구조>를, 1844년에 <화산도의 지질학적 관찰>을, 1846년에 <남미의 지질학적 관찰> 등을 연속으로 발표하였다. 그리고 1859년에 <종의 기원>을 발표하게 되는데, 생물은 자연선택에 의해 진화한다는 요지의 그의 주장은 유럽 근대 문명의 모든 요소 즉 역사, 신학, 과학, 사회, 문화 전체에 큰 영향을 미쳤다.
찰스 다윈은, 겸손하면서도 자유주의적인 가풍을 몸에 익혀 노예제도나 여성 참정권 같은 예민한 문제에 적극적으로 해석하는 입장에 섰으며 사회주의 사상가인 칼 마르크스와도 교분을 나눴다. 노예제를 옹호하는 비글호의 선장과 거듭 논쟁과 말다툼을 벌였던 것도 기록에 남아 있다.
1897년, 다윈의 고향에서 거행된 기념상 제막식 그런데, 그의 학문적 요체나 의의를 요령껏 풀이해낼 만한 능력은 내게 없고, 위에 소개했듯이 여러 매체에서 찰스 다윈 탄생 200주년 특집을 하고 있으니, 이 지점에서 잠시 다른 쪽으로 시선을 돌려보고자 한다.
나는 얼마 전에 스티븐 제이 굴드의 책을 읽었다. 그의 이야기를 하고 싶다. 굴드는 뉴욕에서 태어난 고생물학자이자 진화생물학자이다. 찰스 다윈처럼 진보적인 집안에서 태어났기 때문에 그 어떤 이유의 차별, 그러니까 인종, 문화, 계급, 신분, 경제력, 성, 육체 등 세상의 모든 차별에 반대한 학자였다. 1963년 안티오크대학을 졸업하였고 1967년에 컬럼비아대학에서 박사학위를 취득한 후 하버드대학에서 지질학 교수를 지냈다.
스티븐 제이 굴드의 핵심 영역인 진화생물학 분야에는, 이 사람 말고도 쟁쟁한 스타 학자들이 건재하다. 인간이 그 어떤 정신적인 기제도 갖추지 않고 '빈' 상태로 태어나 외부 세상과의 감각적인 지각활동과 경험으로 전체적인 지적 능력이 형성된다고 하는 <빈 서판>의 저자 스티븐 핑거, 개체의 진화는 전체 환경이나 종의 경쟁 속에 이뤄지기 때문에 가혹한 적자생존일 수밖에 없다는 <붉은 여왕>의 매튜 리들리, 개미 연구가이자 사회생물학의 거두이며 국내의 저명한 학자인 최재천 교수에게 많은 영향을 미친 <통섭>의 에드워드 윌슨, 소설가 복거일이 '어차피 적자생존의 사회'라는 뉴라이트 문화정치론을 피력하기 위해 자주 인용하는 <이기적 유전자>의 리처드 도킨스 등이 그들이다.
진화생물학자 스티븐 제이 굴드 진화생물학자이자 대중적인 과학저술 활동을 많이 한 스티븐 제이 굴드 역시 이 분야의 대표적인 학자이고 저술가다. 최재천 교수는, 도정일 교수와의 <대담>(휴머니스트)에서 스티븐 제이 굴드가 '젊었을 때' 큰 공헌을 하였으나 중년 이후에는 그 반복에 그쳤다고 말한 적 있다.
아무튼 스티븐 제이 굴드는 다윈의 생애와 사상에 대한 오해를 풀려고 노력했던 진보적인 생물학자라고 할 수 있다. 그 대표적인 저서가 <다윈 이후>이다. 이 책에서 굴드는 다윈의 사상이 근현대의 정치, 사회, 문화에서 어떻게 왜곡되었는가, 그리하여 그 본질은 무엇인가를 집중적으로 썼다. 그는 다음과 같이 말한다.
“우리 서양인들은, 인간은 미리 예정된 과정의 가장 위대한 창조물이므로 지구와 생물들을 지배하고 소유할 수 있는 운명을 지닌 존재라고 오랫동안 생각해왔다. 사실 나는 참된 다윈 정신이 그러한 우리의 오만한 사상을 부정함으로써 황폐해진 이 세계를 구원해내지 않을까 하고 생각하곤 한다.”
1982년, <뉴스위크> 표지모델이 된 굴드 스티븐 제이 굴드는, 학문적 활동 뿐만 아니라 좌파적 관점에서 사회 활동도 활발히 하였다. 1960년대에 영국에 교환학생으로 있을 때, 그는 흑인의 출입을 금지한 클럽 앞에서 주말 집회를 열었으며, 귀국 후에는 베트남 전 반대 운동에 가담하였다. 1969년에는 교수 신분으로, 대학이 전쟁에 개입하는 것을 반대하는 하버드 학생들의 저항을 지지하기도 했다. 이러한 활동은, 학문의 성격 여부를 떠나서, 한 시대의 지식인으로서 마땅히 가져야할 신념과 행동이지만, 이러한 사회적 실천을 학문의 영역에서도 수미일관하게 관철했다는 점에서 그의 이름을 기억하게 만든다.
종교 쪽에서 다윈의 진화론을 터무니 없는 공상으로 치부한 것을 비판적으로 해부하는 것을 시작으로, 다윈의 진화론을 잘못 활용하여, 선천성 범죄형 이론이라는 반인권적인 골상학 같은 것이 어떻게 창궐했는지 살폈고 인간의 역사적 문화적 총체성을 무시하고 오직 '유전자'에만 집중하여 인간 사회를 '악무한의 적자 생존'으로 해석하려는 시도에 대해서도, 스티븐 제이 굴드는 맞섰다. <다윈 이후>를 보면 이를 흥미롭게 살필 수가 있다.
굴드는 27년간 <월간자연사>에 에세이를 썼다 사족으로 한마디 더하면, 본문과 상관없이 스티븐 제이 굴드가 책 맨 앞에 쓴 '헌사'도 인상 깊다. 움베르토 에코는 <세상의 바보들에게 웃으면서 화내는 방법>의 수록된 글에서, 책의 헌사나 서문이 얼마나 관습적이며 상투적인가를 풍자적으로 예시한 적 있는데, 그러나 지금도 지구상의 모든 저자들은 그 책에 직간접적으로 도움을 준 주변 사람들 중에 누구를 어떻게 적어야 하나, 고민을 많이 한다.
물론 조금은 유머러스하게 쓰는 사람도 있는데, 최근에 읽은 추리 소설 <무덤으로 향하다>(황금가지)에서는 추리작가 로렌스 블록이 "이 책에 이름을 넣을 수 있다면 무슨 짓이라도 하겠다고 맹세한 사라 엘리자베스 마일스 양에게도 감사를 표합니다"라고 하였는데, 둘의 관계가 무척 의심스럽다.
스티븐 제이 굴드는 아래와 같이 썼다. 단 한 문장인데, 그의 진보적인 학문과 사회적 활동에 깊은 영향을 미친 아버지에게 바치는 글이다. 이 헌사를 읽고 나면, 갑자기 집의 아이들을 위해 미술관이나 동물원이나 박물관이나 음악당의 이번 주말 스케줄을 살펴보고 싶은 마음이 들 것이다. 20세기의 뛰어난 진화생물학자 스티븐 제이 굴드는 <다윈 이후>의 맨 앞에 이렇게 썼다.
"다섯 살 나를 박물관에 데려가 티라노사우루스를 보여 주신 내 아버지를 위하여"
인간과 지구를 위한 아름다운 항해
다윈의 비글호 항해기 | 찰스 다윈 지음 | 장순근 옮김 | 가람기획 19세기는 '서구 문화 모든 것의 혁명'이었다. 산업과 기계와 정치와 예술의 혁명이었으며 동시에 학문의 혁명이었다. 그때까지 서구의 인류가 생각했던 크기와 범주와 대상 자체가 깊고 넓게 확장된 시대였다. 찰스 다윈은 인간과 지구의 역사, 그 자체를 전면적으로 뒤집어놓았다. 그것을 가능케 한 아름다운 항해의 기록이다. <종의 기원> 대신 이것을 선택한 것은, 직접적이고 전문적인 고전 보다는 그것에 서서히, 그리고 차분하게 다가갈 수 있는 책을 고르는게 낫다는 생각 때문이다. 23살 나이에 비글호에 오른 찰스 다윈의 차분한 기록이다. 어린이 독자를 위한 <다윈의 비글호 항해기>(베틀북)도 있다. 다양한 그림과 사진 자료가 아이들 눈높이에 딱 맞춰 쓴 글과 함께 흐른다. ☞ 상세정보 및 구매 바로가기 /
인간과 사회에 대한 위대한 통찰
다윈 이후 | 스티븐 제이 굴드 지음 | 홍욱희, 홍동선 옮김 | 사이언스북스 다윈에 대한 오해와 편견에 맞서 싸운 스티븐 제이 굴드는 대중적인 과학 저술가로도 유명하다. 그는 미국 자연사박물관이 발간하는 월간 <자연사>에 27년에 걸쳐 300여 편의 에세이를 연재한 뛰어난 글쟁이다. 그의 학문 사상을 집성한 <다윈 이후>는 그중에서도 백미가 되는 것으로 이후의 많은 저작과 에세이의 젖줄이 되는 책이다. ☞ 상세정보 및 구매 바로가기 /
또 하나의 중요한 저작
이기적 유전자 | 리처드 도킨스 지음 | 홍영남 옮김 | 을유문화사 리처드 도킨스의 이 책은 1976년에 출간되었다. 그 이듬해인 1977년에 스티븐 제이 굴드의 <다윈 이후>가 출간되었다. 이 두 책으로 인하여, 두 학자는, 이른바 '선의의 경쟁자'가 되어 현대 생물학의 새 영역을 열어 나갔다. 도킨스는 '유전자'가 인간의 명령자이며 인간 그 자체라고 보았다. 자기와 비슷한 유전자를 후대에 남기려는 '이기적'인 행동은 물론이고 다른 생명체를 돕는 이타적 행동도 모두 자기와 공통된 유전자를 남기기 위한 본능적인 명령이라고 보았다. 그는 스스로 고안한 '밈'(Meme)이라는 개념으로, 그 나름의 생물학적 성과를 사회 전체로 확산하였다. 국내에 경우, 그의 사상은 뉴라이트 쪽에서 과도하게 인용하기도 한다. 요컨대 '어차피 먹고 먹히는 경쟁 사회'라는 식으로 말이다. ☞ 상세정보 및 구매 바로가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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