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학이론

시 창작에서의 상상력의 실제

아리박 2012. 2. 16. 18:44

시창작에서의 상상력의 실제

-"내가 암늑대라면"의 예를 들어


양애경 (시인, 공주영상대 교수)


작년(2005)에 내가 4시집을 냈을 때, 시집 제목이 『내가 암늑대라면』이라고 하면 웃어버리는 분들이 많았다. 늑대가 아주 나쁜 동물로 묘사되는 일이 많은데다가, 엉큼한 남성을 늑대에 비유할 때가 많기 때문인 것 같다. 그래서 이야기가 나온 김에, 시집의 표제가 된 시 내가 암늑대라면 이 어떻게 쓰여졌는가에 대해 말해 보려고 한다.


늑대

나는 개과 동물을 아주 좋아한다. 개, 여우, 너구리, 늑대, 이리는 모두 개과 동물이다. 그 중에서도 개의 충실함과 정직함, 그리고 다감한 애정은 감동적이다. 먼 옛날 인류의 선조는 첫 번째 가축으로 늑대를 선택하여, 길들이고 변형시켜 개로 만들었다고 한다. 지금도 개에 대한 인간의 선택과 변형은 계속되고 있다.(애완견은 유행에 따라 개량되고 번식된다). 개는 사랑스럽지만 존경할 만하지는 않다. 하지만, 아직도 남아있는 순혈의 늑대라면, 존경할 만하다고 생각한다. 길들여지지 않고, 변형되지 않고, 사람에게 먹이와 주거를 의존하지 않는 진짜배기 야생동물인 늑대, 멋지다고 생각했다.

거기다가 동물소설가가 쓴 늑대 또는 늑대개에 대한 이야기의 영향도 있겠고, 또 늑대인간 전설을 그린 나자리노 라는 영화도 있었는데, 낮에는 사람이지만, 달이 뜨는 밤에는 늑대로 변해버리는 남자를 사랑하는 여자의 이야기다. 소녀다운 감수성이었겠지만 참 슬프고 아름다운 사랑이야기였다. 늑대에 대한 동물학자의 증언도 고무적이다. 늑대는 무리를 지어 노약자를 보호하며 살아가는 아주 의리있고 사회성이 있는 동물이라는 것이다. 식량이 부족하면 마을의 가축을 해치는 일이 있기는 하지만, 그만큼 배가 고프면 사람이라도 남의 것에 손을 대리라. 늑대는 무차별로 살생하지도 않고, 먼저 사람을 공격하지도 않는다. 그러니, 늑대에 대한 많은 험담은 대부분 누명인 것이다. 언젠가 인디언 보호구역에서 늑대와 함께 살며 늑대를 연구하는 남자에 대한 다큐를 읽은 적이 있었다. 그처럼 살고 싶었다.




벚꽃

벚꽃나무는 아주 델리케이트한 느낌을 준다. 잎도 피지 않은 나무에 확 불이 붙듯 한꺼번에 피어나지만, 꽃의 빛깔은 거의 흰색에 가까운 연분홍으로 담백하다. 벚나무 둥치도 유별나게 아름다워서, 밤에는 흑단처럼 매끄러워 보인다. 게다가 꽃이 질 때는 세상의 허무를 상징하듯 일시에 떨어져 버린다. 일본에 벚꽃에 대한 환상적인 이야기가 많은 것도 아마 이렇듯 화려하면서도 허무한 벚꽃의 미학 때문이리라. 사실 벚꽃나무는 아주 관능적이다. 요염하면서 허무하다. 그래서 그런지 벚꽃의 이미지는 요절 夭折한 젊은 여자다. 이런 느낌들 때문에 벚꽃나무 아래를 지나며 라는 시를 쓴 적도 있었다.

한편, 식물학적으로 보면, 꽃은 식물의 생식기다. 개화는 암꽃술 과 수꽃 가루가 만나 수정하는 기회다. 그렇다면 밤벚꽃 놀이는 벚나무의 왕성한 생식을 구경하며 축하하는 잔치이다. 사람들이 밤의 벚꽃에 매혹되는 이유는, 문명화되어 야성이 퇴화해 버린 인간에게는 가끔 자연의 생명력, 그 氣를 받는 일이 필요하기 때문이 아닐까?

그래서, 야성의 늑대가 사랑의 의식을 벌이는 장소로는 봄의 산벚꽃나무 아래가 가장 어울린다고 생각했다. 늑대는 꽃 핀 벚나무 아래에서 개과 짐승다운 애정표현으로, 몸을 비벼대고, 핥고, 다치지 않을 만큼 깨물기도 하면서 교미를 하리라. 간혹, 나무둥치에 쿵쿵 몸을 찧으면, 위에서 벚꽃잎이 눈보라처럼 내려오리라.

그러한 생식은, 환경호르몬. 스트레스. 알콜과 니코틴 때문에 저하된 생식력을 가진 현대의 도시남자의 것과는 다르게 아주 신선한 씨를 퍼뜨리리라. 암늑대의 입장에 서서 나는 그렇게 상상해 보았다.

여기까지의 생각으로 인해 쓰여진 시의 앞부분은 다음과 같다.




내가 만약 암늑대라면
밤 산벚꽃나무 밑에서 네게 안길 거다
부드러운 옆구리를 벚꽃나무 둥치에 문지르면서
피나지 않을 만큼 한 입 가득 내 볼을 물어떼면
너는

만약 네가 숫늑대라면
너는 알콜과 니코틴에 흐려지지 않은
맑은 씨앗을
내 안 깊숙이 터뜨릴 것이다 그러면 나는

해처럼 뜨거운 네 씨를
달처럼 차가운 네 씨를
날카롭게 몸 안에 껴안을 거다

우리가 흔들어놓은 벚꽃 둥치에서
서늘한 꽃잎들이 후드득 떨어져
달아오른 뺨을 식혀줄 거다


결혼제도


늑대를 연구하는 동물학자는 늑대가 일부일처제를 지키는 지조 있는 동물이라고 말한다. 아마, 호모사피엔즈(인간)를 연구하는 외계인 학자가 있다면, 같은 이야기를 할지도 모르겠다. 모두 그렇지는 않지만 대부분은 일부일처제를 유지하니 말이다.

임신하여 만삭이 된 암늑대는 먹이사냥을 하기 어렵게 될 것이다. 새끼를 출산하고 젖 먹여 기르는 동안에는 더욱 그렇다. 그때는, 새끼들의 아빠인 숫 늑대가 먹이를 물어다가 부양해야 할 것이다. 그러고 보면, 인간의 여자가 까다롭게 남편감을 고르는 이유도 그것인 듯 하다. 임신하기 전에, 출산과 육아가 계속되는 기간 동안 자신과 아이들을 부양해 줄 능력과 책임감이 있는 남자인지를 판단해야 한다. 잘못하면 아이와 함께 굶어 죽을 것인지, 아이들을 버리고 혼자라도 살아남을 것인지를 선택해야 할지도 모르기 때문이다. 간혹 새끼를 낳은 동물이 자기 새끼를 죽이거나 먹는 예를 본다. 그것은 식욕 때문은 아닐 것 같다. 환경이 불안해서 무사히 새끼와 함께 살아남기 어렵다고 판단한 때문이 아닐까. 그러고 보면, 생활고를 비관해서 아이들과 동반자살하는 엄마의 심정을 조금은 이해할 수 있을 것도 같다.

그 다음 연은, 새끼가 어느 정도 자란 후 가족을 버리고 다른 모험을 찾아 떠나는 숫 늑대를 연상한 것이다. 남자들은 여자들 보다 모험심이 많고, 그 ‘모험심’은 세상의 진보에 큰 역할을 한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솔베이지 처럼 평생을 남자의 귀환만 기다리는 여자가 되기는 싫다.

그래서 중간 부분은 이렇게 되었다.


내 안에서 그 씨들이 터져
자라고 엉기고 꽃피면
(꽃들은 식물의 섹스지)
나는 언덕 위에서
햇볕을 쬐며 풀꽃들 속에 뒹굴 거다

그러다 사냥을 할 수 없을 만큼 몸이 무거워진 내 곁을
네가 떠나 버린다면
그래서 동굴 안에서 혼자 새끼를 낳게 한다면
나는 낳자마자 우리의 새끼들을 모두 삼켜버릴 거다

하지만 너는 그러지 않겠지
움직이지 못하게 된 내 곁을 지키면서
눈시울을 가느다랗게 하면서
내 뺨을 핥을 거다

후에 네가
수컷의 모험심을 만족시키려 떠난다면
나는 물끄러미
네 뒷모습을 바라보고 있을 거다

그리고 다음 해 봄에는
다른 수컷의 뺨을 깨물 거다
평생을 같은 수컷의 씨를 품는 암늑대란
없는 거니까


“평생을 같은 수컷의 씨를 품는 암늑대란 없다” 는 구절에 대해서는 더 알아보아야 할 듯하다. 평생 같은 수컷일 수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개의 경우, 선택의 폭이 넓다면 굳이 해마다 같은 개의 짝이 되어 새끼를 낳지는 않는 것 같다. 또 수컷은 되도록 많은 암컷에게 자신의 씨를 뿌리고 싶어하는 게 본능이라고 하지 않던가. 수컷의 본능에 대해 생각하다 보니 왠지 울컥해져서, 이렇게 단정적으로 써버렸다.


사회제도

마지막의 두 연은, 시점이 주인공인 암늑대에게 맞추어졌다. 여기서, 늑대 무리의 우두머리는 나이 들고 지혜로운 암늑대이다. 사실, 원시사회에서 혈통을 대표하는 것은 남자보다는 여자였다고 한다. 당시의 집단 난혼 亂婚상태에서는, 아버지를 구분하기가 어렵고, 어머니는 확실하기 때문이라는 설도 있다. 이른바, 모계사회다. 혈연의 중심에서 가족을 결집시키며, 경험이 많고 지혜로워, 구성원들을 위험에서 지키고 풍부한 먹이가 있는 곳으로 인도할 수 있는 암컷, 이것이 모계사회의 족장이 아니었을까?

내 꿈 또한 오래 살아남아 그런 현명한 암늑대가 되는 것이다. 그리하여 젊음과 미모로만 가치를 인정받는 꽃이 아니라, 젊은이들을 보호하는 대모 代母가 되리라.



가장 나이 들고 현명한 암컷이 되는 것
뜨거운 눈으로 무리를 지키면서
새끼들의 가냘픈 다리가 굵어지는 것을 바라보는 일

그리하여 나는 거기까지 가는 거다
이 밤 이 산벚꽃나무 밑둥에서 출발하여
해 지는 언덕 밑에 자기 무리를 거느린
나이 든 암컷이 되기까지


매력적인 암컷에서 현명한 지도자가 될 수 있을 때까지, 오래도록 살아남고 싶다는 희망, 이것이 나의 꿈이고 이 시의 주제다. 이처럼, 이 작품은 늑대와 벚꽃의 이미지에서 출발하여, 결혼제도와 사회제도에까지 생각이 이어지면서 쓰여졌다.


<시와 시학 2006년 겨울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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