느낌이 있는 글

내가 글쎄 팔십이라네

아리박 2022. 1. 4. 10:03

내가 글쎄 팔심이라네

                       

                              구 양 근

 

여보게 

내 말 좀 들어보게

내가 벌써 팔십이라네, 글쎄

 

배바우 동네 개울물 징검돌이 멀어

조심스레 발을 내딛던 애기

그때가 엊그제인데 

내가 지금은 팔순이라네, 글쎄

 

통학 기차를 놓칠까

오리정을 향해 상기된 얼굴로 뛰던 밭두룩길

그때가 엊그제인데

내가 글쎄 산수가 되었다네

 

촌뜨기라고 시피보며

붕어빵 사 먹는 자리에 선심 써 끼워주던 볼때기 빨간 친구들

그들이 눈에 선한데

내가 벌써 팔십 할아버지라지 않은가

 

서울은 또 어떻고

으리으리 번쩍번쩍하던 종로길

운동장만큼 넓던 세종로 네거리 교통순경은 얼마나 멋있었다고

그런데 지금은 내가 여든이라네, 글쎄

 

생전 처음 타보는 비행기

네 시간 전에 공항에 도착하여 가슴 두근두근 앞으로 밀려가던 촌뜨기

그때가 엊그제인데

지금 내가 팔십 고개라네, 글쎄

 

타국 땅은 이런 것인가

눈이 휘둥그레 이리저리 둘러보며 손으로 만져보고 발로 굴러보던

때가 엊그제인데

내가 지금은 글쎄 팔순이라지 않은가

 

낯선 직책명으로 나를 부를 때

누구를 부르나 좌우를 둘러보던

때가 엊그제인데

지금은 글쎄 내가 팔십이라네 그려

 

글쎄 나더러 팔순 노인이라지 않은가

나를 보는 사람들은

정말 할아비로 보나?

신기하기 그지없어 헛웃음이 나오는군

 

내가 글쎄 팔십이라지 않은가

 

 

 

★★★  글 올리는 메모

 

소설가이면서 시인 수필가이신 구양근 박사께서 이런 글을 정초 인사를 대신하여 문자로 보내 왔다

구양근 박사님께서는 성신여자대학교 총장, 대한민국 대만 대표부 대사를 지내고 현재는 문학에 전념하여 소설집 시집 수필집을 내는데 힘을 쏟으시고 계시다

한국외국어대학 졸업, 대만대학교 사학과 석사, 동경대학교 동양사학과 박사를 거친 전형적인 역사학자이시다.

한중일 삼국의 역사만을 연구해 오신 분이다

얼마나 하고 싶고 밝히고 싶은 이야기가 많겠는가

한국작가교수회장, 수필문우회장을 맡아 문단에서도 활발히 활동하고 계신다

 

필자와의 인연은 국제펜 한글작가대회에 참석하여 3박4일을 한 방에서 숙식을 같이 한 룸메이트였다

더욱 반가운 것은 몇몇 지인을 통하면 서로 알만하기도 하고 작은 소도시에서 같은 길을 걷고 같은 강줄기에서 흙냄새를 맡은 코 끝에 느끼는 향기가 남다르기도 했기 때문이다

 

「내가 글쎄 팔십이라네 」이 시는 자전적 토로로 우선 솔직함에 놀란다

학자와 고위 관직을 맡아 후학을 키우고 나라의 부름으로 대한민국을 대표하는 대사로서 막중한 국사를 다룬 경험과 지식을 문학을 통해서 펼치고 계신 원로작가로서 이렇게 솔직할 수 있는가 의문이 들 정도이다

작가가 펴내는 여러 작품들은 역사를 통해서 드러나는 철학적 현상이 배면에 깔려 있다

뿐만 아니라 다각적인 시각으로 관찰함으로서 시야의 화각을 넓혀 역사적 사실에서의 사각을 좁혀준다

 

이 시에서도 화자의 유년시절을 소환하여 철없이 밝았던 시절로 돌아가게 하는 논뚝길, 밭뚝길로, 학교길로, 붕어빵 가게로 팔십 노객을 까까머리 철부지로 세월을 압축하여 불러 모은다

이쯤되면 누구나 떠오르는 아련한 친구 이름 몇몇은 기억하게 될 것이다

그 중에는 유명을 달리한 친구도 한 둘쯤 있을 것이다

인명이야 거역할 수 없지만 지금 화자의 마음속에는 나이의 숫자가 주는 부담을 갖고 있다

팔십이라면 더 이상 쓸모 없는 뒷방 늙은이로 치부한다

병원에 진료 갔을 때 의사가 하는 말 중에 가장 싫은 말이 있다 "이젠 나이가 드셔서 어쩔 수 없습니다 그냥 견디셔야 합니다" 라는 말을 듣는 것이다. 이런 말을 하는 의사는 자기가 실력이 없어서 치료를 못한다는 말의 다른 표현에 지나지 않는다

현재 영업에서 의사들이 가장 갑의 위치에서 치료권을 횡포하고 있다 전문분야라는 특수성으로 부실 치료도 그냥 넘어가고 과실이 있어도 그냥 넘어 간다 의사를  더 많이 배출해서 치료권의 문턱을 낮추어야 한다

 

나이에는 신체적 나이와 정신적 나이가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팔십이라는 숫자는 본인이 그 나이에 들어갔을 때 정신적으로 충격으로 다가 온다

팔십에 내가 뭘 하겠다고 나서는 것도 쉽지 않고 자칫 늙은이가 나선다고 눈총이나 받을지 몰라라는 스스로 그런 저항에 좌절하기도 한다

 

글을 쓰는 문인으로 활동하니까 혼자 작업이어서 덜하지만 일반인에게는 팔십이 주는 압박감은 더하리라는 생각이다

팔십을 지나면서 겪었던 삶의 만사가 희비애락의 한 쪽에만 치우쳤으랴

수명이 길어져 천수를 말한다지만 팔십이라는 숫자에 겁이 난 화자는 깜짝 놀라는 모습을 보인다

옆에서 작가를 겪어보는 사람은 아직 쉴새없이 작품을 써 내고 꼼꼼한 첵크로 건강 관리 잘 하시고 계시는 선생님에게 이런 부탁의 말씀을 드리고 싶다

 

"선생님^^

팔십이 되셔서 쓴 시 「내가 글쎄 팔십이라네 」처럼 솔직하고 자신을 성찰할 수 있는 작품을 쓰신다면 불혹에도 이리저리 흔들리고 이순에도 아집에 붙들려 귀 팔랑이는 세대보다 건강하고 정정하십니다

 

지금까지 넓게 보고 깊이 꿰뚫어 본 역사적 안목을 문필을 통해 후배들에게 가르쳐 주시고 가는 방향을 가르켜 주시길 부탁드립니다

언제나 "박선생" 하고 불러주시는 그 목소리를 오래오래 듣고 싶습니다"

 

저와 함께 찍은 사진을 찾아보니 없어서 같은 장소에서 제가 선생님을 찍어 드리고 선생님께서 저를 찍어 주신 사진을 같이  올려 놓습니다

우리 사진 한번 같이 찍어야겠습니다 ㅎㅎ

 

구양근 총장님^^

새해 건강 평안 문운 다복 누리시길 빕니다.

 

 

구양근 소설가 시인

 

선생님과 같은 날, 같은 곳에서 찍은 필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