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곧 증손자를 볼 나이임에도 살면서 이런저런 상처 받고 아퍼 잠을 설칠 때에는
이불속에서 몸을 새우처럼 웅크리고 중얼거립니다.
엄마! 엄마! 어떻게 좀 해 봐... 엄마!“
원로작가 박완서선생(80세)의 말입니다.
우리 삶에 있어서도 가끔은 길에게 물어야 합니다.
나는 지금 어디쯤 와 있는지,
내가 걷는 이 길이 과연 내 삶에 있어서 큰 회한을 남기지 않는 그런 길인 지,
그리고 이 길 저쪽에 늙고 지친 또다른 나의 모습은 어떠한 지,
이 길에서 만난 그리고 앞으로 만날 그 만남의 소중함에 대해서도...
잠시 가던 길을 멈추고
길에게 물어야 합니다.
할 수 있다면 근사한 길에게 물어야 더 폼(?) 나겠지요?
여기 그 길 하나 소개합니다.
담양은 조그만 읍내이지만 볼거리만큼은 그 어느 도시도 따라올 수 없을 정도입니다.
사람으로 치면 키 크고 속없는 저 같지 않고 작지만 속이 꽉 찬 사람입니다.
담양에는, 예로부터 담양은 대나무의 고장인 까닭에 대나무 박물관과 대나무숲 죽녹원이 있고,
자연과 사람이 얼마나 서로 조화를 이룰 수 있는 지를 잘 보여주는 소쇄원이 있고,
조선시대 대표적인 정원 중의 하나인 명옥헌원림(고서면 신덕마을) 등이 있습니다.
그러나 무엇보다도 메타세콰이어 길을 빼놓을 수 없습니다.
메타세콰이어는 '살아있는 화석'이라 불리는 나무입니다. 다른 많은 나무들이 진화에 진화를 거듭하며
지금의 모습을 갖추게 된 데 반하여 메타세콰이어는 화석 속에서 발견된 모습 그대로였습니다.
기록에 의하면 메타세콰이어는 은행나무와 더불어 중생대부터 존재했던 나무라고 합니다. (중생대 2억만년 전)
우리가 살고 있는 이 땅의 역사가 1만년도 되지 않은 것을 감안하면 가히 상상도 하지 못할 시간을 뛰어넘어
우리들 앞에 그 모습을 보이고 있는 이 나무가 바로 메타세콰이어인 것입니다.
미국 최초의 국립공원인 요세미테 공원도 수령이 300~800년에 달하고 100여 미터 높이로 자란
바로 이 메타세콰이어 나무들을 보호하기 위해 국립공원으로 지정된 것입니다.
우리가 흔히 압권(壓卷), 백미(白眉)라는 말을 쓰는 데,
담양에 있는 이 메타세콰이어 길이 단연 그렇습니다.
한국에서 가장 아름다운 가로수길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지요.
왕복 2차로에 하늘을 향해 도열한 독일병정처럼 한 점 흩트러짐없는 메타세콰이어는 10m~20m에 이르는
아름드리 나무로 자라 저마다 짙푸른 가지를 뻗치고 있어 잠시도 눈을 뗄래야 뗄 수 없을 정도입니다.
너무 매혹적인 길이라 차를 타고 지나가기에는 너무도 아쉬움이 남은 길이기 때문에,
차에서 내려 그 길을 걷노라면 메타세콰이어 나무에서 뿜어져 나오는 피톤치드 향기에 몸도 마음도 취해서
혈중 피톤치드 농도가 더이상 주체할 수 없게 되면...
연인끼리 걷노라면 더 사랑에 빠지게 되고,
부부끼리라면 잡은 손에 그이의 온기가 전해지고,
혼자라면 사랑하는 사람을 떠올리게 됩니다.
여름에 짙푸른 녹음으로 그 속에 들어가면 초록빛 동굴에 들어온 듯하지만
가을엔 누구나 가질 수 없는 갈색으로 옷을 갈아입고 그 큰 키로 멀리서 다가오는 겨울을 준비합니다.
혹 이 글을 읽고 계신다면
그리고 그곳에 가 볼 마음이 드셨다면 한가지 준비할 것이 있습니다.
자전거입니다.
뭐 거창하게 차 위에 캐리어에 싣고 가시지 말고 요즈음에는 접이식 자전거가 있으니까 트렁크에 싣고
가시면 됩니다.(그곳에서 임대도 가능하다고 합니다)
그 길을 자전거를 타고 그리고 그 뒤에 사랑하는 사람을 태우고 달려보시기 바랍니다.
조금 떨어져서 보면 영화 촬영하는 것 같지 않겠습니까... 하하
인생을 살면서 가끔은 길에게 물어야 한다면
이 길을 권해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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