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 촬영 기법 12가지
“Twelve Travel Treasure”
당신의 여행사진을 빛내줄 12가지 보물
얼마 전, 연재를 하고 있는 여행잡지가 창간 12주년을 맞이했습니다. 편집부에서 12주년에 걸맞는 기사를 써달라고 요청이 왔는데 "아이쿠! 이걸 어떻게 한다지!!!" 오랜 고민 끝에 전공을 살려 여행을 좋아하는 분들의 사진을 한층 더 ‘고급지게’ 해줄 수 있는 12가지 비법을 적어봤어요. 이름도 거창하게 “당신의 여행사진을 빛낼 12가지 보물(Twelve Travel Treasure)”이라고 붙여봤는데요^^;;
사실 기사이다보니 보물이란 '있어보이는' 타이틀을 붙인 것이고, 일종의 기법이라고 할 수 있는 이것들은 꼭 비싼 DSLR 카메라를 갖고 있는 사람만 발견하거나 사용할 수 있는 것이 아니며, 여행지 어디서나 발견할 수 있고, 어떤 카메라로든, 심지어 스마트폰으로도 쉽게 활용할 수 있는 것들이랍니다. 하지만 어떻게 쓰냐에 따라 나의 여행사진을 확 업그레이드해줄 수 있는 클리닉 선물. 얼마나 좋은 지 일단 그 포장지부터 뜯어보도록 하지요^^
정말 멋진 사진을 찍고 싶었는데 여행지에서 찍어 온 사진이 밋밋하다면 그것은 카메라가 안 좋거나, 날씨가 안 좋거나, 여행지가 볼 게 없어서가 아니다. 그 원인의 상당 부분은 여행자의 관찰력 부족이다. 여행지에서 지나치기 쉽지만 발견만 한다면 사진의 아우라를 200~300% 끌어올려줄 현상이 있는데 바로 ‘반영(reflection)’이다. 사물이 비춰 보이는 현상인 반영은 사진으로 촬영할 경우 한 프레임 속에 두 가지 세상을 공존하게 할 수 있어 시선을 끌뿐더러 복합적인 메시지도 담을 수 있다.
반영은 신경을 안 쓰면 전혀 안 보이지만 조금만 신경 쓴다면 어디서나 발견할 수 있다. 일단 비가 온 다음이면 길바닥 어디서나 발견할 수 있다. 그러나 비가 오지 않았더라도 유심히 살펴보면 물이 고여 있는 공간이 꽤 많다. 반영을 사진으로 담기 위한 필수 조건은 그리 크지 않다. 가로 세로 30cm 정도의 공간이면 화면을 가득 채울 만큼 반영사진을 담을 수 있다. 반영사진을 촬영하는 방법이 카메라를 바싹 들이대고 초점거리가 짧은 광각으로 찍기 때문.
이때 카메라는 닿을락말락 최대한 땅에 붙이는 게 요령이며, 조리개를 조이면 고루 초점이 맞는다. 또한 반영은 꼭 물에만 생기는 것이 아니며 차 보닛, 유리창, 피아노 덮개, 심지어 당신의 동료가 쓰고 있는 선글라스에도 생긴다. 여행지에서 손쉽게 남들과 차별되는 구도를 표현하고 싶다면 반영을 꼭 찾도록 하자.
실루엣, Silhouette
아주 예전엔 역광으로 사진을 찍지 말라는 금기가 있었다. 해를 바라보고 찍으면 “필름 탄다”란 낭설 때문이기도 했지만 역광 속의 인물은 새카맣게 나오기 마련이기 때문. 이렇게 대상이 ‘실루엣(silhouette)’으로 표현되면 면이 모두 검은색으로 보이게 돼서 증명사진이나 정보성 사진에서는 문제가 있지만 외려 인상적인 느낌을 주기에는 더 효과가 있다.
실루엣은 그림자를 뜻하는 프랑스 용어로서 18세기경, 종이오리기가 취미였던 프랑스의 재무장관 드 실루엣(Etienne de Silhouett)의 이름에서 따왔다고 한다. 실루엣은 검은 종이를 잘라 환한 배경 위에 붙이는 페이퍼 아트의 대가였는데 미술에서 이렇듯 검은 윤곽으로 대상을 표현하는 기법을 그의 이름을 따 ‘실루엣’이라 부르게 되었다고.
실루엣이 즐겨했던 종이 공작의 기법을 사진에 적용하면 시선을 끄는 강렬한 사진을 얻을 수 있다. 여행에서 일출이나 일몰시, 그리고 이른 오전이나 늦은 오후에 사진을 찍는다면 해와 촬영자 사이에 실루엣으로 표현될만한 피사체를 무조건 넣는 습관을 가져보자.
할레이션, Halation
실루엣을 찍을 수 있는 위치라면 동시에 ‘할레이션(halation)’도 표현할 수 있다. 빛 번짐이라고 해석할 수 있는 할레이션. 감각적인 CF나 뮤직비디오 등에서 누구나 봤을법한 표현기법인데 감이 안 온다면 ‘햇빛이 눈부신 오후, 한참 귀여웠던 시절의 다코타 패닝 같은 금발 소녀가 길을 가다가 나 쪽으로 돌아볼 때의 느낌’을 떠올려보자. 빛은 부서지듯 위에서 쏟아지고 머리카락이 반짝반짝 빛나는 느낌. 이렇게 빛이 번지듯 표현하는 것을 할레이션이라고 하는데 여행에서 함께 간 친구나 가족, 연인을 할레이션으로 촬영하면 평생 기억에 남을 ‘인생사진’을 남길 수 있다.
촬영하는 요령은 빛이 좋은 아침이나 늦은 오후, 실루엣을 찍는 각도에서 한발 정도만 좌우로 옮긴 다음 해를 프레임 속에 넣지 말고 바로 위에 걸치게 한 뒤 약간 노출을 밝게 하고 셔터를 누르면 된다. 이때 조리개는 개방할수록 배경이 아웃 포커스 처리되므로 빛 번짐이 강조되는 효과를 얻을 수 있다.
로우 앵글, Low Angle
앞만 보고 달려가는 일상을 살아서인지 여유를 즐겨야 할 여행에서도 앞만 보고 걷는 사람들이 많다. ‘고개를 들어 하늘을 보며’란 노래도 있듯이 여행에서 때로는 하늘을 바라보면 좋다. 여행지의 파란 하늘과 그 하늘 사이에 흐르는 공기의 한없이 가벼운 밀도를 느낄 때야 비로소 일상탈출의 행복을 만끽할 수 있을 테니. 이렇게 하늘을 바라볼 때는 이왕 염치불구하고 등을 바닥에 붙여보자.
누워서 보는 여행지의 모습은 무척 색다를 것이고 아무 데나 누웠다고 핀잔을 줄만큼 야박한 여행지도 잘 없기 마련. 그렇게 누웠을 때 보이는 장면이 멋지다면 슬그머니 스마트폰이나 카메라를 꺼내 셔터를 눌러보자. 특별한 기법 없이 조금 화면을 넓게 잡고 촬영한다면 그 여유롭고 행복한 기분이 고스란히 사진 속에 담겨질 것이다.
그늘 모드, Shadow Mode
여행에서 가장 기억에 남는 풍경은 해가 뜨거나 질 무렵에 만날 때가 많다. 노랗고 빨갛게 물드는 하늘은 여행지의 모습을 아름답게 그려낼 수 있는 훌륭한 캔버스다. 이렇게 운 좋게 하늘이 멋진 색깔로 변할 때 내 카메라는 왜 눈으로 본 것만큼 노랗고 빨갛게 하늘을 표현하지 못하는 걸까? 사진 속에서 하늘의 색감이 마음에 안 든다면 카메라에서 화이트밸런스를 찾아 그늘 모드로 바꿔보자.
카메라에서 ‘AWB(Auto White Balance)’를 찾아 옵션을 선택해보자. 태양, 집, 형광등, 백열등 모양의 아이콘들이 보일 것이다. 그 중 집 모양 아이콘이 그늘 모드인데 화이트 밸런스를 그늘 모드로 선택하고 촬영하면 색감이 보다 따뜻하고 노랗고 붉은 기가 많이 돌게 된다. 특히 해 뜰 무렵이나 해 질 무렵 하늘의 색깔을 훨씬 더 강렬하게 표현된다. 그늘 모드의 색온도는 7000K 정도인데 캘빈 값을 조절할 수 있는 카메라라면 색온도를 7000K보다 더 올릴 수 있고 그럴수록 색감은 더 과장되게 표현된다.
매직 아워, Magic Hour
여행지에서 노을을 감상하거나 촬영하고 나면 저녁 식사할 시간. 배가 출출할 것이다. 하지만 날씨가 좋다면 허기는 조금만 더 참도록 하자. 노을이 지고 밤이 오기 전 하늘은 잠시 동안 마술 같은 변화를 보여주기 때문. 날씨 좋은 날, 해가 지고 나서 완전히 컴컴해지기 직전 하늘의 빛깔이 동쪽 편은 코발트 블루라 부르는 진한 청남색, 서쪽 편은 버건디에 가까운 자주색으로 물들 때가 있는데 이때의 하늘을 마술처럼 신비롭다고 해서 ‘매직 아워(Magic Hour)’라고 부른다.
우리나라 말로는 ‘땅거미’가 지는 시간. 해가 지고 20분 뒤부터 30분 사이의 아주 짧은 시간인데 이때 도심의 야경사진을 촬영하면 그야말로 마술 같은 사진을 촬영할 수 있다. 이때 필요한 건? 사진이 흔들리지 않게 할 수 있는 삼각대요. 황홀한 저녁 풍경에 흔들리지 않을 단단한 심장이다.
보케, Bokhe
피사체를 또렷하게 표현할수록 좋겠지만 사진의 묘미는 또 흐리게 만드는 데도 있다. 인물사진을 찍을 때 사람을 돋보이게 하기 위해 배경을 흐리게 하는 아웃 포커스 사진이 대표적일 터. 이렇게 주연을 빛나게 해주는 조연처럼, 횟감을 돋보이게 해주는 무채처럼 배경을 활용하는 기법이 있는데 그 중 대표적이고 쉽게 표현할 수 있는 게 ‘보케(Bokeh)’다. 우리 말로 ‘망울’이라고 할 수 있는 보케는 역광일수록 잘 표현되고 긴 초점거리인 망원렌즈로 촬영할수록 더 크게 나오고 조리개를 개방할수록 더 둥글게 표현된다.
위 조건에서 초점을 의도적으로 맞추지 않는 부분에 반사되는 영역에 보케가 생긴다. 흐린 날보다 빛이 좋은 날 빛을 반사시키는 유리나 수면, 그리고 밤이나 실내에서 작은 전구의 불빛을 보케로 쉽게 표현할 수 있다. 특히 바다나 호수, 강에 간다면 역광으로 반짝이는 보케를 촬영해보자. 신 스틸러 같은 보케 덕분에 주연이 돋보이는 사진이 탄생할 것이다.
패닝, Panning
우리 눈에 보이지 않는 현상이 사진에 담겼을 때 시선을 끄는 것은 당연하다. 특히 움직이는 사람이나 물체의 속도감을 사진으로 표현할 수 있는데 이때 유용하게 쓸 수 있는 기법이 ‘패닝(panning)’이다. 패닝은 움직이는 피사체를 움직이는 속도에 맞춰 찍어 피사체는 뚜렷하게 나오게 하고 나머지 배경은 좌우로 속도감을 나타나게 해주는 기법인데 달리는 자동차나 빠르게 움직이는 운동선수나 사물을 찍을 때 활용한다.
여행에서도 움직이는 대상을 패닝으로 촬영하면 여행지의 모습을 보다 역동적으로 담을 수 있다. 이때 가장 중요한 포인트는 셔터스피드. 빠르게 움직인다고 빠른 셔터스피드를 사용하는 게 아니라 1/30초 정도의 느린 셔터스피드를 사용해야 한다. 셔터가 열렸다 닫히는 시간이 너무 빠르면 잔상이 생기려야 생길 수 없다. 여행지에서 달리는 오토바이나 자전거, 뛰는 사람을 마주칠 때 움직이는 선과 평행하게 위치를 잡은 후 느린 셔터스피드로 패닝 샷을 촬영해보자.
이때 중요한 것은 피사체가 움직이는 방향과 속도에 맞춰 카메라도 따로 움직여줘야 한다는 점. 야구경기에서 타자가 공을 때린 뒤 끝까지 '팔로스로우'를 해주는 것처럼 팔의 스윙을 멈추지 않고 진행 방향으로 끝까지 돌려줘야 더 동선이 잘 표현된다.
틸팅, Tilting
패닝과 마찬가지로 ‘틸팅(tilting)’도 느린 셔터스피드로 잔상을 표현하는 기법이다. 패닝이 좌우로 카메라를 움직여준다면 틸팅은 상하(수직)로 카메라를 움직인다. 틸팅을 사용하면 유화나 수채화를 그린 듯 회화적인 표현이 가능하다. 틸팅은 패닝과 달리 고정되어 있는 물체나 배경을 찍을 때 사용하면 좋다. 여행지에서 대나무나 자작나무 숲처럼 수직으로 쭉쭉 곧게 뻗은 장소에 갔다면 틸팅 샷을 찍어보자. 남들과 차별되는 회화적이고 독창적인 사진을 얻을 수 있다.
촬영법은 카메라를 흘러내리는 듯한 기법으로 하면 되는데 역시 1/30초 정도의 느린 셔터스피드로 셔터를 누르면서 정확하게 위에서 아래로 카메라를 움직인다. 중력의 방향처럼 정확히 수직으로 카메라를 움직일수록 더 깔끔한 결과물을 얻을 수 있다. 틸팅 샷을 찍기 좋은 숲의 경우 대부분 낮에도 어두운 경우가 많으므로 느린 셔터스피드를 확보하기 용이해 스마트폰에서 자동 모드로 촬영해도 틸팅 효과를 쉽게 얻을 수 있을 것이다.
주간 장노출, Long Exposure
패닝이나 틸팅처럼 느린 셔터 스피드를 활용하면 우리 눈에 보이지 않는 현상을 사진으로 표현할 수 있다. 또한 움직임이 흐릿해지거나 아예 사라지게 만들어 사진의 주제를 더 부각시킬 수도 있다. 밤에 자동차의 움직임을 아주 느린 셔터스피드로 촬영하면 헤드라이트는 흰 궤적으로 표현되고, 후미의 브레이크 등은 빨간 궤적으로 표현되는 것이 대표적인 장노출의 사례일 터.
이런 장노출을 촬영하기 위해서는 삼각대가 필요하며 삼각대가 없을 때는 카메라를 움직이지 않게 놓을 수 있는 난간이나 바닥을 활용해도 된다. 장노출은 꼭 밤에만 찍는 건 아니며 여행에서 풍경사진 찍기를 즐겨하는 사람이라면 ‘ND(neutral density) 필터’를 준비해 낮에도 장노출을 시도해 보자. 자동차 선팅처럼 렌즈 앞에 부착해 빛을 차단해주는 ND 필터는 광량이 많은 낮에도 저녁 같은 환경을 만들어줘 아주 느린 셔터스피드로 촬영을 가능하게 해준다. 특히 바다의 파도나 폭포 같은 물의 움직임을 부드럽게 표현해 인상적인 풍경사진을 촬영하는 데 효과적이다.
프레임 투 프레임, Frame to Frame
3차원인 현실에서의 공간은 사진에서 2차원으로 표현된다. 사실 잘 찍은 사진은 2차원적인 평면인 사진 속에 얼마나 입체적으로 3차원인 공간을 표현하냐에 달려있다. 여행지의 풍경을 입체적으로 표현하기 위해 ‘중첩(frame to frame)’을 사용하면 좋다. 중첩된 이미지는 시선을 분산시키기도 하지만 잘만 표현한다면 시선을 오래 끄는 입체적인 사진을 탄생하게 한다.
여행지에서 문이나 벽에 난 창문을 잘 관찰해보자. 촬영자가 있는 공간과 다른 공간을 구분짓는 벽은 영역을 가로막기도 하지만 문이나 창을 통해 다른 공간으로 가게 하고 보게 하는 통로의 역할을 한다. 특별한 카메라 세팅은 없으며 이왕이면 고루 초점이 맞게 조리개를 조인 뒤 내가 있는 공간의 근경(가까운 쪽)과 문 너머의 원경(먼 쪽)이 동시에 담기게 구도를 잡으면 왠지 ‘있어 보이는’ 여행 사진을 얻을 수도 있을 것이다.
파노라마, Panorama
여행지에서 눈이 가장 크게 트이는 순간은 높은 곳에 올라갈 때다. 눈 앞에 광활한 풍경이 펼쳐질 때 우리 눈의 시야감은 평소보다 훨씬 넓어진다. 그래서 이런 경우 사진을 찍으면 “에게? 왜 이렇게 답답하게 나왔지?”란 불만이 들기 마련. 초광각렌즈를 사용하지 않고서야 카메라는 아무리 줌 아웃을 해도 우리 눈의 시야감을 따라갈 수 없다. 또한 화각이 너무 넓은 렌즈로 사진을 촬영하면 특유의 왜곡 현상이 생기기도 한다. 이때 유용한 것이 카메라나 스마트폰의 파노라마 촬영 기능.
파노라마 모드로 설정을 하고 왼쪽에서 오른쪽으로 움직이며 촬영하면 180도, 심지어 360도의 풍경을 담을 수 있는데 가로로 긴 특유의 시원하고 웅장한 화면이 탄생한다. 요즘 나오는 미러리스 카메라나 스마트폰에는 대부분 자동으로 파노라마를 만들어주기 때문에 누구나 손쉽게 시원한 사진을 담을 수 있다.
보다 전문적으로 촬영하고 싶다면 M(매뉴얼)모드에서 노출을 맞춘 뒤 카메라를 세로로 해서(그래야 더 해상도가 큰 사진을 촬영할 수 있다.) 왼쪽으로 오른쪽으로 움직이며 조금씩 겹치도록 해서 수십 장을 촬영한다. 이 사진을 포토샵의 ‘포토 머지(Photo merge)’ 등의 기능을 활용해 합치면 3~4m 이상의 큰 액자로 뽑을 수 있을 만큼의 해상도 큰 파노라마 사진도 얻을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