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작시

가까이 한 발자국 더

아리박 2014. 11. 9. 07:07

  가까이 한 발자국 더

 

  박 영 대

 

숲으로 난 사립문을 열고 조심히 다가간다 

안개 하나만 걸친 계절이 늘씬한 나무 어깨에 기대어 허리를 드러낸다

막 세수하고 촉촉하게 일어나 하루 일정에 호흡을 맞추는 중이다

강물을 보고 출렁이는 지느러미를 스캔한다

언제 쓰일지 모르지만 필요한 것이므로.

 

풀들 귀 세우고 소식을 쓸어모은다

이미 알고 있는 사건들도 다시 업데이트

새로 발표한 신작시들이 온라인으로 배달되어 모니터에서 기다린다

산골이라는 말은 뒤처진 문예지나 써먹던 죽은 비유다

바람에 의하면 사흘 뒤에는 황사비가 몰려올 것이라는 예보가 있다

황사는 중국산이라서 질이 의심되는데도 자주 당할 수밖에.

 

천 년을 숙고하고 있는 홍암은 버즘 핀 까운 차림으로 먹거리를 골라낸다

오랜 경험과 우직함으로 주부들이 전폭적으로 신뢰하기 때문이다

느티나무네는 어저께 백수 잔치를 했고

산딸나무네는 주렁주렁 딸 시집 보낸다네

없어서가 아니라 공급 과잉시대에 균형영양이 걱정거리다

 

아직도 싱싱한 뿌리는 새벽이면 기운이 뻗쳐 처녀지를 찾아

좁은 틈을 들치고 들어가 촉수를 들이대고

부끄러워하는 씨방의 유두를 빨고

단백질. 지방. 탄수화물을 부지런히 채우고 나온다네

요즘은 비타민이나 미량요소 아니면 항암 식품만 찾는다고 하데

태초에 입맛을 키운 곳이니 욕심내지 않아도 생명의 밭이 아닌가

나무가 썩고 나무가 태어난다

풀이 썩고 풀이 태어난다

내가 썩고 내가 태어난다

 

다 정자가 헤엄치는 씨를 익힐 자양이다

익히고 나면 붉은 하루가 휴식에 들어간다

 

그다음은

몸이 알아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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