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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모와 자녀의 유전자 관계

아리박 2009. 11. 5. 05:49
친할머니는 유전적으로 손녀에게 끌린다
[조선일보] 2009년 11월 03일(화) 오전 06:04   가| 이메일| 프린트
할머니는 손자·손녀에게 무조건적인 사랑을 베푼다. 동물세계에서는 죽을 때까지 자손을 낳기 때문에 손자·손녀를 돌보는 할머니를 찾을 수 없다. 그런데 할머니의 내리사랑도 손자와 손녀에 따라 차이가 있는 것으로 밝혀졌다. 친할머니와 함께 살면 손녀의 생존율이 높아지고, 손자는 외할머니와 함께 살 때 생존율이 높아지는 것으로 확인된 것이다. 손녀는 친할머니와, 손자는 외할머니와 유전적으로 더 가깝기 때문이다.

조기 폐경 설명하는 할머니 가설

영국 케임브리지대의 레슬리 냅(Knapp) 교수 연구진은 지난달 28일 '왕립학회보 B(Proceedings of the Royal Society B)'에서 X 성염색체를 기준으로 7개 국가의 인구변화 자료를 분석해 이런 결과를 얻었다고 밝혔다.

대부분의 동물 암컷은 죽을 때까지 새끼를 낳는다. 그러나 인간 여성은 수명이 평균 70세 정도지만 45세 전후에 폐경을 맞는다. 이 차이를 설명하는 것이 이른바 '할머니 가설(grandmother hypothesis)'이다. 할머니가 직접 자녀를 낳기보다는 손자들의 양육에 도움을 줘 자신의 유전자를 가진 자손을 번성시키는 방향으로 몸이 진화했다는 것이다.

할머니 가설은 아직도 논란 중이다. 폐경 이후 10년마다 평균 2명의 손자를 더 본다는 연구도 있지만, 어떤 원시부족에서는 나이가 들어도 계속 자식을 낳는다며 반대하는 학자들도 있다. 냅 교수팀은 할머니처럼 여성에게 고유한 X 성염색체를 기준으로 할머니 가설을 검증했다.



X염색체 유사성은 친할머니·손녀가 최고

난자는 X염색체 하나를 갖고 있고, 정자는 X나 Y염색체 중 하나를 갖고 있다. X염색체를 가진 난자와 Y염색체를 가진 정자가 만나면 XY 염색체의 아들이 되며, X염색체 난자와 X염색체 정자가 만나면 XX의 딸이 된다. 따라서 아들은 어머니와 X염색체가 100% 같다. 반면 딸은 어머니와 X염색체 절반이 같다.

3대째로 가면 손녀는 아버지로부터 받은 X염색체와 어머니로부터 받은 X염색체를 반반씩 가지므로 결국 친할머니와는 X염색체를 50% 공유한다. 반면 손자는 오로지 어머니로부터만 X염색체를 받기 때문에 친할머니와 전혀 관계가 없다. 대신 손자·손녀는 외할머니와 X염색체를 25% 공유한다. 어머니는 외할아버지와 외할머니로부터 각각 절반씩 X염색체를 받았기 때문이다. 따라서 X염색체로 보면 친할머니와 손녀가 연관관계가 가장 높고, 외할머니와 손자·손녀, 친할머니와 손자 순으로 연관관계가 낮다.

연구진은 일본·에티오피아·감비아·말라위의 농촌지역과 독일·영국·캐나다의 도시 지역 인구변화를 17세기부터 지금까지 분석했다. 그 결과 X염색체 연관관계대로 손녀는 친할머니와 함께 살 때 생존율이 가장 높았으며, 손자는 그보다 낮았다. 외할머니는 손자·손녀 모두에게 그 중간의 영향을 미쳤다.

의도적 차별 증거는 없어

X염색체가 가진 유전자는 전체 유전자의 8%에 불과하다. 하지만 연구진은 "생식능력이나 지능과 같은 생존에 매우 중요한 유전자가 X염색체에 있어 자신의 유전자를 후손에 전달할 때 핵심적인 역할을 한다고 볼 수 있다"고 밝혔다. 미국 사우스 플로리다대의 인류학자인 로레나 마드리갈(Madrigal) 교수는 '사이언스(Science)'지와의 인터뷰에서 이번 연구에 대해 "진화생물학에서 가장 흥미로운 주제에 중요한 기여를 했다"고 평가했다.

할머니가 손녀의 생존에 긍정적인 영향을 미치는 구체적인 메커니즘은 아직 밝혀지지 않았다. 연구진은 "친할머니가 손녀와 손자를 의도적으로 차별한다는 증거는 어디에도 없다"며 "다만 유전적으로 더 가까운 자손이 생김새나 냄새 등으로 무의식적인 신호를 보내거나, 아니면 할머니가 전해준 특정 유전자가 자손의 생존을 더 유리하게 했을 가능성이 있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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