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작시

허실

아리박 2012. 12. 7. 12:01

허실

 

산을 보고 있으면 위에서

모래가 굴러와 반짝반짝 성을 쌓고

숲을 보고 있으면 아직

살아있는 풀들의 풀어내는 이야기

강을 보고 있으면

송사리 지느러미의 수중 무도회

 

보일 듯 말 듯

빠름 빠름에서는

모래의 유랑이

가시나무의 집요가

지느러미의 우아한 선율이

그냥 지나간다

 

원시경과 근시경의 엇교합처럼

실상을 맞춰내지 못한다

 

어안렌즈에 비친 허상의 산과 숲과 강의 소소한 길

두 번 갈 수 없는 길

가까이 또렷이 맞아들이는 길맞이

 

걷는 속도가 보이는 속도

지금 걸음에서 조금만 천천히

 

달리면서 못 보고

지나가 버리는 허실

 

눈 너무 큰 채를 고른 것이다

촘촘한 눈에 맞는 걸음걸이

 

눈이 트인다

 

 

                           ***  빠른 세상에서 놓치고 지나가는 허실이 아깝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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