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학이론

꿈꾸는 시. 혹은 언어의 마력

아리박 2012. 2. 16. 05:47

꿈꾸는 시, 혹은 언어의 마력




김 송 배(시인. 한국문인협회 시분과 회장)




1. 시와 언어의 마술적 요소

시는 언어의 예술이다. 그리고 시인은 언어의 마술사이다. 모든 장르의 문학이 언어를 매체로 하지만, 시는 시인의 마술적인 요소의 언어를 자유자재로 구사할 수 있어야 좋은 작품이 창조되는 고도의 언어예술이라고 할 수 있다.

우리는 일찍이 박목월의「나그네」, 조지훈의「승무」, 서정주의「국화 옆에서」, 김광균의「뎃상」, 윤동주의「서시」, 김춘수의「꽃」 그리고 이형기의「낙화」등을 읽고 이미 시와 언어의 불가분성을 인정하면서 그 서정적인 언어의 묘미에 취해본 바가 있을 것이다.

시를 구성하는 가장 기본적인 요소, 작품을 총체적으로 포괄하는 이 언어를 통해서 이미지와 은유, 상징 등의 의미를 파악하게 되는데 이를 위해서는 별도의 언어 훈련이 필요하다. 아무리 좋은 주제를 투영할 수 있는 뛰어난 발상과 동기가 있었다 하더라도 우리는 이 언어의 결핍이나 고갈에 직면해서 제대로 작품을 완성하지 못한 경험들이 있을 것이다.

우리가 시를 쓰면서 이 작품에 이 언어가 합당한가, 혹은 너무 투박해서 현실적인 감각도 없고 색채도 없지 않나. 그리고 너무 관념적이며 사어(死語)가 아닌가. 하는 등의 문제를 심각하게 연구해야 될 것이다. 왜냐하면, 시의 언어는 의미뿐만 아니라, 음성과 이미지의 세 가지 요소를 지니고 있어서 그 언어를 통해서 작품이 드러내고자하는 빛깔, 음성, 무늬, 감촉, 무게, 리듬까지 다양한 감각을 지각할 수 있게 하기 때문이다.

시와 언어 사이에는 신비한 시적 진실과 우주적 진실의 메시지가 담겨 있다. 그러므로 시인을 능숙하게 언어를 직조하는 우수한 기능공에 비유한다. 마치 마술사처럼 언어를 자유롭게 구사할 줄 알아야 한다는 것이다. 그러나 우리는 언어의 유희(言弄)을 경계해야 하며 잡다한 가식의 언어를 나열하거나 미사여구(美辭麗句)를 동원하여 새로운 시를 개척한 것처럼 시의 본 모습과 그 본령을 혼란시키는 것도 바람직한 시법이 아님에 유의해야 할 것이다.

대체로 시인들은 우리 말과 글을 사랑한다. 아니, 우리 글 ‘한글’을 갈고 닦아야할 책임도 있다. 이것은 우리 민족문화의 근원인 국어를 사랑하지 않고서는 좋을 시를 창작할 수 없다는 말이 된다. 옛날 일제침략기에는 국어 사랑이 곧 나라 사랑이었다. 당시 시인들은 의식적으로 국어 지키기와 순화에 노력하면서 시를 썼다고 할 수 있다.




뵈오려 안 뵈는 님 눈 감으니 보이시네

감아야 보이신다면 소경 되어지이다

--이은상의「소경되어지이다」




가슴엔 듯 눈엔 듯 또 핏줄엔 듯

마음이 도른도른 숨어 있는 곳

--김영랑의「끝없는 강물이 흐르네」중에서




두 볼에 흐르는 빛이

정작으로 고와서 서러워라

--조지훈의「승무」중에서




이처럼 우리 글을 최대한 활용하여 섬세하고 아름답게 묘사하는 실력을 배양해야 한다. 논어에서 한 마디의 언어로써 지자(知者)도 되고 반대로 무식한 자도 될 수 있다(一言以爲知 一言以爲不知)는 교훈을 다시 새겨볼 일이다.



2. 형태시와 공감영역의 확대

우리가 시를 언어로 표현함에 있어서 다양한 기법을 사용하고 있는데 가장 특이한 것은 형태시라고 할 수 있다. 이는 인쇄상의 배열로 제재를 묘사하는 특징을 시각적으로 확인할 수 있어서 본문의 의미나 시사하는 물질적인 대상과 동작 그리고 감정 등의 형상을 부여하고 있다.

조지훈 시인의「백접(白蝶)」을 보면 가운데를 축으로 해서 좌우를 맞추면 한편의 형태시를 이루게 되는 재미있는 형상이다. 이 시는 역삼각형 모양의 꼴을 이루어 나비의 형상을 회화적으로 나타내고 있어서 날개를 펴고 있는 ‘나비’라는 사물을 문자로 나열해 놓은 듯하다.




밤 꽃 불 슬 고 정 가 병 하 너 조 기 가 작 꽃 별 노 한

진 다 픈 요 가 슴 들 이 는 촐 쁜 슴 은 피 섬 래

가 피 히 로 에 거 dis 갔 히 노 가 葬 는 겨

리 지 운 눈 라 花 구 사 래 을 送 밤

라 눈 물 아 辨 나 라 숨 되 譜

물 지 픈 고 있 진 진 고

고 가 운 히 白 뒤

슴 喪 지 蝶

章 않

아 는




이러한 형태시는 기원 전 3세기 그리스 시인들이 즐겨 묘사했으며, 르네상스 기에 영시에서도 성행했는데, 특히 날개, 제단, 달걀, 창, 원주, 피라미드, 다이아몬드, 기하학적 도형에 이르기 까지 사물을 이용하여 다양한 형태를 묘사하였다.

우리나라에서도 이광수의「나비」라든지, 김종삼의「돌각담」, 최하림의「이슬방울」과 이영도의「아지랑이」등이 이러한 형태시의 형식으로 묘사하고 있으며 함혜련 시인은 세계 각국에서 모인 어떤 세미나에서 본 행사를 마치고 자신을 포함한 22명의 대표가 한적한 해변의 원탁에 둘러 앉아 좌담하는 장면을 다음과 같이「해변일기」라는 작품으로 표현하고 있어서 흥미롭다.



현란한 말다발이다

우정의 모임,이라고 하지만



아이슬랜드

이태리 헝가리

차이나 프랑스

저먼 뉴기니어

이집트 타이완

저팬 캄보디아

코리아 브라질

스페인 멕시코

이란 홍콩

에쿠어돌 핀랜드

이스라엘 체코

노르웨이




오색 영롱해라

많은 나라 사람의 말을 하나로 꿰는 것은

나일론끈 같은 영어

--이하 략---




이처럼 시인들은 한 사물이나 관념을 형태적으로 묘사함으로써 독자들의 시적인 접근과 이해에 정감을 공유하려는 의식의 흐름을 심심찮게 시도하고 있다. 필자도 언젠가 등산을 다녀와서 작품「山行」을 쓴 바가 있다. 산의 형태이며 문장은 띄어쓰기를 고려하지 않고 산의 형상묘사에만 치우친 감이 있으나 소개해 둔다.






여기

내마음

구름위에

허허비우고

내밀한지혜와

인자의미덕으로

위장한인간무리들

그들틈새로산에올라

산새울음에몸을섞는다

이제는채울것도없는텅빈

가녀린마음자락바람에날려

하늘끝어디쯤들려올산메아리

기다리다지친몰골을모두추스려

부질없다한몸정갈한山心에파묻고

올라온만큼가벼워지는순한삶의무게

아버려라버리고가리라너를닮아야하리

야-호오-----------------------



3. 이데올로기 혹은 무서운 시

현대시의 구성 요건으로 음악성과 회화성(繪畫性) 그리고 의미성을 말한다. 이 의미성은 곧 시적인 의미로 주제에 해당한다. 누구는 한낱 유행가 가사에도 심상찮은 의미가 있는데 시에서는 어떤 강렬한 메시지가 없으면 작품으로서의 역할이나 가치를 인정하기에는 문제가 많다고 말한다. 그렇다. 주제가 결여된 시는 어쩌면 개인(시인)의 독백이나 다름없을 것이다.

현대시의 주제는 시인의 인생관 혹은 가치관과도 상관성을 갖는다. 우리가 인생을 어떻게 살아갈 것인가. 또는 존재란 무엇인가 등등 고도의 지적인 문제를 투영하지 않으면 안 된다. 이렇게 본다면, 인간의 가치 추구와 동시에 진실을 탐색하는 것이 시의 기능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러나 그 가치관의 추구가 이데올로기에 집착하는 것도 사회주의 국가에서 흔히 볼 수 있게 된다. 특히 북한의 모든 예술의 형태가 그러하듯이 문학은 더욱 가시적으로 그들의 체제나 수령동지를 찬양하고 그 업적을 칭송하지 않으면 문학이 아닐 뿐만 아니라, 반동으로 처형될 위험에 처하게 될 것이다.



오늘 그 이는 / 조선 인민의 영예의 상징 / 싸우는 조선의 투쟁의 기치 / 동서의 전선을 한손에 틀어쥔 / 승리의 조직자, / 탁월한 령장 / 세계의 인민이 그 이름을 노래한다 / [영웅조선]으로 불려지는 그 이름.... / 월가의 양키들이 그 이름에 떤다 / [싸우는 조선]으로 불려지는 그 이름에..... ---백인준의「크나큰 그 이름 불러」




이처럼 김일성 탄생 40돌을 맞이해서 그에게 바친 시이다. 미제국주의에 대한 극도의 거부반응과 저주를 바탕으로 하여 ‘탁월한 령장’으로 찬양하고 있다. 그쪽의 시인들은 이것이 주제가 된다.

그런데 우리 문단에서도 흔히들 말하는 저항시, 참여시, 민중시, 노동시 또는 소위 섹스 시라는 것들은 그 표현 방법이 너무 지나칠 정도로 저속하거나 직설적이어서 시가 갖는 멋과 맛을 찾아볼 수가 없는 것도 있다. 작년인가 6.15남북작가회가 금강산에서 결성될 때 남측 어느 시인이 낭독하여 박수를 받았다는 김남주의 시와 노동시의 대부로 불리는 박노해의 시 그리고 섹스에 관한 다음 작품들은 어떤가.




“조국은 하나다” / 이것이 나의 슬로건이다 / 꿈 속에서가 아니라 이제는 생시에 / 남 모르게 이제는 공공연하게 / “조국은 하나다” / 권력의 눈 앞에서 / 양키 점령군의 총구 앞에서 / 자본가 개들의 이빨 앞에서 / “조국은 하나다” / 이것이 나의 슬로건이다

---김남주의「조국은 하나다」첫 연




전쟁 같은 밤일을 마치고 / 새벽 쓰린 가슴 위로 / 차거운 소주를 붓는다 / 아 / 이러다간 오래 못 가지 / 이러다간 끝내 못 가지 // 설은 세 그릇 짬밥으로 / 기름투성이 체력전을 / 전력을 다 짜내어 버둥치는 / 이 전쟁 같은 노동일을 / 오래 못 가도 / 끝내 못 가도 / 어쩔 수 없지 ---박노해의「노동의 새벽」1, 2연




우리의 시간과 정열을, 그대에게 / 어쨌던 그는 매우 인간적이다 / 필요할 때 늘 곁에서 깜박거리는 / 친구보다 낫다 / 애인보다 낫다 / 말은 없어도 알아서 챙겨주는 / 그 앞에서 한없이 착해지고픈 / 이게 사랑이라면 // 아아 컴-퓨-터와 씹할 수 있다면!

---최영미의「Personal Computer」중에서




학생들에게 최영미의 시 한 편을 읽어주는 시간 / ‘아아 컴-퓨-터와 씹할 수 만 있다면!’ / 낭독을 마치자 / 한 여학생이 씹이 뭐냐고 / 어느 나라 말이냐고 물었다 / 처음엔 날 놀리는 줄 알아다 / 그 표정이 너무나 진지해서 정말로 모르느냐고 했다

---이동재의「씹을 위하여」첫 부분




이렇게 노골적으로 표현하면서도 이런 경향의 시들이 한국 현대시의 대표성을 갖는 것처럼 서점에서는 베스트 셀러가 되고 이런 류의 시인들이 최고의 시인으로 대접도 받고 있는 우리 문단의 현실을 어떻게 수용해야 할 것인지 모를 일이다.

우리 시인들도 어떤 목적을 위한 작품을 쓸 수 있다. 가령 어느 학교 개교기념일이나 어떤 잡지 창간 몇 주년 기념을 축하는 글 또는 누구누구의 서거를 애도하는 조시(弔詩) 등을 그 목적에 적절하도록 축복과 슬픔을 직설로 표현하는 경우는 있을 수 있다. 또한 국가와 국민의 공공이익을 위한 진정한 목소리도 낼 수 있다.

그러나 어떤 상황과 어려움을 타개하기 위한 한 집단이나 개인의 목소리를 시로 표현단다는 것은 문학적으로나 인간의 정서적으로 그들의 목표만큼 공감대를 형성하기에는 무리가 있을 것이다.

일제시대에 항거하여 독립을 주장하던 애국적 저항시인들과 6.25 전쟁에 포탄을 무릅쓰고 국민들과 일선 군인들을 격려하던 종군작가들의 표현과는 엄격하게 구분되어야 할 것이다.




4. 언어의 무질서 그 역설 또는 해학

동서고금을 통해서 언어를 가장 잘 마름질하는 시인들이 가끔 해학적인 형용으로 작품을 창작하는데도 최고의 경지를 누리고 있다. 어떻게 보면 이러한 묘사도 저급한 언어의 희롱이 될 수 있지만, 아이러니라는 측면에서 보면 의미전달에 상당한 역할을 담당하기도 한다.

그러나 요즘도 해체시니, 언어의 파편이니, 어떤 기호의 놀이 또는 초현실주의, 포스트모더니즘이라는 명목하에 언어의 무법자들이 횡행하고 있다는 점을 간과할 수 없을 것이다.




신사임당 / 이기선(내 어머니) / 한석봉의 어머니 모씨 / 유관순 / 잔 다르크 / 클레오파트라 / 양귀비 / 크산티페 / 보다도 더 악랄한 // 여자(?)와 / 한 10년 살다보니 거의 / 반 병신 --김영승의「빈사의 성자」부분-




애인이 없다고, 독은 독인데 孤獨이군 / 高毒, 그녀의 미소는 얼마나 농도가 짙은지 / 그녀의 눈빛은 다이옥신이 타는 듯 보이지 않는 / 불꽃을 가지고 있다 푸르스럼한 그녀의 / 孤毒, 사내들은 모른다 독은 독으로 치유해야 한다 / 그녀의 毒을 미량만 훔쳐서 나의 / 孤獨에 타 마시자 나의 사십오년이나 된 실업에 타 마시자 / 그녀의 毒을 나의 獨에 타 백신을 제조하자 --최종천의「毒」중에서




흑싸리를 던질지 홍싸리 껍질을 던질지 / 동전만한 눈알을 굴리며 고뇌하는 화투꾼들 / 그들은 죽음의 밤에도 킬킬대며 / 잔돈 긁는 재미에 취해 있다

--최호승의「세속도시의 즐거움」중에서




한편 시적 언어의 무질서를 조장하고 시창작의 최상위에 있는 만유(萬有)의 인과성을 부정하는 작품도 있다. 이처럼 어법의 모순뿐만 아니라, 중증 정신질환자의 횡성수설이거나 말장난 같기도 하여 어리둥절하기만 하다.




일천구백팔십삼년봄에만났으니까일천구백팔십삼년인지잘모르겠다두현이의생년월일의생년월일이일천구백팔십사년오월십오일이니까열달만에났다고치면일천구백파ㄹ십삼년이되고열당맞춘것은아닌것같으니아니결혼하고바로두현이가캐어난것은아니니까일년반은된것같고그러면결혼한것이겨울이었고그러면일천구백팔십삼년이월에결혼했던것이고그러면만났던것은그전해봄이었으니까이런구백팘십이년봄이다 --중략--일천구백팔십이년봄에만났으니까만나지십칠년되도햇수로는손가락으로꼽아보면팔십이팔십삼팔십사팔십오구십오아니다다시팔십이이팔십삼십팔년이다 --이만식의「아내의 문학」부분




요즘은 인터넷이 발달하여 사이버 공간에서 동호인들끼리 문학 사이트를 만들고 까페를 개설하여 서로 작품을 올리면서 대화도 한다. 옛날에는 상상도 못했던 일이지만, 그 속에 난무하는 언어의 무질서는 도를 넘고 있다는 생각이다. 비속어, 은어(隱語) 등 이해할 수 없는 신조어들이 우리 글과 말을 퇴페시키는 매체가 되고 있다는 점은 우리 모두에게 대단히 염려스러운 일이 아닐 수 없다.

그러나 우리는 현대시의 한 기법으로서 풍자(satire), 아이러니(irony), 역설(paradox), 반어(反語-word in reverse), 패러디(parody) 등의 수사법으로 표현하여 또 다른 의미의 창출을 시도하는 작품을 많이 대할 수 있다. 이러한 표현은 어떤 면에서는 좋은 시를 성립시키는 조건이 되기도 한다. 서로 이질적인 이미지로 결합하는 위트(wit-지혜, 기지, 재치)로서 시의 대조나 구조의 원리로 보는 경향도 있다.

대체로 이러한 표현법의 특성은 ‘아는 체, 잘난 체, 똑똑한 체’ 등을 반대로 ‘모르는 체, 못난 체, 바보스런 체’로 상호 대립된 어형(語形)의 속성을 지니고 내면계와 외몀계 혹은 현실과 외관의 대조가 있다. 그리고 비극적 요소와 희극적 요소, 미적 요소, 비판의 풍자적 요소가 있어서 거리감, 자유로움으로부터 재미가 있지만 비개성적이라고 할 수 있다.




平壤妓生何所能 能歌能舞又能詩

能能其中別無能 月夜三更煥夫能 --김삿갓의「기생과 합작」




金樽美酒千人血 玉盤佳肴萬姓膏

燭淚落時民淚落 歌聲高處怨聲高 --이몽룡이 변사또 생일잔치에서




어느 바람 짙은 소망의 둘레 안에서 모순의 뜻은 / 포도주로 변하고 있을까

--신동집의「모순의 물」중에서




내 눈 맞출 색한을 / 어서 좀 불러 주어요 / 세버들허리 낭창거리며 / 세버들허리 낭창거리며 / 압구정동으로 가야것쓰나 / 난 지금(‘93) 패드중이거들랑요

--이수화의「패러디:어우동-93」중에서




가갸 거겨 / 고교 구규 / 라랴 러려 / 로료 루류 / 르리 라

--한하운의「개구리」



이러한 역설이나 아이러니는 우리의 고전에서도 얼마든지 찾아볼 수 있다. 예컨대 삼국유사에 나오는 ‘開見二人死 不開一人死’ 는 ‘편지 봉투를 열어보면 두 사람이 죽을 것이며, 열지 않으면 한 사람이 죽는다’는 역설인데, 결국 두 사람은 역적 모의자요 한 사람은 임금을 지칭하는 것이라는 점술가의 말에 따라 편지를 개봉하여 임금은 살았다는 고사이다.

한편 고전에서 해학과 역설을 자주 사용한 사람은 방랑 시인 김삿갓이다. 그는 입만 열면 시가 되지만, 그에게 불손하거나 인간적 측면에서 못마땅하면 거침없이 역설을 쏟아내었다. 과히 언어의 천재(당시는 한문이지만)라고 할 수 있다.




5. 꿈꾸는 시, 시의 난해성

현대시는 꿈을 꾸고 있다. 일반적인 담론이나 산문과의 차별성도 있지만 이미지나 상징 등의 약간 까다로운 표현이 은유법, 의인법 등으로 묘사되는 경우가 많아서 꿈속을 헤매는 독자들을 많이 접한다. 우리는 이를 시의 난해성 혹은 난해시라고 한다. 우리 시의 난해성은 대표적으로「오감도」를 포함한 이 상의 작품 전체에서 확인할 수 있다.

한편 김춘수의 이론대로 ‘무의미시’라는 것도 있다. 이는 독자(혹은 대중)들을 향해서 ‘시가 음시절의 시로 되돌아가면서 대중을 모을 수는 없지 않은가? 시는 근본에 있어서 정치가 아니다. 쇼도 아니다. 읽기 싫으면 읽을 필요가 없는 물건이다.’는 고립적이며 고답적인 창작형태에서 무의미시는 탄생되었다고 한다.

이렇게 무의미시는 인간이 부재하는 비인간화의 시라고 평자들은 말한다. 삶의 세계를 배제한 반사실주의적 시, 즉 도덕적 감정과 첨예하게 대립하는 미적 감정만을 중시하는, 그러니까 이 또한 난해한 시가 되고 말았다.




모래밭에서 / 수화기 / 여인의 허벅지 / 낙지 까아만 그림자 / 비둘기와 소녀들의 랑데부우 / 그 위에 / 손을 흔드는 / 파아란 깃폭들 / 나비는 / 기중기의 / 허리에 붙어서 / 푸른 바다의 층계를 헤아린다 --조 향의「바다의 층계」중에서




비닐 우산, / 받고는 다녀도 / 바람이 불면 / 이내 뒤집힌다. / 대통령도 / 베트남 대통령 //

사기도 하지만 / 잊기도 잘 하고 / 버리기도 잘 한다 / 대통령도 / 콩고의 대통령

--신동문의「비닐 우산」




모과는 없고 / 모과나무만 서 있다 / 마지막 한 잎 / 강아지풀도 시들고 / 하늘 끝까지 저녁노을이 깔리고 있다 / 하느님이 한 분 / 하느님이 또 한 분 / 이번에는 동쪽 언덕을 가고 있다 --김춘수의「리듬 ll」




나의 無知는 어제 속에 잠든 亡骸 / 세자르 프랑크가 살던 寺院 주변에 머물렀다 / 나의 無知는 스테판 말라르메가 살던 木家에 머물렀다 / 그가 태던 곰방댈 훔쳐 내었다 / 훔쳐 낸 곰방댈 물고서 / 나의 하잘것없는 無知는 / 반 고호가 다니던 가을의 近郊 / 길바닥에 머물렀다 / 그의 발바닥만한 낙엽이 흩어졌다 / 어느 곳은 쌓이었다 / 나의 하잘것이 없는 無知는 장 폴 사르트르가 / 경영하는 연탄공장의 직공이 되었다 / 파면되었다

--김종삼의「앵포르멜」




그렇다면 공감을 확보할 수 있는 시(더러는 形而上詩라고도 한다.)는 없는 것인가. 시의 기능과 효용이 근본적인 만유의 존재를 탐색하는 것이라면 우리의 정서는 어떠해야 하는지는 이미 그 해법이 제시되어 있다. 시의 위의(威儀)나 시인의 시정신은 내면의 성찰을 전제로 하는 인간의 기본 정서(七情-喜怒哀樂愛惡慾)가 환기되는 주제로서 고운 우리 글로 묘사되어야 할 것이다.

물론 거기에는 시작법의 모든 요소, 이미지, 상징, 은유 등등이 적절한 위치에 가미된 시적 언어의 조화는 결국 좋은 시, 영원히 공감할 수 있는 영혼의 노래가 될 것이기 때문이다.*

'문학이론' 카테고리의 다른 글

시는 감춤의 미학  (0) 2012.02.16
수사법 총정리  (0) 2012.02.16
대중적인 인기 시들의 헛점  (0) 2012.02.16
문학특강 (시)  (0) 2012.02.15
시의특성 : 시어를 중심으로  (0) 2012.02.1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