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실
산을 보고 있으면 위에서
모래가 굴러와 반짝반짝 성을 쌓고
숲을 보고 있으면 아직
살아있는 풀들의 풀어내는 이야기
강을 보고 있으면
송사리 지느러미의 수중 무도회
보일 듯 말 듯
빠름 빠름에서는
모래의 유랑이
가시나무의 집요가
지느러미의 우아한 선율이
그냥 지나간다
원시경과 근시경의 엇교합처럼
실상을 맞춰내지 못한다
어안렌즈에 비친 허상의 산과 숲과 강의 소소한 길
두 번 갈 수 없는 길
가까이 또렷이 맞아들이는 길맞이
걷는 속도가 보이는 속도
지금 걸음에서 조금만 천천히
달리면서 못 보고
지나가 버리는 허실
눈 너무 큰 채를 고른 것이다
촘촘한 눈에 맞는 걸음걸이
눈이 트인다
*** 빠른 세상에서 놓치고 지나가는 허실이 아깝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