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의 생각

소소한 호사

아리박 2015. 11. 6. 07:58

  소소한 호사

 

 

너냐 나냐 하는 친구들끼리 1 2일 동안( 11/3 ~4 ) 골프 여행을 떠나다

언제부턴가 골프여행하면 동남아 골프 여행을 연상하게 되어 버렸다. 10여년 전만 해도 우리나라 골프장 사정이 절대 부족하고 골프 인구는 급속하게 늘면서 부킹이 안되고 비용도 많이 들고 사치성 운동이라고 남의 눈치 봐야 하는 시절에 외국으로 골프 여행을 가게 된 것이 이젠 우리나라 골프장 사정이 풀렸음에도 많은 이들이 아직까지 외국으로 골프 여행을 가고 있는 것이다.  외화 낭비 되고 뿐만 아니라 내장객 감소로 우리나라 골프장이 도산하고 있는 현실에서 외국 골프 여행은 재고해 봐야 할 문제가 됐다는 생각이다

 

 우리는 에콜리안 정선 골프장으로 간다

에콜리안 골프장은 국민체육진흥공단이 세우고 운영도 함께 하는 나라에서 국민 체육 진흥을 위해 설립된 골프장이다. 전국에 네 곳을 운영하고 있다는데 그 중 한 곳이 정선 에콜리안cc이다

 

나이 들어 손자들 보고 난 이후에는 시간이 많아 자유로울 것 같은데 각자의 생활과 짜여진 관계에 매여 훌훌 털고 1박2일 잠깐이나마 집을 나서는 일이 드물게 낼 수 있는 욕심이 되었다 

 

11월이 되고서 부터는 황사 미세먼지 대신 아침 안개 주의보 뉴스를 듣고 있었으나 새벽에 일어나 길을 나서 본 적이 없는 사람은 언뜩 이해하기 힘들 정도로 짙은 안개가 온 세상을 덮고 있다

사방에 짙은 안개 알갱이가 고속도로에 쫙 퍼져 눈 앞까지 흐릿한 것이 쌀뜸물을 뿌려 놓은 것 같다. 앞에 달리는 차의 미등조차도 가물가물하다. 뱃짱인지 만용인지 어떤 사람은 미등조차 켜지 않고 달리는 차가 있어 눈에 힘이 들어가게 한다

중부고속도로를 올라 타고 영동고속도로롤 접어 들었는데 안개는 더욱 심해지고 옆자리에 탄 희윤이가 비상등 스위치를 눌러 놓은다. 내 걱정보다 자신이 더 위험을 느껴서라고 해 두자.

 

여주 휴게소에서 각자 식성을 맞춰 자율식당에서 아침을 먹고 간식용 빵도 준비했다. 나는 빵을 좋아하지는 않지만 다니면서 이곳의 빵 맛이 먹어본 빵 중에는 가장 맘에 든다

중부내륙고속도로를 따라 가다가 감곡ic에서 내려 제천 영월 정선가는 국로 들어섰다. 자주 다니는 길이지만 안개는 자욱하지 동승한 친구들이 있어 조심한다고 운전을 하는데도 커브를 돌 때면 동승자는 옆에서 손잡이와 발에 힘을 주는 것 같다. 이른 새벽이라서 차량이 적고 고속도로와 별반 다르지 않은 도로 여건이 약간은 과속하게 충동질을 한다

 

박달재를 지나면서 어느새 누군가 `천등산 박달재를 울고넘은 우리 님아~'를 흥얼 거린다

제천 영월을 지날 때까지 안개속에서 몽환적인 길을 헤메였다면 영월을 지나자 언제냐 싶게 앞이 트이기 시작하더니 여명도 산능선을 넘어 햇살을 살풀이 형형색색 만장처럼 땅바닥에 내려뜨리고 있다

골프장까지 가는 길이 드라이브길로는 더 이상 일 수 없게 아름다운 추경을 연출해 내고 있다

 

10시쯤에 골프장에 도착. 체크인을 마치고 내일까지 라운딩을 한다니까 락카를 내일까지 사용하란다. 클럽도 락카에 그냥 보관해도 된다고 한다

어제만 해도 쌀쌀했는데 오늘은 해가 나면서 날씨가 확 풀렸다 옷을 갈아 입고 스타팅 홀로 나갔다

평소 골프 이야기를 빼면 할 이야기가 없다는 희윤이도 안개속을 달려와 첫 티샷을 앞에 두고 설레는가 보다

언제나처럼 멋진 긴 드라이버 샷은 햇살이 비치는 창공을 날아 한 마리 산 새가 되어  페어웨이 한 가운데 내려 앉는다

모두들 손뼉을 치면서 `역시 안프로 !!!'

두번째로 나선 내 드라이버는 에이밍한 방향을 외면하고 아랫쪽으로 홀을 벗어나 구릉으로 향해 버리고 만다

오비를 낸 사람의 입에서는 한결같이 ` 에이  ~~ 바보' 그것은 자신에 대한 자조일까 질책일까.

3번 타자 성용이 드라이버 샷은 예전에 보지 못하던 샷으로 단단히 칼을 갈고 온 모양이다. 일자로 뻗어나간 공이 희윤이 공 옆에 사뿐이 안착한다

4번 선수 광현이는 약간 슬라이스가 나 해저드 바로 옆에 떨어져 무사했다

오비를 낸 나는 맨 나중에 멀리건을 받아 한번 더 기회를 얻고 힘을 빼고 부드럽게 드라이버 샷을 보냈다

슬라이스이긴 했지만 해저드 옆에 광현이 볼 쪽 페어웨이에 멈춰 핀과는 직코오스 자리였다 

 

그린은 포대 그린으로 앞에 벙커와 커다란 해저드가 페어웨이 중간에서 부터 시작되어 그린 부근까지 이어진다

뒷쪽은 경사가 심한 산악으로 우거진 숲이어서 만만치 않은 그린 상황이다

140m 정도 남은 거리에서 내가 친 세컨 샷이 그린옆 엣지에 떨어져 다행이다. 퍼터로 공략이 가능하기에 투 퍼터로 홀 아웃할 수 있겠다

광현이 샷이 온 그린되어 핀과 15m쯤에 떨어진다. 이어 성용이의 샷이 그린 부근에 떨어졌다

에이스 희윤이의 세컨 탓이 의외로 벙커로 들어 가고 만다. 너무 잘 하려다가 그만.  그러나 다음  벙커 샷은 정확히 핀 옆 1m에 갖다 붙인다. 광현이 투 온, 다른 사람은 쓰리 온.

이렇게 홀 아웃하니 첫 홀에서 세 사람은 보기를 기록했다

나는 안갯속을 운전했다는 명목으로 오비를 멀리건 주는 걸로 인정되어 보기로 적어 주었다

 

홀 수가 더해 갈 수록 날씨는 화창해지고 가을 골프 하기 가장 좋은 날씨가 되면서 백두대간속 라운딩을 즐겼다

뒷 따라 오는 제천에서 왔다는 네 골퍼맘들의 샷 솜씨를 화제로 사내들만의 속닥거림도 배가 되는 즐거움의 하나였다

 

오르락 내리락 아홉 홀을 돌았을 때 일반 골프장 18홀 다 돈 만큼 많이 걷고 운동량이 많았다

아침을 제법 든든하게 먹었다고 생각했으나 허기를 느꼈다. 그래도 끝내고 저녁을 맛있게 먹자고 시장기를 참아 가며 경기를 계속했다

 

경기를 마치고 기록자 희윤이가 오늘의 성적을 발표했다

희윤. 영대 92타. 성용. 광현 94타 첫날 성적치곤 훌륭하지는 않지만 그런대로 만족스럽다

 

락커에 클럽을 보관하고 샤워를 하고 나왔을 때는 4시를 넘긴 시간이었는데 몇시까지 라운딩이 가능하냐고 물었더니 오후에는 5시 20분까지만 가능하단다

가을 해도 짧아 졌지만 해가 지면 한기가 들고 바로 어두워진다고 한다

 

그래서 내일은 부킹 시간을 7시 32분으로 앞 당겨 조정하고 27홀을 돌기로 단단히 맘을 다졌다

숙소를 아리산방으로 정하고 단양으로 오는데 동강을 따라 오는 산세가 이어지는 풍경은 그야말로 절경이었다. 일부러 동강의 풍경을 보여 주려고 이 길을 택해서 농익은 가을의 절편에 젖어 마음도 출렁출렁 강물을 따라 흘러간다

산들은 초록의 옷을 벗고 반라의 모습으로 잠자리에 누워 있는 듯 긴 허리를 굽히고 누워 있다

몸을 씻고 기다리는 실루엣이 드러나는 여인의 모습이랄까..

 

깎아 지른 절벽이 넘실거리는 강물을 보듬고 또 강물은 산에 피는 풀과 나무들을 생명의 기운으로 감싸 안으면서 수 천 만년 풍토를 만들고 풍속을 키워낸 것이리라

절경을 즐기기에 바빠 허기도 잊은 채 주변에 취하다보니 어느덧 단양 읍내까지 와서야 시장기를 느껴 시장통의 마늘 순대집에서 수육과 순대국밥으로 배를 채웠다

평소에 자주 다니던 아주머니라서 맛깔 나는 수육을 그득 썰어 내왔다. 고기의 비린 내를 마늘로 가시게 하여 언제 먹어도 담백한 그 맛이다. 비싸지 않으면서 즐기는 단양의 맛집이다

막걸리 한 잔 높이 들고 `위하여'를 외치며 친구들은 이런 소소함에 모두 함박 웃어 준다

간결하면서도 풍성한 저녁 식사였다

 

아리산방에 도착해 겨우살이를 주재료로 몇 가지 산약재와 산수로 끓인 차를 준비했다. 특히 광현이는 몇 년 전 큰 수술을 하고 나서 그를 위하여 특별히 준비한 차다. 한 번 맛을 본 친구들은 거듭 차 맛을 느꼈는지 몇 차레 거푸 마신다

하루 종일 중노동(?)에 지친 친구들이 뜨끈하게 난방을 올린 아리산방에서 옹기종기 깊은 잠에 들었다.

 

 

이튿날

6시 출발을 정했으나 5시쯤에 벌써 일어나 수근거리기 시작해서 어제 저녁 끓인 차를 데워 한잔씩 마시고 각자의 물병에 한 병씩 나누어 담아 낮 동안 마시게 했다. 오늘 마신 이 茶의 효능으로 일년간은 면역 효능을 발히할 것이다

5시 30분에 출발하려고 보니 오늘도 안개가 산골짜기를 가득 메우고 있다 그래서 거리가 가까운 국도를 놔 두고 상황이 좋은 고속도로를 택했다

안개속 국도를 지나 고속도로에 오르니 밑에는 자욱한 안개 바다요  산 중턱에 나 있는 고속도로는 안개 위를 달리는 仙界의 세상이다

안개 수묵에 잠긴 세속의 此岸 세상을 뛰어 넘어 彼岸의 경계에 와 있는 듯 하다

바다 위에 떠 있는 인생의 배를 둥실 타고 흔들리듯 유영하고 있는 착각에 빠진다

잠시 동안의 선계의 체험을 마치고 국도에 내려오니 다시 안개속 세상이다

 

 

 

골프는 욕심으로 가득 차 있다

물욕. 지배욕. 우월욕. 자만심.

이런 골프의 속성이 말도 많고 사건도 많아 안 좋은 시선을 초래하게 했다

골퍼들이 자중하고 숙고해야할 부분이다

 

그런데 한번 발을 들여 놓으면 매력에 빠진다. 그렇게 신사적인 운동이 없다

과오를 스스로 판단하는 양심. 혼자 해결해야 하는 자결. 자제와 도전이라는 양면성. 파트너와의 관계 향상. 이런 면들이 결코 간과할 수 없는 매력이다

그래서 골프 18홀을 한번 같이 돈 사람이 18년을 사귄 그런 저런 친구보다 낫다는 이야기도 있다 

 

 

정선 에콜리안은 골프의 비친화적인 속성을 완화하고 장점은 최대화한 골프장이다

곳을 찾는 골퍼에게는 적어도 속물근성, 저급의 욕심이나 세태의 찌듬, 저 혼자만 아는 독식같은 그런 비난은 안 해도 될 것 같다

최소한의 문명 이기를 자제하면서 골프를 즐길 수 있는 정지 작업이라고나 할까.

에콜리안에는 골프에서 가장 비인간적인 캐디제도가 없다. 클럽 운반용 모노레일 카트만 있을 뿐이다

 

자연 친화적이란 말은 이 골프장에는 너무 고급스러운 말이다

백두대간이 둘러 싸고 있는 주변 산세는 기상을 그대로 병풍으로 삼고 인공이란 말이 무색하리 만치 페어웨이를 제외한 곳은 숲 그 자체다. 덜 개발하고 덜 인공적이고 덜 파괴적이다

해발 600m의 고지에서 바라다 보이는 골짜기에 삶의 애환을 숨기고 그 품에 한강을 안아 대대로 이어 온 우리 역사를 꾸려 왔는지..

곳곳이 절경이요, 고향이요, 인심이라,

 

저비용. 저 문명으로 가벼운 욕심이면 즐길 수 있는 에콜리안 cc

에콜리안만 같으면 골프가 비난 받을 일 없을 것 같다

오늘 하루 골프장 이용료는 그린피. 카트. 이용료 모두 합해서 4만원이다. 그러고도 무제한 라운딩이다

단 인터넷 회원에 가입만 하면..

국내에서 가장 비용이 적게 드는 골프장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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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시 32분 티업에 나서고 보니 골프장이 온통 은빛 서리 세상이다.

온 산야를 은으로 도금해 놓은 것 같다. 그린은 서릿발이 되어 구르지 않고 구르는 공에 얼음밥이 얼기설기 엉겨 붙는다. 신발에 끼인 잔디가 얼어 붙어 퍼팅을 방해한다

 

햇살이 우리와 함께 홀을 따라다니며 비추는 모습이 우리를 지키는 햇살캐디와 같다는 느낌이 든다

아홉 홀을 다 돌았을 때 서리가 가시고 페어웨이나 그린 상태가 정상으로 돌아왔다

이번 9홀은 몸풀기로 간주하고 이제부터 잘해 보자고 다짐을 하고 다시 경기에 임하였다. 항상 골프를 하다 보면 이제부터는 마음 먹고 잘해 보자고 시작하지만 마음 먹은대로 안 되는 것이 골프다

 

27홀 하기로 했으니 지금부터 18홀을 돌 것이다

다들 컨디션도 괜찮고 페어웨이 사정도 좋아졌다

 

마음 먹은 대로 잘 하기를 다짐하면서..

그러나 골프가 항상 그렀듯이

어제는 처음으로 하니까 외경하는 마음으로 조심스럽게 했다면 오늘은 좀 익숙해졌으니 힘을 좀 써 가면서 치니까 더 많은 실수가 나오고 거칠어진다

골프는 항상 골퍼에게 실망을 안겨 주기도 하고 또 희망을 주기도 한다

이번에도 역시나..

 

다음에는 더 잘 해보자는 희망을 남기면서 라운딩을 마친다.

같이 해준 네 친구에게 참 소중하다는 고마움이 앞 선다.

 

 

 

나냐 나냐 하는 친구 네명

 

골프 없이는 못 사는 친구 희윤

 

오늘을 위해 단단히 준비한 성용.

 

큰 고초를 이겨내고도 오늘이 가장 행복한 날이라는 광현

 

잔뜩 힘이 들어간 자세. 언제나 부드러워질런지.. 쯧.쯧.

 

 

숲속 친구

 

                          배경에 맞춰 입은 패션 감각

 

                           넉넉한 체구만큼 폭이 넓은 마음 씀씀이

 

                            제대로 즐길 줄 아는 골퍼

 

                             ...

 

쉼 없이 달려온 친구들. 이젠 이렇게 느긋하게 앉아 쉬기도 하자..

 

 

 

 

 

 

 

 

 

 

백두대간 병풍을 치고..

 

 

 

 

 

 

 

 

 

                          3cm 에 갖다 놓은 오늘의 샷 !!!!

 

서리를 맞고도 웃고 있는 야생 국화

 

우리 짐을 져 준 당나귀 모노레일 카트

 

..

 

내 머리에만 서리가 내린 줄 알았는데..

 

 

친구야! 끝까지 같이 가자 ^^

 

그래. 꼭 약속해 ~~~~~~

 

이렇게 오손도손 ~~

 

 

 

 

 

 

 

 

 

 

 

 

 

 

 

 

골프도 즐기고 인생도 즐기고..

 

백두대간의 모습이 月白 霜白 天地白허니 모두가 白髮의 벗이로구나

 

 

 

 

 

아리산방을 숙소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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