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작시

나목의 숲

아리박 2012. 2. 8. 04:09

裸木의 숲

 

따뜻함까지 꽝꽝 얼어붙은 외진 산중에

찬 빛 느끼하게 날리고 있는 오후

거침없이 은밀한 속 숲 구석까지 훔친 바람은

뜨거운 심장을 먼저 유혹하지 않는다

원시의 바다에서 고기떼와 놀던 생명의 씨앗

때 잘못 만난 향수는 이제 더 푸를 생각 못하고 

목숨 하나 구원받기를

 

그러나,

매몰차게 걷어붙이는 얼굴에서 아는 사람이 더 무섭다

 

가파른 절벽에 빙폭으로 얼어붙은 꿈

통과의례처럼 좁다랗게 그어진 비탈에서 옴짝달싹 못하고 있다

구름 걷히고 트인 하늘마저 뒤태 가려주던 그늘까지 걷어간다

벗을 것 하나 없이 다 벗겨진 나목들의 부끄럼 털기

이럴 때는 그 가을 빨간 유혹에 속없이 다 주어버린

마지막 낙엽 한 장이 후회스럽게 아쉽다

그저 묵묵히 수치 당하고 있다

손가락 하나 까닥하는 거드름으로 잔가지 몇 개 건드리면

그 파문 견디어내지 못하고 동통 전신으로 퍼진다

 

얼려라 이 심장부터!

다 내준 비장한 나목

칼 쥔 바람 앞에서 차라리 당당하다.

 

 

 

           ***  바람에 나무가 흔들리는 것을 보니 나무 끝에 잔가지가 먼저 흔들렸다

                 그 가느다란 가지가 흔들리더니 점차 중간가지로 나중에는 밑둥까지 뒤뚱거려 흔들린다

                 잎 하나 지켜주지 못하고 헛헛하게 서 있는 나목이 좀 더 영악하지 못한 것을 후회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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