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리산방(단양)

아리산방

아리박 2011. 5. 19. 12:30

이 글은 서울 농협  동인 소식지에 실린 글입니다( 제 31호. 2011. 4. 30 )

 

아리산방

                                           

   퇴직은 누구에게나 어쩔 수 없는 만남이다

재직시에는  맡겨진 일에 충실하여야 하고  퇴직하면  또 나름대로 남은 삶을 자연스럽게 받아들여야 하는 소프트랜딩이 필요하다

 

  직장 생활을 하면서 느낀 것이 있다면 직장일 이외에 취미 생활 같은 자기 세계를 갖고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그래야 평소 생활이 활기차고 권태로움에서 벗어날 수 있다

한꺼번에 다 하려 하지 말고 조금씩 시간을 두고 자기 취미 생활을 만들어 가는 것이 필요한 것 같다

어떤 분야가 됐든 간에 평생을 자신 스스로 할 수 있는 즐길 거리 하나쯤 만들고 살아야 한다는 것이다

요즘은 세상이 넓어져서 새로운 활동들이 많이 생겨 얼마든지 골라서 할 수 있는 분야가 널려있다

나름대로 자신이 좋아하고 하면 즐거운 분야가 있게 마련이다.

생각이 다르고 관심이 다르기 때문에 다 같을 수는 없지만 자기 것을 찾아내야 한다. 그것과 함께 있으면 혼자서도 심심치 않은 자기 세계를 이름이다

 

  퇴직이 눈앞에 다가오면서 그런 생각이 더 절실해지는 것을 느낀다 

일찍 시작하면 할수록 더 유리하겠으나 늦었다고 기회를 잃어버린 것은 아니다 . 처음에는 관심을 갖다가 취미로 시작해서 점차 심화해 나가면 좋을 것이다

특히 농협같은  고객업무를 하는 직장에서는  이러한 취미활동이 더욱 필요한 것은 물론이고 할 수 있는 여건도 좋은 직장이다 

업무 추진에도 자기 취미를 활용할 수 있을 뿐만 아니라 다양한 업무와 공간적인 제약이 없고 자연을 기반으로 하는 일들이 직원들에게 사고를 폭넓게 관심을 가질 수 있게 해 준다 

 

  나는 어린 시절부터 문학을 하고 싶었다

아마 내가 어렸을 때 여건이 허락하였다면  더 일찍 문학의 길로 접어들었을 것이다

그러나 넉넉지 못한  어린시절 일찍 농협에 입사하여서 한 직장에만 오랜 기간을 근무했다

근무하면서 밖으로 나타내지는 않았지만  내심으로는 언젠가는 문학의 길로 정진해야지 하는 속마음은  잃지 않고 있었다

 

  아직 문학에 미숙하고 배움도 부족하고 공부할 곳도 찾지 못하고 지방에서 근무하고 있을 때 서울에 오게 된 것도 나의 이런 꿈을 염두에 둔 상경이었다.  시골 촌놈이 근거도 없이 서울에 와서 살기란 또 얼마나 어려운가.

직장이 있으니 근무지만 옮기면 서울살이에 대한 공포감도 적고 자연스럽게 서울 생활에 들 수 있어서이다

서울에는 그야말로 모든 유명 인사들이 얼마든지 있다

책에서만 읽을 수 있던 유명한 문학인들이 살고 있는 곳이 서울이다

그분들과 함께 같은 곳에 살고 있다는 것 만으로도 문학에 가까이 와 있는 것 같았다

 

  80년대초 충무로에 있는 설파라는 카페에서는 매달 한번씩 `토요일 오후와 시'라는 표제로  시낭송 모임이 있었다

이 행사는 일간지에 어느 시인이 문학 강연을 한다고 소개될 정도로 시중에 회자되는 문학 모임이었다

그때 이 모임에는 유명한 시인들이 문학 강연도 하고  시에 관심 있는 독자들이 모임을 만들어 배우고 문인들과 교류하면서 어울렸다. 시인은 물론 소설가 음악가도 참여하여 장르를 넘어 우리나라 문인들의 월례회 같은 모임이었다

 

  당시 우리 문단의 어른이셨던 미당 서정주 시인이 허줄근한 차림으로 나타나시어 누님 같은 국화에 대해 말씀하시면서 자리를 함께해 주던 기억이 난다.

나도 여기에 회원으로 참여하여 같이 어울리고 습작을 가지고 가서 발표도 하고 시평도 받고 같이 어울리며 지내면서 문인들과도 어울렸다.

그러나 보다 적극적으로 나서지 못하고 그저 좋아하고 동경하기만 하면서 지냈던 것은  평소 남 앞에 나서기를 두려워하고 또 직장일에 매달리다 보니 그냥 세월이 흘렀다고 해야 맞을 것 같다.

 

  이렇게 문학에 대한 미련을 버리지 못하고 꿈으로만  갖고 있다가 지점장 시절이던 2002년 그동안 습작해 두었던 시 몇 편으로 80년 시절에 만났던 정공채시인의 추천을 받아 문단에 나오게 되었다

등단후에도  문학에 정진하지 못하고 시인이라는 명칭이 부끄러울 정도로 미천한 나날이 계속되었다

가끔 한번씩 작품 하나 만들어 주변의 시낭송회에 나가 보기도 하였으나 항상 부족하고 성에 차지 않았다

언젠가는 내가 하고 싶은 문학에 전념해 보고 싶은 마음은 버리지 않았으나  실제로는 방치해 두고 있었다는 편이 맞을 것 같다

 

  퇴직을 앞에 둘 즈음 퇴직 후를 어떻게 보내야 할지 얘기를 나눌 겸 아내와 차를 몰고 주말여행을 나섰다.

이제 나도 퇴직이 얼마 남지 않았다. 그동안 오랜 기간을 직장에 몸담아 열심히 일해 왔고 물러나야 할 시간이 머지 않다. 퇴직 후에는 이제까지 하지 못하고 미루어 왔던 내가 하고 싶은 일을 하면서 여생을 보내고 싶다.

앞으로 나는 조용한 곳에서 책을 보며 그 동안 남겨 두었던 글을 쓰면서 살고 싶다

퇴직 후에는 나 나름대로 살고 싶으니 당신이 동의해 달라

더 이상은 내 인생을  타의에 의해 지내고 싶지 않다. 직장 생활은 타의에 의한 삶이라고 본다

정작 내가 살고 싶은 삶의 모습은 이제부터이다

 

  이렇게 아내의 동의를 얻어 단양에 작은 거처 하나를 마련하게 된 것이다

봄부터 시작한 공사가 가을까지 걸렸다

작은 집이지만 시골 땅에 집을 짓는다는 게 싶지 않은 일이었다.

설계도 주변 환경에서 벗어나지 않게, 사용 취지에 맞게, 비용을 가급적이면 줄여서, 집 작은 것과 마누라 작은 것은 얼마든지 산다는 말은 들어서 최대한 작게라는 원칙을 세웠다. 실제로 시골집을 지은 사람들의 이야기를 들어 보면 집 크게 지은 것을 가장 후회한다고 하는 이야기들이 많다

 

  집 모양을 그리는데 전국 여러 곳을 돌아다니면서 보기도 많이 보았고 관련 자료도 찾아보면서 전원주택업체를 다니면서 설명도 많이 들었다

수정과 보완을 수차례 거듭하면서  집 모양을 확정하고 건축에 필요한  허가와 공사를 하는 동안  나는 현직에 있으니까 아내가 다니면서  공사 감독을 다 했다

 

  현장이 국립공원지역이라서  건축에 관한 제한이 많았다. 또 연고지가 아닌 외지에서  집을 지으려고 하니 부딪치는 어려움도 있었다. 거리도 가깝지 않은 곳이어서 공사 관리도 어려움이 있었다. 사무소 CI공사는 몇 차레해 보았지만 건축에 관한 지식을 몰라서 겪는 어려움도 많았다

 

  내 생각에 기초 공사는 땅바닥을 편편하게 고르고 그 위에 집을 지으면 될성 싶었다. 그래서 처음에는 기초 공사를 감안하지 않았다. 공사업체도 철근으로 대신하면 된다고 해서 그렇게 하려고 실제로 해보니 도저히 공사 진척이 되지 않고 주변 사람들도 만류하여 나중에 다시 기초공사를 하느라고 비용도 더 들고 허둥지둥했던 기억이 난다. 아마 기초 공사 없이 지었다면 장마로 인한 기반 변화로 많은 어려움을 겪었을 것이다. 건축뿐만 아니라 모든 일이 기초가 튼튼해야 한다는 것을 실감했다

 

  건물 공사 시작하기 전 상수도를 끌어들이는 공사를 위해 도로를 파헤치고 남의 밭을 거쳐 묻어내는 상수도 공사는 포크레인이 아니면 엄두가 나지 않았다

특히 이 지역은 밑바닥이 돌과 바위로 되어 있어 사람의 힘으로는 작업이 불가능하여 약간의 작업에도 포크레인이 아니면 할 수가 없다

공사기간은 지연되고 문제는 발생하고 인허가를 받는데도 무슨 조건이 그리 많은지 사람을 지치게 만들었다 

 

그러나 어려움을 해결하고 집이 지어지고 첫 등불을 밝히던 날은 정말 감격이었다

그동안 수고한 아내의 손을 잡고 노고를 위로하면서 안아 주었다

 

나는 집 이름을 아리산방이라 지었다

아리는 아리랑에서 가져왔다. 아리랑은  우리 민족 정서의 정수다. 우리 민족의 문화의 모두는 아리랑으로 요약할 수 있다. 너무 큰 이름이어서 조금 민망하기도 하다. 그러나 내가 앞으로 끝까지 추구해야 할 화두가 아리랑인 것을.

 

나는 문학 모임에 가서 이야기할 기회가 있을 때면  이렇게 자랑한다

우리나라 시인중에 나만큼  좋은 곳에  멋진 창작실 가진 시인 있으면 나와 보라고.

 

 

아리산방

 

 아리산방 백자

 

이달의 시인( 문예사조 2011. 1월호 )

 

 눈에 싸인 고적한 모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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