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작시

차례상

아리박 2013. 2. 9. 17:53

차례상

 

대대로 내려온 맛이 고목나무 뿌리처럼 굵다

정갈한 첫날을 차례상에 올리고 삼가 절을 올린다

땅속에 언 내리 사랑 속내 아궁이에 지핀 장작으로

그믐날 밤 곱은 손을 녹인다

흙 속에다 묻어둔 가족의 명운

지하에서 지상으로 드러나는 음덕의 밧줄

키운 정으로 하루하루를 엮었다

내가 다닌 길이 생생한 허무가 되고

다 떠난 묵밭 허수아비로 남아

모를 줄 알아도 새 식구들 꼭꼭 눈 속에 넣는다

 

내 걱정은 마음 두지 마라

떠나고 나면 모두 신선이다

먹고 입는 게 구름이고 바람이다

내 혈육인 들판에 오손도손 뿌리 내려

울창한 숲에 푸른 둥지 하나 틀고 싶을 뿐이다

눈 하나, 코 하나, 귀 하나, 입 하나

다 귀한 우리 식구다

지나고 나면 모두가 세월이다

세월의 끝은 새로운 시작이다

 

조상이 된 아버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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