흰뫼문학 세미나 자료 ( 2013. 8. 1 )
형상 - 이미지의 안과 밖
*** 주제 발표해 주신 김상환 교수님께 감사 드립니다
하나. 감각과 사유
` 시인은 명제가 아니라 형상으로 말한다' 러시아 문예 비평가 비가리온 밸렌스키(1811~1848)의 이 말은 사유에 있어서도 마찬가지로 통용되어 시인은 형상과 이미지로 사유한다.
그랬을 때 `세상은 얼마나 황홀하고 감각적인가... 그것은 신비에서 시작되었고 신비로 끝날테지만 그 사이에는 얼마나 거칠고 아름다운 땅이 가로 놓여 있는가'
그렇다.
감각과 현실의 세계 사이에 존재하는 점이지대漸移地帶는 거칠고 황량하지만 빛나고 아름다운 대지가 가로놓여 있다.
광야의 지대가 바로 그것이다. 廣野야말로 `생의 우선 순위를 보는 장소 아니 자기 실존과 대면하는 진정한 토포스topos에 속한다.
사유가 더 이상 감각적인 것과 분리할 수 없다면 ` 시는 사유할 수 없는 사유를 추구한다'
그것은 곧 감각 경험과 느낌만이 진정한 세계이지 실재의 생각` 모든 사물 하나하나가 진지한 것이고 유일무이한 것이고 또 비교할 수 없는 것이라는 생각. 문학에서의 의미/ 사유는 감각이 만들어낸 것이며 감각과 사물은 하나의 신체라는 장소를 갖는다는 생각에 기반한다
그리고 무엇보다 생명이라는게 동적이고 열린 전체로서 결코 완전히 주어지지 않은 다는 생각 즉 사유=생명 이라는 인식에 근거한다.
형상의 의미가 단순히 시지각적 이미지에만 국한하지 않고 형상= 말하는 침묵 이란 의미마저 포함하게 된다면 (말과) 소리에는 표현 이상의 그 무엇이 있다
이렇듯 뛰어난 시에는 형상을 주체로 한 너머의 시학을 실현함으로서 현실에 깊이를 부여하며 퍼스펙티브를 제공한다. 그렇다면 감각적 사유의 주체인 우리 몸 어떤가?
다음은 신체에 관한 시적 몽상 에세이 한 대목이다
춘정이 시작되는 몸은 몽정기라 부른다. 봄날은 소변 냄새와 비녀 냄새가 모두 몽롱해진다고 비녀 냄새가 흩어진 봄날의 踏靑처럼 어미는 봄이면 방에 쭈그려 앉아 접시에 몽롱한 소변을 보았다.
내 이름을 가진 봄날의 누에처럼 회향풀처럼 외로 누운 몸은 복숭아 물이 든다. 암사슴이 다가와 고개를 숙이고 내 소변을 마시는 낮꿈으로 초대받은 날 , 나는 마당에 앉아 다리를 벌리고 따뜻한 소변을 보고 있었다. 머리를 땋아 올린 添盆 의식처럼 몽정은 몸을 떠나 내게 온다
누군가 내 베게 아래로 속이 맑은 달걀을 넣어 주는 느낌으로 弄花生을 치르는 기분으로 깨어나 나는 북을 치고 목어를 두두리며 아들을 갖고자 종려나무 조각으로 몸을 가리고 있다. 어느 몸으로 들어가 나는 몽정을 하는 것인가 몽정은 나의 外家다 ( 김경주 .밀어 - 몸에 관한 시적 몽상. 문학동네 2012 )
신체의 이미지와 상상력이 더없이 아름답고 몽롱하다 `농화생을 치르는 기분'이다
신기루처럼 봄날의 문학적 시간은 몽상의 시간을 말한다. 후각과 촉각, 시각과 청각의 다채로운 이미지들은 복숭아 물이 드는 것처럼 선명하다. 그러나 그것은 몽정과도 같이 흐르고 점액질을 유지하고 있다. 봄날의 몽정은 몸에서 비롯되었으나 몸은 떠나 있다. 하여 몽정은 나의 외가이자 감각과 사유 느낌의 결합체이며 시와 몽상의 다른 이름이다
시의 진정한 묘처는 이러한 형상 이미지에 주어져 있다.
그것은 안과 밖 신체와 영혼 물질과 정신 말과 삶. 현실과 환상을 횡단하며 양질의 텍스트에 개입한다
둘. 형상 - 이미지의 안과 밖
시가 인간 감정의 전 영역을 가로 지르는 것이라면 시에 대한 이해는 사물의 전 영역- 그 전경과 배후를 헤아리는 일이다.
시는 사물이 갖는 서로 다른 명암과 명암속의 작고 미묘한 뉘앙스 그리고 그 움직임의 변화를 따라간다. 이렇게 따라 가면서 존재의 흔적과 파문을 기록한다.
그리하여 우리는 시를 읽으며 사물이 변화하는 규칙과 이 규칙속의 어떤 질서를 경험한다.
시는 살아 있음의 자연성 또는 자연적 삶의 전체에 다가서게 한다 자연의 거울을 통해 우리는 우리 자신을 새롭게 느끼고 또 다르게 생각한다. 시를 읽으며 새로이 사물을 보듯 우리는 우리 자신을 새롭게 조형한다( 문광흠. 숨은 조화 아트북스 2006 )
형상- 이미지의 안과 밖은 분리되어 있으면서도 통합되어 있다
이는 달리 말해 시의 전경과 배후에 해당하며 `사물이 갖는 서로 다른 명암과 명암속의 작고 미묘한 뉘앙스 움직임의 변화를 일컫는다 시의 새로움이란 바로 여기에 위치한다 `카메라 루시다'의 작가 롤랑 바르트의 용어를 빌리자면 스튜드움studium과 푼쿠튬punctum이 이에 비견된다
텍스트에 대한 보편적인 시건과 해독에 해당하는 전자에 비해 후자는 개인의 특수한 시선과 해독 즉 깊은 상처와 흔적을 말한다 그것은 하나의 사건이자 발견이다
그럼 짧은 시 한편을 감상해 보자
아, 나는 가엽게도
꿈에서 깨어나고 말았구나
- 원구식. 싹 . 전문
서술적 이미지의 내적 표상과 인텐시티. (강도. 강렬함. 중요성. 집중)가 강하게 어필하는 작품이다
소재에 대한 새로운 해석이 하나의 묘처를 얻고 있는 이 시에서 꿈과 희망 생명과 가능성의 심볼인 (새)싹은 연민과 탄식의 대상으로 주어져 있음이 특기할 만하다
싹은 어두운 대지가 바로 희망이자 꿈이며 자궁이자 무한한 가능태이다
그러나 화려한 빛의 세상과 주어진 현실/ 운명은 자기 연민이자 고통이며 꿈의 상실에 속한다. 어둡고 깊고 유현한 땅의 비밀이야말로 인간과 시의 비밀이다
희망과 절망 사이에서 형상- 이미지의 사유는 발견(실현)된다.
그리고 대상에의 연민과 사랑 성성惺惺은 형상과 이미지를 얻게되는 통로로 작용한다
매화 피고 나니
산수유 피고
또 벚꽃이 피고
꽃맹아리 저리 빨갛다
화개 지나는 중
꽃 피고 지는 사이
내 일생의
웃음도 울음도
行
다 저기에 있다
- 이종암. 봄날 하동. 전문
봄날 화개마을 지나면서 시인은 꽃이 피고 지는 것을 본다
아니 꽃이 피고 지는 과정과 이미지의 순간/ 형상을 본다.
꽃이 피고 지는 사이 즉, 행은 동양의 사유에서 매우 중요하게 취급되며 시는 行易이다.
시적 사유의 핵심은 전경과 배후 사물의 명암 변화의 과정이 내포되어 있다.
가고 오는 행과 역의 이치/ 변화가 기실은 꽃을 피우고 시를 생성하는 기운으로 작용한다
자연과 인간은 그런 점에서 닮아 있다. 인간의 생애란 것도 꽃이 피고 지듯이 종내는 울고 웃는 것이다.
하나의 꽃이 피고 지는 데는 그만한 고통이 따르는법( 꽃맹아리 저리 빨갛다)
그 고통이란 물론 환희의 다른 이름을 말한다
이런 현상과 본질의 내적 관계가 다름아닌 형상- 이미지의 안과 밖의 관계이다
봄날 하동에서의 시적 경험은 부분에서 전체를 유추하며 ( 다 저기에 있다) 시의 지헤를 얻고 있다.
자연에 질서를 부여하는 관조의 태도 또한 주목할 만 하다 이경우 관조란 단순히 눈을 감고 몰입하는 것이 어니라 합생과 이행의 과정을 포괄한다 결국 매화- 산수유- 벚꽃의 흐름은 이 시의 행과 행간을 헤아리는 일이 된다
다음 한편의 시를 보자
먼 사막을 향하여 떠나는 산 위의 흰눈이 빛나고
페르시아 긴 칼이 서늘하다
하마단
여기서 이스파한까지는
여기서 페샤와르까지는
여기서 바라나시까지는
하마단
하마단
메마른 내 몸 속에는 아직 무수한 많은 길들이
흔들린다
지친 낙타의 큰 눈속에 잠긴 신기루
푸른 호수 가운데
먼 길 들꽃처럼 무수히 날린다
- 현담 . 하마단 전문
호모 비아토르Homo viator 길 위의 인간 , 여행자 /순례자다
이 시를 읽는 일차적인 즐거움은 감각과 언어에서 파생된다 즉, 하마단이란 어의가 환기하는 미묘한 뉘앙스 색채의 대비 (흰 눈vs 푸른 호수)에서 비롯되는 시각적 효과. 주문과도 같이 반복되는 음운(ㅇ. ㅎ)에 있다
이 시를 거듭 읽고 있노라면 소리의 숲과 미로속으로 자신도 모르게 빠져들게 되어 내면의 깊은 울림과 반향을 경험하게 된다
하지만 시에 나타난 음악적 감각적 배려는 그 자체의 독립적인 기능과 의미보다는 `길'의 모티브와 상상력의 차원속에서 보다 새롭게 주어진다
그런 점에서 이 시의 가장 핵심적인 이미지이자 시의 진술로 지목되는 것은 ` 메마른 내 몸 속에는 아직 무수히 많은 길들이/ 흔들린다"라는 구절이다
`나'는 지금 집을 떠나 낯선 길 위에 있다 그 길은 포장이 잘 된 문명의 길이 아니라 그것과는 거리가 먼 사막이나 만년설로 뒤덮인 자연의 길이다
그 길을 걸어서 쉬이 당도할 수 있는 근거리가 아니라 무수히 많은 길( 하마단. 이스파한. 페샤와르. 이슬라마바드. 바라나시.)의 연속이다
멀고 낯선 행로는 지치고 들꽃처럼 흔들리는 법 하면서도 나는 존재의 먼 길을 묵묵히 가고 있다 시의 길은 하마단(해발 1800m)에 위치한 고대 페르시아의 고도에 이르는 길이다
그것은 실제 지도상의 한 장소나 지점이 아니라 마음의 행로이자 내면으로의 여정에 속하는 니만의 길이자 고독의 길이다
비장한 각오(페르시아의 긴 칼이 서늘하다)가 아니라면 그 길은 추호도 감당할 수 없다
길은 또 하나의 신체이자 영혼이다 형상 이미지다 그런 점에서 이 시는 침묵의 언어로 씌여진 經에 속한다
또 이런 시는 어떤가
봄이 오는 쪽으로 빨래를 널어둔다
살림. 이라는 말을 풍선껌처럼 불어 본다
옛날에 나는 까만 겨울이었지
산동네에 살던. 고아는 아니었지만 고아 같았던
실패하고 얼어 죽기엔 충분한
그런 무서운 말들도 봄이 오는 쪽으로 널어둔다
음악이 흐른다 빨래가 마른다
옛날에 옛날에 나는 엄마를 쭉쭉 빨아 먹었지
미모사 향기가 나던 연두 라는 말을 아끼던
가볍고 환해지기엔 충분한
살림 이라는 말을 빨고 빨고 또 빨아
봄이 오는 쪽으로 널어 두던
- 안현미 . 실내악 전문
삶은 사람을 축약한 말이다
이는 안현미 시인의 산문 `살며 사랑하며'에 나오는 한 귀절이다
계절에 대한 감각적 이미지와 언어 대비의 효과 리듬감이 느껴지는 이 시에서 삶=사람= 살림 은 하나의 빨랫줄로 이어져 있다
그렇다 빨래라는 말 살림이라는 말이 이보다 더 아름답고 깊을 수 있을까 그 말을 얼마나 빨고 빨고 또 빨아야 우리는 시의 진언에 이를 수 있을까
봄이란 말에는 가볍고 희고 음악이 흐르고 연두빛 향기가 난다
하여 그것은 악기와도 같다 봄이라는 시간은 산동네와 고아의 까만 옷이 거짓말처럼 마르고 스스로 정화 시킨다
그러나 빛과 생명의 봄이라는 말에는 겨울날의 고통과 공포 누구도 감당해야하는 외로움이 은폐되어 있다
실내악의 의미가 전해지는 순간이다
독주 악기를 모아 각각의 악기가 하나의 성부를 맡도록 배치하는 기악 합주곡이 실내악이라면 그 낱낱의 시간과 공간 경험과 감각 과거와 현재가 한데 어우러져 하모니를 이룩한 게 다름아닌 실내악의 세계이다
실내악은 겨울과 봄의 사이에 있다. 말과 삶의 한 가운데 있다
그 연장선에 놓여 있는 또 다른 시편을 보기로 하자
왼쪽 힘이 오른쪽 힘에 끌리듯
다시 오른쪽 힘이 왼쪽을 당기듯
그런 지속되는 순간 속에
폭우도 면도날도 눈발이 있다
밀어 냈는가 하면 어느새 아침
아침이 문드러지면 저녁이
어둠이 문드러졌다 싶으면 한낮이
그렇게 반복되어 스치는 순간에
껍질인 몸은 마모되는 것이다
결국엔 남는 것은 삐걱거림
십 수 년 넘게 몰고 다닌 세피아도
윈도부러시 마찰음이 요란하다
부채없이 하루라도 살아 본 날이 없는
그늘은 그런 삐걱거림의 연속이었구나
깨어 부술 수 없는 이 창을
닦고 또 닦는 것은 운명이다
몇 번인가 고무를 갈아 보지만
그래도 참 착한 생이고 보면
골목 담장 넘어온 석류꽃
차창에 누운 선홍은 지우지 못해
흐린 시야 그대로 주행한다
유리와 고무의 틈새에서
알게 모르게 자라는 수염
억겁의 소리 들렸다
박 윤배 ` 윈도브러시 '전문
일상을 비일상화하는 게 형상 이미지의 기술이라면 인용시가 그런 경우다
윈도 브러시라는 공업용품이 몸으로 운명으로 생으로 다시 억겁의 소리로 형상화되는 과정을 그리고 있는 이 시의 지배적 이미지는 창과 윈드브러시이다
양자는 물론 충분히 연관되어 있다
폭우와 눈발 속에서 윈도 브러시의 기능은 일정한 간격으로 지속적으로 움직이는데 있다
하지만 도구(몸)의 마모로 인한 작동 불량(마찰음이 요란하다)은 급기야 삐걱거리게 되고 그런 행위가 이어지고 있다
대상의 주체적인 시각을 확보하고 있는 윈도브러시에게 `깨어 부술 수 없는 이 창을 /닦고 또 닦는 것이 운명이다
이는 곧 부채없이 하루라도 살아본 날이 없는 시인의 삶으로 치환되어 결코 순탄하지않은 자신의 또 다른 운명임을 내비친다
창이 갖고 있는 심리적 양가성은 사물의 인간화로 인해 실감있게 묘사되어 있는 바 특히 시인의 감각과 상상력 사이의 시학이 돋보이는 대목은 시의 후반부(골목 담장 넘어온 석류꽃/ 차창에 누운 선홍은 지우지 못해/ 흐린 시야 그대로 주행한다/ 유리와 고무의 틈새에서 / 알게 혹은 모르게 자라는 수염/ 억겁의 소리 들렸다)이다
그것은 곧 문명(윈도브러시)에서 자연 (석류꽃)으로의 이행이며 사이/차이로 인한 초월적 상상력이다
자연의 빛/색은 여하한 기술로도 지울 수 울 수 없는 법. 마모되어 삐걱거리는 윈도브러시의 소리 또한 더 이상의 잡음이 아니라 억겁/ 영원의 소리로 거듭 나 있는 점이 그것이다
위험과 위기의 순간들(폭우도 면도날도 눈발도 있다)이란 누구에게나 있다
문제는 마음의 빛과 색과 소리로 한 생각을 바꾸는데 있다
그런 진실을 낡고 쓸모없는 윈도브러시는 우리에게 일러준다
셋. 시적인 것과 형상
20세기 시문학은 이미지 발견과 더불어 시작된다
그리고 이미지의 가능성 속에서 현대성을 발견하였다
이는 곧 시적인 것에 대한 시대적/ 사조적 모색으로 볼 수 있다
계몽주의에서 오늘날 포스트모더니즘에 이르기까지 시의 경우 사유와 형상 이미지는 그 핵심을 차지한다
양자는 결코 분리되어 있지 않으며 분리될 수 없는 특수한 관계를 유지하고 있다
좋은 시의 경우는 형상 이미지의 실현과 적용에 있어 결코 단선적이지 않다
그렇게 보면 시적인 사유와 방법의 관계를 어떻게 설정하고 유기적으로 통합하여 형상화하였는가 그것이 관건이다
감각과 이미지의 새로운 배치와 활용에 해당하는 형상화의 방식은 어느모로 형상 그 너머를 지향한다
막스 피카르트의 말처럼 시가 더 깊고 어두운 하나의 생명을 내포한다면 이미지를 읽는다는 것은 이 이미지를 읽는 자기를 읽고 자기 삶을 키우는 일이다
끝으로 `형상' 동인의 새로운 출발과 기대를 염원하며 시적인 것과 형상화에 대한 암중 모색을 바란다
실험이 없는 문학은 정체되고 허망한 실험이 반복되면 문학은 고사한다
자기 쇄신은 현실과 전통에 대한 깊이 있는 통찰이 없이는 이루어지지 않은다
놀라운 다산성과 다양한 시적 언어들을 펼쳐 보여 주는 오늘의 우리 시가 건강한 생명력을 이어가기 위해서는 시단에서 진행되고 있는 새로운 언어들이
무엇을 위한 것인지 찬찬히 되물어야 할 것이며 아류나 시적 유행 그리고 새로움에 대한 맹목적인 옹호도 경계할 필요가 있다...
새로운 것에 대한 과도한 경사는 텅빈 개성 모방된 개성을 불러오는 법이며 문학 생태계의 다양성을 훼손한다
자기 세계를 심화하고 확장하려는 집요한 노력이 필요하다
시를 바꾸기 위해 삶을 바꾸었다는 김수영의 시학적 태도가 어느 때보다 절실하게 요청되는 시대 . 진정한 개성은 자기로부터 시작되며 자기= 사유를 천착하는 과정에서 자신을 드러내는 법이다
넓어지고 깊어지는 서정에서 `미래의 서정'은 도래할 것이다
(김문주 `작품해설' 넓고 깊어지는 서정 , 그 오래된 미래 . 미래서정. 2012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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