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

회암사지와 현재의 회암사 그리고 천보산

아리박 2024. 1. 3. 11:36

회암사지와 현재의 회암사 그리고 천보산

 

대한민국 사적 제128호가 양주 천보산  檜巖寺址이다

폐허가 되어 터만 남아 있는데 한창 복원중에 있다

원래 회암사는 조선 전기 왕조에서 특히 독실한 불교신자였던 태조 이성계를 비롯하여 왕과 왕후의 비호를 받으며 조선의 왕사로 조선 최대의 사찰이었다. 조선이 숭유억불정책을 한 왕조였지만 초기에는 불교가 아직까지 유지하고 있었다

그러나 조선 중기에 폐사가 되어 터만 남아 숭유억불정책의 대표적인 표본으로 쓸쓸한 비운의 상징으로 남아있다

회암사지  북쪽에 현재의 회암사라는 현재의 작은 절이 재건되어 있다

 

원래 회암사는 창건 연대가 정확하지 않고 고려 명종 4년(1174) 금나라 사신이 회암사에 왔다갔다는 기록이 동국여지승람에 있으므로 회암사가 그 전에 존재했을을 알 수 있다

고려 충숙왕 15년(1328) 인도 사람 指空和尙이 인도 나란타사를 본떠 266칸 거대한 사찰로 중창했다고 한다

1392년 조선이 건국한 뒤 태조 이성계는 회암사를 매우 아껴 나옹화상의 제자 한양천도를 주관한 무학대사를 회암사에 머물게 하였으며 태조 이성계가 왕좌에서 물러난 후 회암사에서 수도생활을 한 바 있어 조선 왕실의 원찰로서 보호를 받았다

이후 태종 이방원의 척불, 세조는 숭불로 왕의 정책에 따라 회암사의 위치가 바뀌고 하였다

 

무학대사와 태조 이성계의 인연을 맺은 무학대사의 재밌는 해몽이 있다

이성계의 꿈에 석가래 3개를 지고 나온 것을 듣고 왕이 될 꿈이라고 해몽하고, 꽃이 지고 거울이 깨지는 꿈을 듣고 꽃이 지면 결실을 맺고 거울이 깨지면 소리가 날 수 밖에 없다 큰 인물이 될 꿈이다, 수많은 닭이 울어 놀라 깬 꿈은 닭 울음이 "꼭끼오" 高䝿位" 귀하게 될 것이라고 해몽하였다

 

무학대사는 한양천도를 건의하면서 조운이 통하고 무악, 북악, 남산을 추천하면서 제1은 송경이이지만 제2 자리는 이곳이다 마땅히 천도를 한다면 현재의 경복궁 자리가 대안이 될 것이다 다른 사람의 의견을 많이 듣고 결정하시라고 진언하였다

 

숭유억불 정책을 펴던 조선 중기 명종 20년(1565) 문정왕후의 지원을 받으면 회암사에 머물던 승려 보우가 문전왕후가 세상을 뜨자 귀양을 가고 얼마 지나 맞아 죽었고 회암사는 원인 모를 화재로 폐사되었다

16세기 임진왜란 때 각종 화포를 주조하면서 회암사 큰 종을 가져다 부족한 주철로 녹여 썼다

폐사가 된 후 순조21년(1821)  이응준이라는 유생이 회암사 삼화상(지공스님, 나옹혜근, 무학자초)의 비석과 부도를 없애고 그 자리에 선친의 묫자리를 쓰면 대길하다는 말을 듣고 지공의 부도를 헐어버리는 사건이 발생하였다

이 사건으로 이응준은 유배 보내고 결국 순조28년(1828)에 다시 비와 부도를 세워 회암사지 북쪽 700m 떨어진 곳에 현재의 회암사를 세우고 이때 세운 부도와 비가 남아 있다

 

회암사를 품고 있는 천보산은 해발 423m로 사시사철 기암괴석이 아름다운 풍광을 만들어내고 108바위 등 회암사의 불심과 함께 김삿갓 방랑의 싯귀가 어우러져 있는 산이다

험난한 천보산 바위길에는 요즘 많이 설치하는 데크길이 아니고 특이한 쇠발걸이를 바위벽에 박아 산을 오르는데 사용하고 있는데 이 발걸이를 이용해 산에 올라본 바 이 발걸이는 단단하고 눈비에 미끌림이 없고 산의 풍광을 해치지 않는 좋은 사례인 것으로 다른 바윗길에도 설치하기를 적극 추천한다.

 

숭유억불의 현장 회암사 풍경이 무심한 바람에 흔들리고...

 

회암사 담벽은 유장한 세월의 흥망을 어찌 안고 있을까?

 

새로 만들어진 부도

 

무학자초 부도

 

조선 건국 무학대사 쌍사자비와 부도

 

불교 흥망성쇠를 고스란히 담고 있는 부도

 

천보산과 부도

 

부도

 

부도탑

 

삼성각

 

나옹화상 선각왕사비

화암사지에 있던 고려말 나옹화상(1320~1376)  추모비. 1358년 원나라에서 들어와 왕의 부름을 사양하고 구월산과 금강산에서 은거하다가 회암사에 돌아와 절을 크게 짓고 신륵사에서 입적하였다

비문은 이색이 짓고 글씨는 권중화가 썼다 두 마리 용을 비석 머리에 조각하여 새긴 후 그 중앙에 글을 새겼다. 1997년 보호각이 불 타 파손되어 국립문화재연구소에서 보존처리하여 경기도박물관에 보관하고 비가 있던 자리에 원형을 본 따 만들어 세웠다

 

선각왕사비

 

후에 새로 생긴 회암사

 

누군가가 세운 부도탑을 연상하게 하는 돌탑

 

돌탑을 받치며

 

자세히 보면 스님 한 분 앉아 계신
기암을 안고

 

기암과 함께

 

소나무와 필자

 

수석 한 점

 

흥망성쇠를 보고 들은 암반 사이 소나무 한 그루

 

천보산 423m
천보산에서

 

정상에서 활짝

 

108바위

 

 

김삿갓 108바위

 

 

'여행' 카테고리의 다른 글

고려산 진달래  (0) 2024.04.13
단양 소선암 치유의 숲  (0) 2024.02.04
영우회 모임  (0) 2023.11.14
튀르키예 9일차 (9/12)  (3) 2023.09.21
튀르키예 8일차 (9/11)  (0) 2023.09.2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