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작시

아내의 외출

아리박 2009. 10. 21. 10:11

    아내의 외출

                                    박영대

 

모처럼  아내가 집을 비운 날

출출하던 차에  냉장고 열어 보니

아침에 잘 먹었던  시래기 된장국이 남아 있다

 

거친 듯  씹히는  무우 시래기에 

스며든  멸치의 몸  풀어 냄

바다가 멸치속으로  들어 와 헤엄치고 있다

 

멸치떼의 유영이 시래기밭에 버무려졌는데

멀리 보이는 남해 바다 리아스식 풍경이다

 

내 까다로운  식성으로  매사에 아내 탓만  늘어 놓을텐데

된장국으로 타박이 반으로 준 것은  사실이다

 

바다를  제몸 크기로  함축해 낸  멸치의 절제와

냄비 국물에다  다시 풀어낸  부연의 손 맛

 

해안선  그 보드라움에  빠져  가스불에  올려 놓고

깜박 잊고  밖에 좀  나갔다가 냄비 채 까맣게 태워 먹었다

 

맨날  성에 안찬  아내가  잠시 집 비운 사이

큰일 낼 번 했다

 

태운 것은  바다였는데  집안 가득 외출한  아내 냄새가 진동한다

한 며칠간  타 버린 아내의 부재  냄새에 시달렸다

 

 

 

'자작시' 카테고리의 다른 글

동해의 여명  (0) 2009.10.21
꽃장  (0) 2009.10.21
어린 소나무를 옮기며  (0) 2009.10.13
아리산방  (0) 2009.10.02
잔설  (1) 2009.07.1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