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학 이야기

시인 정재호

아리박 2010. 5. 15. 05:23

정재호 시인 작품론


          담백한 된장의 맛

              문 무 학


  정재호 시인이 발표하는 7편의 시는 시의 주제적 측면에서 두 가지로 분류될 수 있다. 하나는 ‘삶의 의지’고 다른 하나는 ‘현실에 대한 의식’이다. 따라서 주제 중심으로 이 작품들에 접근하고자 한다. 

  ‘의지(意志)’는 일반적으로 ‘어떤 일을 이루고자 하는 마음’으로 풀리는 것이지만, 심리학적으로는 ‘선택이나 행위의 결정에 대한 내적이고 개인적 역량’ 으로 풀이되며, 철학적으로는 ‘어떠한 목적을 실현하기 위하여 자발적으로 의식적인 행동을 하게 하는 내적 욕구, 가치평가의 원인’ 으로 풀이되기도 한다.

  의식(意識)은 일반적으로 ‘깨어있는 상태에서 자기 자신이나 사물에 대하여 인식하는 작용’ 또는 ‘사회적 역사적으로 형성되는 사물이나 일에 대한 개인적 집단적 감정이나 견해나 사상’으로 푼다, 불교적으로는 ‘의근(意根)에 기대어 대상을 인식 ․ 추리 ․ 추상하는 마음의 작용’으로 풀고, 철학적으로는 ‘감각하거나 인식하는 모든 정신 작용’으로 푼다.

  주제가 되는 이 어휘에 대한 다양한 의미를 짚어보는 까닭은 정재호 시인의 작품들이 단순한 의미의 ‘의지’ 단순한 의미의 ‘의식’의 수준을 넘어서 있고, 위에서 살펴본 어휘의 의미들이 복합적으로 드러나기 때문이다. 먼저 의지를 주제로 한 작품 세 편을 살펴본다.


“어쩌다 짝 맞춰 신은/ 짚신끼리 나막신끼리// 볕바른 양지만을/ 가려 디디면서// 흙바람 구만리 길을/ 헤쳐 가는 두 그림자.” -부부- 전문


  굳이 제목을 보지 않아도 제목을 떠 올릴 수 있는 작품이다. 이 작품의 초장 첫 음보 ‘어쩌다’의 의미는 부사로 ‘뜻밖에’, ‘우연히’의 의미를 갖는다. 옛날의 결혼 풍습을 떠올리면 초장 첫 구 ‘어쩌다 짝 맞춰 신은’의 의미가 풀리고 ‘짚신끼리 나막신끼리’도 엇비슷한 환경의 사람들이란 뜻이 읽힌다. 중장은 전체적으로 약간의 애매성을 가지지만 여기서는 ‘조심조심 산다’ 는 의미로 풀릴 수 있다. 의지로 읽을 수 있는 결정적인 단서는 종장에 있다. ‘흙바람 구만리 길을 헤쳐 가는’은 부부가 함께 가야 할 지난한 삶의 길이다. 부부가 가야 할 그 길이 어찌 의지 없이 가능한 일이겠는가.


  “북풍 몰아칠 때는/ 잠시 엎드렸다가// 발가락이 잘리어도/ 어금니 물고 버티면서// 울음을 속으로 삼키며/ 겨울 벌판을 지킨다.” -겨울 갈대- 전문


  이 작품의 경우는 ‘의지’를 극대화한 것이다. 굳이 설명을 덧붙일 필요가 없는 작품이다. 겨울 갈대를 의인화한 수사법이 단순하지만, 그 단순함이 주제를 선명하게 드러내기도 한다. 겨울 갈대를 의지의 상징으로 본 것으로 족하다.


  “출발 신호가 울렸다/ 달려 나가는 사람들// 중도에 주저앉는 사람/ 쓰러졌다 일어나는 사람// 끝끝내 포기하지 않고/ 계속 뛰는 이름 없는 선수들.” -마라톤- 전문


  이 작품의 경우도 인간의 의지를 노래한 것이다. 의지를 가진 사람과 그렇지 못한 사람의 비교라고 할까 그것을 통해 강한 의지의 미덕을 드러내 보이고 있다. 서두에서 ‘의지’라는 어휘를 풀 때 살펴본 것이지만 어떤 일을 이루고자 하는 마음, 즉 이 의지에 대해 정재호 시인은 매우 깊은 관심을 가지고 있다. 어쩌면 삶이 무엇인가를 이루어 가는 것이라는 생각이 깊은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을 갖게 하는 것이다.

 

  나머지 네 편은 모두 현실 인식으로 묶을 수 있는 작품들이다.


  “진지 잡수셨습니까/ 왜 생감을 따려 하느냐// 서로 통하지 않는 귀먹은 노인과 어린이// 마음의 문을 잠그고/ 담을 높이 쌓는 너와 나.” -대화- 전문


  청력을 잃은 노인과 어린이의 대화에서 시를 찾았다. 그러나 청력 잃은 노인과 어린이의 대화에서 마음의 문을 잠그고 있다고 보는 것은 무리가 따른다. 그러나 우리 현실이 너무나 큰 세대차를 갖고 있어 그런 대화마저 그렇게 들릴 수는 있다. 시가 전하고자 하는 메시지는 결국 개인주의에 찌든 세태의 한 단면을 드러내고자 한 것이라 현실 인식이다.


  “대가족 거느리고/ 큰 기침하던 양반의 후예// 체통마저 던져버리고/ 쓰레기 뒤지면서/ 먹이만 찾아다니는/ 축 늘어진 두 어깨.” -장닭- 전문


  이 작품은 현대인의 일그러진 삶을 질타하는 작품으로 읽힌다. ‘장닭’으로 비유된 양반은 우리의 선조들이다. 불의와 타협하지 않고 대쪽같던 선비 정신이 요즈음 사회에서는 사라지고 없고 오로지 돈만을 추구하는 삶에 대한 연민을 느끼고 있다. 인간으로서 기본적으로 지켜야 할 사항들까지 소홀히 하고 사는 삶에 대해 일침을 놓고 있다. 정재호 시인은 체통을 버리고 돈 되는 일이면 어떤 일도 마다하지 않는 그런 삶에 염증을 느끼고 있는 것 같다.


  “길가에 버려져 있는/ 잡초 우거진 무덤// 희미한 비문을 보니/ 떵떵거리던 명문 거족// 먼 훗날 뭇발길에 짓밟힐 것을 생각이나 했을까 그는.” - 옛무덤- 전문


  이 작품은 앞의 ‘장닭’과 연계하여 읽을 수 있는 작품이다. 인생은 결국 흙으로 돌아가야 하는 것, 아등바등 산다고 남을 속이고 죄를 짓지만 결국은 땅에 묻히고 또 세월이 흐르고 나면 발길들에 짓밟힐 무덤이 되고 만다는 인식, 언제 죽을지도 모르고 죽어서 어떻게 될지도 모르는 인간의 삶 그것에 대한 연민이다.

  그런 연장선에서 작품 ‘등산’의 놓인다.


“아침 일찍 배낭 메고/ 친구 몇이 어울려// 숲 속을 거닐면서/ 삶의 의미를 씹어본다// 인생도 긴 세월의 등산/ 올라갔다 되내려오는.”


  등산과 인생의 연결고리가 조금은 약해 보인다. 그러나 견해차가 있을 수 있지만, 등산이 올라갔다 내려온다는 의미에서, 자고 일어나는 우리 일상적인 삶에 견주면 똑 같은 일상의 반복이라는 측면에서 약하지만 그 고리는 이어질 수 있다. 해가 지면 해가 뜨고, 자고 나면 일어나고, 올라가면 내려오고 하는 것은 삶의 피할 수 없는 반복이다.

  삶의 의지와 현실에 대한 인식으로 읽은 일곱 편의 작품들은 모두 단수의 시조다 그리고 시행의 배치도 모두 한 장을 두 구로 나누어 쓴 구별 표기 방식을 취하고 있다. 여기에 특별한 의미를 부여하긴 어렵지만 정재호 시인의 고집 같은 것이 보이기도 한다. 오랜 동안 교직에 몸담은 시인으로서 무엇인가를 가르쳐야 한다는 강박관념 같은 것이 드러나기 때문이다.

  그러나 시조는 단수가 원형이라는 사실을 중요시 하는 의식과 단정한 형태미를 지향하는 의식을 보여주고 있다. 수사법에서도 거의 직설에 가깝지만 시조에서 어휘나 장, 구별로 상징성을 드러내고자 하는 것이 아니라 작품 전체로 상징하는 수사법을 쓰고 있다.

  그래서 정재호 시인이 발표하는 일곱 편의 작품은 이것저것 많은 조미료가 들어간 된장 맛 이 아니라, 된장에 맹물만 넣고 끓인 그 담담한 맛이 느껴진다.(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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