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학이론

미세한 시인의 눈

아리박 2012. 4. 10. 13:28

전자현미경보다 미세한 시인의 눈
제2의 현실, 뮤즈가 선사한 ‘느린 걸음’

허만하 시인은 새벽 2시 30분이면 어김없이 눈을 뜬다. 네 살배기 손주 녀석조차 조용한 시간이다. 그 고요함 속에서 글을 쓰고 책을 읽는다. 의과대학생이었던 시절부터 몸에 밴 버릇이다. 저녁에는 항상 10시쯤 잠자리에 든다. 아침 식사는 7시 30분에 하고, 조금 쉬었다가 며느리가 맡겨 놓는 손주와 놀기도 한다. 오전 9시 뉴스를 보고, 여기저기에 전화도 건다. 또 저녁이 오면 그 저녁을 이어가는 라이프 사이클을 그리고 있다.

1992년에 발병한 불수不隨의 몸은 그에게 느린 걸음을 선사했다. “감성이 아니고 사물 뒤에 있는 내면의 구조를 얻어내고 싶다”는, “언어로 새로운 현실을 만들고 싶다, 제2의 현실을 만들고 싶다”는 허 시인에게 뮤즈는 그에 합당한 걸음의 속도를 선사했는지도 모른다.

지난 7월 11일 전국적으로 많은 비가 내리고 있던 날, 부산 해운대에 있는 조선비치 호텔에 들어섰을 때 허 시인은 커피숍에서 체크인 프론트가 있는 곳으로 천천히 다가오고 있었다. 그의 악력은 30년 연하인 기자가 무색할 정도였고, 무엇보다 참 따뜻했다. 동행한 김종해 시인은 커피를 주문했고, 허 시인은 흑맥주를 주문했다. 취잿길의 언제나 변함없는 벗이며, 어느덧 전문 카메라맨의 눈빛을 닮아가는 김요일 시인도 흑맥주를 주문했다.

▶이창동 문화장관이 취임 직후 직원들에게 권했던 책이 '비는 수직으로 서서 죽는다'였습니다. 이 소식을 듣고 어떤 기분이셨습니까?

“옛날 작가들, 가령 소설 중에는 좋은 게 많지요. 이청준의 「이어도」 같은 소설 말이죠. 시집을 골랐으니 우선 반가운 마음입니다. 처음에는 그 선정에 내것이 들어갔다고 해서 그 어른이 잘못 본 게 아니냐 생각했을 정도입니다. 좋은 시집이 얼마나 많습니까?”



기하학적 이미지의 ‘수직’은 실존과 도전의 의미
선생님의 시 「신현의 쑥」을 보면 “폭포처럼 수직으로 선 알몸의 시”가 되길 자청하기도 하고, 「한 시인의 데드마스크」를 보면 “나의 목소리를 땅에 눕히지 말라/ 죽음은 땅에 쉴 수 없다// 눈부신/ 벼랑의 높이에서 떨어지던/ 수직의 목소리”라는 표현이 나옵니다. 또 「장미의 가시 · 언어의 가시」를 보면 “시인의 언어는 기대지 않는다/ 그의 언어는 수직으로 선다/ 중천에 얼어 있는 눈부신 햇살”이라는 대목도 나옵니다. 왜 자꾸 ‘수직적’ 솟구침을 외치십니까? 몸을 낮추고 어깨를 나란히 하고 편안하게 가지라는 권고가 더 그럴 듯하게 들리는 시대에, 선생님의 ‘수직’이란 도대체 무슨 의미를 갖습니까?

“가급적 작위적 언어보다는 자연발생적 말을 쓰려고 하고 있습니다. 처음에는 그런 이미지를 의과대학 때 읽은 오든의 시에서 빌려 썼습니다. 오든의 시에 ‘버티칼 맨’이란 시어가 나옵니다. 수평적 인간 말고 수직적 인간이 되라는 것이지요. 인간이 수평적으로 땅에 기어다니던 시절에서 벗어나 손을 놓고 일어섰을 때 비로소 손의 자유를 획득하는 것이고, 손의 자유와 함께 자각적 자유의 실존성을 깨달아 가는 것이지요. 메를로 퐁티의 책을 읽고, 그가 수직성을 강조했으며 수직은 실존의 표현이 된다는 것을 알게 됐습니다. 수직은 안일이 아니고, 수직은 현실 안주가 아닙니다. 수직은 실존의 자각입니다. 도전적 이미지가 있지 않습니까? 십자가에서도 수직은 높은 곳을 지향합니다. 저 자신이 깊이 생각해보지는 못했으나, 수직이라는 말에 깃든 뒷배경은 그렇습니다. 기하학적 이미지로도 그렇게 말할 수 있습니다.”

▶시의 소재와 서술과 상징과 은유가 시간적·공간적 한계를 부인하고 저항한다는 점에서 평론가들은 ‘우주적 생명력에로 정박 없는 항해’라는 말로 선생님의 시를 해석해내고 있습니다. 무한대의 폭과 깊이를 가진다는 의미로 시가 팽창하다 보면, 그것이 품어내거나 전달하고자 하는 구체적 진실을 붙들어 매는 구심력 또한 강력해야 하는 게 아닌가 여겨집니다. 선생님의 시가 우주적 팽창에 시적 리듬을 갖다 대고 있다면, 그것을 안으로 세우는 구심력은 무엇입니까?

“저 자신이 일단 깊은 생각을 해봐야 좋을 것 같습니다. 그 자각에 이르기까지는 아직 잘 모른다고 말해야 좋은 단계일 것입니다. 그러나 요즘 느낌으로는 약간 귀향적인 생각을 하게 됩니다. 제 자신이 근래에 읽은 횔덜린의 시에도 그런 것이 나왔습니다. 어디로 가느냐 하는 질문 앞에 결국은 귀향이라는 화두를 들고 있게 됩니다. 자신의 얼굴이나 생물학적 설명 말고, 원심력에 버금가는 구심력을 설정한다는 것이, 사실상 그렇게 하고 싶다는 것일 뿐입니다. 귀향이라는 것도 따지고 보면, 그런 것을 하고 싶다는 지향일 뿐입니다.”

발병 후부터 걷고 싶다는 열망
▶선생님의 고흐에 대한 탐구는 인상적입니다. 가령 「한 켤레의 구두- 고흐의 눈 4」를 보면 이렇게 돼 있습니다. “절망을 찾아 다시 떠나야겠다. 고추잠자리는 아침 태양 최초의 빛으로 날개를 편다. 최후의 전신轉身을 위하여 나는 다시 길 위에 서련다.” 고흐는 생전에 자신의 작품을 단 한 편도 제값에 팔아본 적이 없는 화가입니다. 고독과 병고 속에서 목숨을 내거는 실존적 모험에 시달렸던 화가입니다. 선생님 자신의 운명을 고흐의 그것에 대입하시는 욕망은 어디서 비롯된 것입니까?

“고흐가 그야말로 자신의 예술을 위한 열망을 태우는 데 저는 존경과 그리움을 갖고 있습니다. 결국 저는 발병을 했습니다. 그때부터 걷고 싶다는 생각이 제일 원초적으로 자리잡았습니다. 걷는다는 보행의 문제인 것이지요. 고흐의 구두에 대한 저의 착상을 이해하시리라 믿습니다. 제가 미국에서 산 스페인제 구두가 있었는데, 그걸 신고 여행을 많이 했습니다. 그 구두를 생각해서 많이 흐느꼈습니다. 물론 ‘길’ 위에 선다는 상징성을 새로 깨달았습니다. 고흐가 탄광촌에 가서 목사로서 실패하는 대목도 감동적이었습니다. 형편없는 가난뱅이가 거룩한 일을 하는 것에 감동을 받은 것이지요. 고흐의 그림을 보고 네덜란드에 가서 많이 생각했습니다. 테오와의 우의도 존경할 만합니다.”

▶선생님도 그런 형제분이 있으신지요?
“아우가 있었는데 죽었습니다. 5살 터울의 아우로 오래 됐습니다.”

▶선생님의 산문 평전 『청마 풍경』을 보면 유치환이 우주의 무한, 우주의 영원성, 신의 무한성에 절망했다는 관찰을 피력하고 있습니다. 무한 앞에서 유한하기 이를 데 없는 극미한 존재로서 자기 자신을 목도하게 됐을 때, 자신의 실존이 엄습하는 것이고, 이것이 바로 인간에게는 매우 숭고한 절망이 되는 것이겠습니다. 청마 유치환은 시 「광야에 와서」의 마지막 구절에서 이렇게 절규하고 있습니다. “암담한 진창에 갇힌 철벽 같은 절망의 광야!” 이 절망감이 도대체 시인과, 그가 지어내는 시를 읽는 독자 사이에 공유가 가능하겠습니까?

“요즘 독자들의 문제에 시단이 관심을 가져야 합니다. 옛날하고 다릅니다. 주어진 것을 수용하는 것보다 감성과 사유의 깊이가 접선으로 이어지게 하고, 유한 존재를 철학적으로 깨닫게 해야 한다고 봅니다. ‘절망’이라고 할 때 고유성을 생각하고 싶습니다. 절망에도 질이 있는 것입니다. 공통된, 보편적인 것보다, 각자가 저마다의 절망을 가진다고 할 수 있겠습니다. 절망을 추상명사로서 공유하는 것이 아니라, 진실로 고유한 절망과 만났을 때 생기는 게 아닌가 합니다.”

한국시협 활동 출판기념회 자리. 왼쪽부터 김종길, 박남수, 박목월, 허만하 시인 내외(1969년) ⓒ계간 시인세계


30년간 시에 대한 냉담·휴지기는 시적 전신을 위한 준비기간
(동석했던 김종해 시인이 말을 잇는다.)
(김종해) “허 시인이 시에 냉담하지 않았나 생각했습니다. 냉담 기간이 너무 길지 않았나 하는 얘기죠. 그 긴 시간 동안 시를 쓰기 위해 뜸을 들이고 내용을 곰삭게 하는 기간이 포함돼야 하는 것은 맞습니다. 그것은 거꾸로 증명이 됩니다. 허만하라는 시인의 시가 후반 들어 절제된 시로 빛나 보일 때 뜸을 들인 기간으로 소요됐다는 생각이 들게 되는 것이지요. 그러나 평생 쓴 시가 시집 두세 권이라면 너무 과작이 아닌지요.”

(허만하) “폴 발레리도 미분 적분을 20년 공부했습니다. 물리학과 과학을 공부하다가 『해변의 묘지』가 나온 것입니다. 30년이란 휴지기는 저의 게으름이었다고 할 수 있겠지만, 돌이켜 보건대 그렇게 해서 성과물이 있지 않았나 여겨집니다.”

(김종해) “30년이란 오랜 세월입니다. 시를 쓰지 않고 있으면 나중에 쓰려고 해도 좋은 시를 잘 못 쓰게 됩니다. 허만하 시인에게는 시를 향한 구심점이 있었던 모양입니다. 아무리 30년을 삭혔어도 좋은 시가 없다면 일고의 가치도 없었을 텐데 말입니다. 그러한 냉담은 시인의 의도적인 중단입니까?”

(허만하) “타율적인 것입니다. 과작이란 좋은 말은 아닙니다. 게으름은 제가 병리학에 집중했기 때문에 생긴 결과고요.”

(김종해) “시가 꼴보기 싫었던 것은 아닙니까?”

(허만하) “아닙니다. 시에 관심을 계속 기울이고 있었습니다. 결국 로고스와 파토스가 제 안에서 지하수처럼 통해 있었던 것입니다.”

(김종해) “허 시인께서 특히 여행을 하면서 시가 날카롭고 좋아졌습니다. 과학자에서 나아가 시인의 눈으로 보고 들어간 결과가 독자의 눈에 색달라 보인 것이지요. 단순한 여행시가 아니었습니다.”

(허만하) “그 무렵 생각한 것이 있습니다. 옛날 동기창(董其昌, 명나라 화가)이 그랬습니다. ‘행만리로 독만권서行萬里路 讀萬券書’라고요. 내 큰 꿈이었습니다. 요즘은 정년 퇴직해서 세속적으로 이루어졌습니다. 풍경이나 믿음을 통한 것입니다.”

(김종해) “의학자 생활을 끝냈으니 이제 시 생각만 하십니까?”
(허만하) “시에 대한 부채감과 갈등은 항상 있었습니다.”
(김종해) “그러한 갈등이 시에 대한 감각을 무디게 하지 않았군요.”
(허만하) “지방에서는 조금씩 쓰고 있었습니다. 게으름이라고 말할 수 있을까…….”
(김종해) “시에 대한 태만이 아닐까요?”
(허만하) “모리스 블랑쇼가 그랬어요. 시를 쓴다는 것은 안 쓴다는 것과의 싸움이다.”
(김종해) “괴롭지 않았습니까?”
(허만하) “실제로 괴로웠습니다. 내가 시인인가 봅니다. 허영심인 상태도 있었습니다. 그것이 빠져나가자 시인으로서의 느낌이 괴로움이 됐습니다.”
(김종해) “태양이 직각으로 떨어지는 서울……”이라고 읊은 김경린 시인이 있었습니다. “비가 수직으로 서서 죽는다”는 것은 시각적으로 날카롭게 해야 했기 때문입니까?”
(허만하) “나는 너무 좋습니다. 김경린 시인의 시는 제가 잘 모르겠습니다.”
(김종해) “수직, 죽는다, 이 두 마디가 매우 강렬했습니다.”
(허만하) “비는 그저 은빛으로 내린다.”
(김종해) “우리 시사詩史에서도 역동적인 표현을 끌어낸 것은…….”
(허만하) “나는 무심코 나온 말인데…….”
(김종해) “허만하 시인은 고희를 지나 어느덧 원로시인이 되셨는데 시만큼은 감각적으로 첨예해지고 젊어지고 있습니다. 우리 시사가 요구하는 언어의 긴장감을 드러내 보여주고 있습니다. 시를 쓰지 않고 지냈던 중년의 그 냉담기간 동안에도 익을 수 있는 것을 삭히고, 그것에서 뽑아내는 원숙함이 시에 나타나고 있습니다.”

(허만하) “나는 굉장히 젊고 싶습니다. 새로운 것과 사귀어야 젊어질 수 있습니다. 외국 것에도 마음을 열고 있으면 항상 젊어집니다. 사랑을 갖고요. 낯선 것에 방어적인 자세보다 받아들이는 태도가 필요합니다.”

(김종해) “외국 시 가운데 누구 시가 오래 인상에 남습니까?”

(허만하) “초기 영향은 오든에게서 받았습니다. 우리 나라 시들이 너무 약한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듭니다. 사회성도 있으면서 동시에 낭만적 감성도 있어야 독자를 끌어갈 수 있는 것이지요. 우리 나라 젊은 시에도 좋은 게 많습니다. 프랑스의 젊은 지성들에게서 배울 게 많을 듯합니다. 독일시는 너무 관념적이라는 인상을 줍니다. 프랑스 시는 지적으로 번뜩이는 게 있습니다. 고기 비늘 같습니다.”

▶1999년 가을, 시집 『비는 수직으로 서서 죽는다』가 출간됐을 때, 한 평자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한국문단은 그야말로 먹구름을 뚫고 쏟아져 내린 대못 같은 시편들에 폐부가 찔린 형국이었다. 문학의 위기니, 시의 죽음이니 하는 낭설들이 길바닥의 은행잎처럼 나뒹굴던 시절이었으니 오죽했으랴. 게다가 칠순의 노시인이 30년만에 발간한 두번째 시집이라는 사실이 그 충격을 배가시켰다. 문단에서 거의 지워졌던 이름이 그야말로 유령처럼 홀연히 돋을새김했던 것이다. 문명의 역사와 우주의 질서를 한눈에 꿰뚫어보는 혜안과 사물들의 내밀한 역학관계를 헤아리는 감식안, 따뜻하면서도 단단한 어조 속에 깃든 자유로운 정신 등 허만하 시인의 시는 수평적인 속도감에 도취돼 있던 20세기 막바지 한국문학의 심금을 뒤집고도 남을 정도였다.” 또 어떤 평자는 “허만하의 시는 지난 천년의 막바지에 마치 스톤헨지의 유적처럼 발굴되었다”고도 말했습니다. 30년의 세월은 왜 그토록 필요했습니까? 견디는 시절이었습까? 삭히고 익히는 기간이었습니까?

“너무 많은 칭찬은 정말 욕입니다.(웃음) 지난 30년 동안은 상당부분 병리학자로서의 기간이었습니다. 동시에 시인으로서 전신轉身을 하기 위한 준비의 기간이기도 했습니다. 과학에 집중한 것도 결국은 시적인 전신을 위한 기간이었다는 뜻입니다.”

한국시협 주최 부산 세미나를 마치고. 왼쪽부터 허만하, 이유경, 김종길, 정한모, 성찬경 시인(1981년) ⓒ계간 시인세계


청마 유치환 시인에게 결혼 주례 부탁
▶1969년 첫시집 '해조'와 1999년 '비는 수직으로 서서 죽는다' 사이에 일어난 가장 큰 사건을 세 가지만 말씀하신다면요.
“……”
▶청마에게 결혼식 주례를 부탁했던 이유는 무엇입니까? 주례사 가운데 오늘 이 자리에서 기억나는 대목이 있습니까? 부인까지도 청마의 애독자이자 청마의 제자가 된 이유는요?
“정치가나 시장이나 국회의원 같은 주례가 싫었습니다. 나는 시인을 세우고 싶었습니다. 그 무렵 청마 시인이 가까이 있었던 게 계기였습니다. 그러나 처음에는 거절하시더군요. 자격이 없다면서요. 아마도 자기에게는 아들이 없다는 이유였겠지요.”

▶강우방 교수는 허만하 시인에 대해 “절대시를 추구하는 세계적인 현대시인, 시화동원(시와 그림은 근원이 같다)이란 고전적 명제를, 본다는 점에서 현대적 시각으로 치열하게 탐구해왔다”고 말했습니다. 선생님에게 미적 통찰의 한 방편으로서 ‘바라본다’는 것은 겉입니까, 속입니까? 움직임입니까, 멈춤입니까? 아니면 그것들이 내포하고 있는 어떤 의미입니까, 형태입니까?

“별로 생각해보지 않았습니다. 다만 시인은 보는 사람입니다. 총체적인 것을 보고 나서 아주 미세한 것을 봅니다. 또 그것을 재조립해서 전부로 봅니다. 풍경을 볼 때 그렇습니다. 저는 남들이 버리는 것, 그리고 묻혀져 있는 가치를 재발견할 때 좋습니다. 아름다운 것을 재발견하는 것, 의미 없는 것의 의미를 찾아내 재조립하는 것, 그것이 본다는 것의 절차입니다. 제가 오랫동안 전자현미경을 보아 왔는데, 그것이 굉장히 미세한 것을 보도록 영향을 주었습니다.”

▶“허만하는 풍경의 시인이다”라는 말도 참 많이 하는 말 가운데 하나입니다. “누구에게나 저마다의 풍경이나 저마다의 정신의 자화상 같은 것이다”라는 말씀은 무슨 뜻입니까?

“말라르메가 ‘세계는 책이다’라고 말한 것을 빌려서 표현해봐도 풍경이란 굉장한 것입니다. 그것은 하나의 책입니다. 책이 읽혀지기를 기다려야 책 속의 아름다움이 드러나는 것처럼, 아름다움이 보여지기를 바라고 기다리는 풍경이 있는 것입니다. ‘길 위에 선다’는 것이 그것입니다. 그 말은 메타포로 쓰기도 하지만, 실제로 풍경을 만나러 길 위에 있는 것입니다. 거기에 대해 더 공부하고 더 쓰고 싶습니다.”

시인과 의학자의 동행
해부학 의사로서 죽은 사람의 심장을 꺼내는 일과, 시인으로서 산 사람의 심장을 만지는 일은 어떤 점이 비슷하고, 어떤 점이 다릅니까?

“시인은 심장을 꺼내는 게 아니고……”

(김종해) “없었던 심장을 만들어서 달아주는 것이지요.”

“맞습니다.”

▶「내가 문학을 하는 이유」라는 글에서 선생님은 “자연과학적 원리와 시는 내 안에서 동행했다. 두 길의 만남은 교차가 아니라 한 방향을 향하는 겹침으로 나타났고, 이 길 위에서 보편적인 진리가 아닌 구체적이고 고유한 가치를 보는 또 하나의 현미경이 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고 하셨습니다. 시를 전적으로 지향하기 위해서 다른 쪽을 버려야 한다는, 혹은 버릴 수도 있다는 번민은 진정 한번도 없으셨습니까?

“처음엔 의학을 버리느냐를 심각하게 생각했습니다. 시의 길을 위해 결국 의학을 버리느냐 갈림길에 서 있는데, 참, 욕심이랄까, 양립할 수 있을 것이란 생각이 들었습니다. 괴테가 자연과학자이면서 『파우스트』를 쓴 시인이 됐듯이 말입니다. 양자를 가질 수 있으면 삶이 더 풍요로워지지 않느냐 굉장히 고민했습니다.”

▶최근 시인 박태일 경남대 교수가 「세상을 녹이는 납물의 언어」라는 글에서 “허만하 시인은 실재를 그리는 현상론자가 아니라 납물의 언어로 세상을 녹이는 언어 연금술사라고 규정하면서, 그의 시는 실재의 풍경이 아니라 그에 투사된 시인의 관념을 언어적 양감에 치중하여 표현하고 있다”고 비판했습니다. 이에 대해 선생님은 어떤 답변을 주시겠습니까?

“납물의 언어라는 말을 제가 이해할 수 없습니다. 커뮤니케이션이 안되니 대답을 못 하겠습니다.”

▶김춘수 시인이 한국현대시 100년을 50여 편을 통해 정리한 『김춘수 사색사화집』이란 책을 냈습니다. 황동규 시인을 ‘당대 일급의 스타일리스트’라고 말하고, 허만하 시인에 대해서는 ‘전형적인 관념시’라고 말했습니다. 김춘수 시인에게는 어떤 답변을 주시겠습니까?

“저 자신의 체질을 살려 깊은 사유로 파고들어가겠습니다. 아직 젊으니까(김춘수 시인에 비해서?) 그 길로 나가겠습니다. 저 자신의 문체를 완성하기 위해, 사유의 층이 깊이 겹쳐진 질감도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방법적 다양성을 살리고, 인식의 복안성(잠자리눈을 닮은)을 발전시키겠습니다. 그러면서도 이미지는 하나로 받아들이겠습니다. 단 선조적 인식이나 교조적 인식은 원치 않습니다. 시인이 되는 것은 독자적인 스타일을 만드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그것을 못 하면 시인으로서 실패하는 것입니다. 제가 박태일 씨의 비판을 이해하지 못하는 것은 문체론적인 문제로 시인을 잡을 수는 없다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저는 상당부분 의도적입니다. 세상은 은유로 존재합니다. 우리는 세상을 은유로 사귑니다. 아직은 헤매고 있는 단계입니다. 실제 생각하고 있는 게 잘 안 됩니다.”

1997년에 병리학 교수직을 은퇴한 허 시인은 1999년 두번째 시집 『비는 수직으로 서서 죽는다』에 이어 2002년 세번째 시집 『물은 목마름 쪽으로 흐른다』를 펴냈다. 그 사이 산문집 『낙타는 십리 밖 물 냄새를 맡는다』(2000), 『청마 풍경』(2001), 『길과 풍경과 시』(2002)를 펴냈으며, 지금은 오로지 시만 쓰고 시만 생각하고 있다. 문단 사람들은 허 시인이 있어 부산 시단詩壇이 더욱 풍요로워졌다고 입을 모으고 있다. 그가 《부산일보》에 후배와 번갈아가며 쓰고 있는 문학편지 「아침숲길」도 인기 절정이다.

딸 둘(경혜 마흔 살, 경원 서른아홉 살)과 아들 하나(서구 서른세 살)를 두었는데, 모두 의학자로서 아버지와 같은 길을 걷고 있다. 큰딸은 UCLA 약리학 박사이고, 둘째는 콜로라도 대학 미생물학 박사이며, 막내는 진단방사선과 전문의이다.

허 시인은 얼마쯤 후 시선집 그리고 네번째 시집을 낼 계획을 갖고 있다. 청마의 「깃발」이란 시를 볼 때마다 “우선 먼저 깃발과 수평선이 십자가처럼 교차하는 구도가 기하학적으로 보인다”는 허 시인은 아직도 감성에 묶이는 것을 경계하고 있는 거의 유일한 시인일지도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