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리산방(단양)

[스크랩] 이퇴계 선생의 러브스토리 그리고 눈물..(올만에 왔죠? 미안~ ^^*)

아리박 2009. 11. 10. 11:58
이퇴계와 두향의 러뷰스토리

 

 

 

이퇴계 선생의 매화꽃 보시고 이가을에 좋은 일 가득하시길~~

이황(李滉) 퇴계(退溪)선생은 매화(梅花)를 끔찍이도 사랑했다.

그래서 매화를 노래한 시가 1백수가 넘는다.

 

이렇게 놀랄 만큼 큰 집념으로 매화를 사랑한데는 이유가 있었다.

바로 단양군수 시절에 만났던 관기(官妓) 두향(杜香) 때문이었다.

 

퇴계 선생이 단양군수로 부임한 것은 48세 때였다.

그리고 두향의 나이는 18세였다.

두향은 첫눈에 퇴계 선생에게 반했지만

처신이 풀 먹인 안동포처럼 빳빳했던 퇴계선생이었던 지라

한동안은 두향의 애간장을 녹였었다.

 

 

그러나 당시 부인과 아들을 잇달아 잃었던 퇴계 선생은 .

그 빈 가슴에 한 떨기 설중매(雪中梅) 같았던

두향을 받아들이지 않을 수 없었다..

 

두향은 시(詩)와 서(書)와 가야금에 능했고 특히 매화를 좋아했다.

두 사람의 깊은 사랑은 그러나 겨우 9개월 만에 끝나게 되었다..

퇴계 선생이 경상도 풍기 군수로 옮겨가야 했기 때문이었다.

 

두향으로서는 하늘이 무너지는 듯한 변고였다.

짧은 인연 뒤에 찾아온 갑작스런 이별은 .

두향이에겐 견딜 수 없는 충격이었다.

 

이별을 앞둔 마지막 날 밤, 밤은 깊었으나 두 사람은 말이 없었다..

퇴계가 무겁게 입을 열었다.

『내일이면 떠난다. 기약이 없으니 두려움 뿐이다.』 .

두향이가 말없이 먹을 갈고 붓을 들었다. 그리고는 시 한 수를 썼다.

『이별이 하도 설워 잔 들고 슬피 울 제

어느 듯 술 다 하고 님 마저 가는 구나.

꽃 지고 새 우는 봄날을 어이할까 하노라』

 

이날 밤의 이별은 결국 너무나 긴 이별로 이어졌다.

두 사람은 1570년 퇴계 선생이 69세의 나이로 세상을 떠날 때까지

21년 동안 한 번도 만나지 않았다. 퇴계 선생이 단양을 떠날 때.

그의 짐 속엔 두향이가 준 수석 2개와 매화 화분 하나가 있었다.

 

이때부터 퇴계 선생은 평생을 이 매화를 가까이 두고 사랑을 쏟았다.

매화에게 그 모습을 보일 수 없다면서 매화 화분을 다른 방으로 옮기라고 했다.

퇴계 선생은 두향을 가까이 하지 않았지만.

 

매화를 두향을 보듯 애지중지했다. 선생이 나이가 들어 모습이 초췌해지자

퇴계 선생을 떠나보낸 뒤 두향은 간곡한 청으로 관기에서 빠져나와

퇴계 선생과 자주 갔었던 남한강가에 움막을 치고 평생 선생을 그리며 살았다.

퇴계 선생은 그 뒤 부제학, 공조판서, 예조판서 등을 역임했고

말년엔 안동에 은거했다.

 

그리고 세상을 떠날 때 퇴계 선생의 마지막 한 마디는 이것이었다.

'매화에 물을 주어라'.

선생의 그 말속에는 선생의 가슴에도 두향이가 가득했다는 증거였다.

'내 전생은 밝은 달이었지. 몇 생애나 닦아야 매화가 될까'

(前身應是明月幾生修到梅花).

퇴계 선생의 시 한 편이다.

 

퇴계 선생의 부음을 들은 두향은 4일간을 걸어서 안동을 찾았다.

한 사람이 죽어서야 두 사람은 만날 수 있었다.

 

 

다시 단양으로 돌아온 두향은 결국 남한강에 몸을 던져 생을 마감했다.

두향의 사랑은 한 사람을 향한 지극히 절박하고 준엄한 사랑이었다.

 

그 때 두향이가 퇴계 선생에게 주었던 매화는

그 대(代)를 잇고 이어 지금 안동의 도산서원 입구에 그대로 피고 있다.

 

 


매화 청송 최대식 촬영

      퇴계의 눈물 청송 최대식 구담봉, 옥순봉을 고운 발길로 바위마다 꿰어 둔 삼십 년 거리의 미리내 사랑 아홉 달 나눈 정 무거운 별리 임께 드린 증표 분에 심은 매화 한 그루 부임한 임지건만 그리움은 청풍명월 사시장철 매화 사랑 피어나는 두향의 얼굴 공인의 가슴앓이 어느 누가 알겠는가 전할 수 없는 이십 년 눈물 하늘 밭을 적셨구나
      * 퇴계(이황) : 조선 중기 문신·학자. 자는 경호(景浩), 호는 퇴계(退溪)·퇴도(退陶)·도수. 본관은 진보(眞寶). 경상북도 안동(安東) 출생. 1534년(중종 29) 문과에 급제, 부정자(副正字)·박사·전적·지평 등을 거쳐 세자시강원문학·충청도암행어사 등을 지냈다. 1543년 성균관사성을 지내고, 이어 단양군수(丹陽郡守)·풍기군수(豊基郡守)를 지낸 뒤 낙향하였다. 1552년(명종 7) 홍문관교리에 임명되었으나 신병을 이유로 사퇴하였다. 그 뒤 30여 차례나 벼슬을 제수받았으나, 대사성·참의·경연참찬관 등을 잠시 지냈을 뿐 대부분 사퇴하고 향리로 돌아가 본격적인 학문연구에 전력하여 활발한 저술활동과 강학(講學)에 힘썼다. * 淸風明月(청풍명월): 밝은 달밤에 부는 시원한 바람 . (두향의 고향인 단양을 의미함) * 두향 : 퇴계가 단양군수시절 사랑했던 30년 연하의 기녀 * 미리내 : 은하수 (제주도 사투리) * 公人(공인) : 공적 자격으로서의 사람 즉 공무원을 뜻함. * 任地(임지) : 부임한 곳.
                    ▣ 이렇게 글과 시를 함께 보시면 더 나을 듯 해서요..
                    요즘 이 영상을 자주보게 됩니다.
                    넘 퇴계선생님의 슬픈사랑 얘기에 자꾸 들락거리게 되네요..
                    울님들 좋은 주말되세여~~ ^^*
                출처 : 하얀미소가 머무는 곳
                글쓴이 : 피욜드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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