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학 이야기

나타샤, 시인 백석의 사랑

아리박 2014. 8. 28. 13:48

  나타샤. 시인 백석의 사랑

 

 1930년대 서울의 모던보이 백석을 읽다

백석은 월북 작가중에서 누구보다도 가장 사랑받는 작가이다

그의 사랑 이야기를 중심으로 더듬어 볼까 한다

 

 

 

백석은 평안도 정주에서 오산학교를 졸업하고 김소월을 흠모하면서 시인의 꿈을 키웠다 조선일보 신년 현상문예에 당선한 후 일본에 유학 영어사범과를 나와서 고국에 돌아와 조선일보에 근무하는 전도 양양한 시인이요 기자였다

 

백석은 최초의 여자는 통영이 고향이고 이화여고보에 다니던 박경련이었다.

친구의 소개로 박경련을 처음보고는

`나는 조선 여자의 전형을 보고 있다

내 운명의 날이 오늘이다

다른 처녀들은 아예 눈에 들어오지 않은다

이 세상의 좋은 것은 모두 란이라고 부르겠다'며 그녀를 란이라고 이름지어 불렀다

남쪽 바다 통영까지 수차레 다니면서 여러 편의 시를 지어 발표했다

그러나,  여러 방법으로 구애를 했으나 박경련이 마음을 얻지 못하고 쓸쓸히 돌아서야 했다

그것도 절친한 친구(신현중)와 결혼해 버린 그녀를 잊지 못하고 평생을 두고두고 아쉬움속에 살아 온 것 같다

 

통영을 오가며 시를 썼다

 

통영 / 백석

 

구마산의 선창에선 좋아하는 사람이 울며

나리는배에 올라서 오는 물길이 반날

갓 나는 고당은 갓갓기도 하다

 

바람맛도 짭짤한 물맛도 짭잘한

 

전복에 해삼에 도미 가재미의 생선이 좋고

파래에 아개미에 호루기의 젓갈이 좋고

새벽녘의 거리엔 쾅쾅 북이 울고

밤새껏 바다에선 뿡뿡 배가 울고

자다가도 일어나 바다로 가고 싶은 곳이다

 

산 너머 로 가는 길 돌각담에 갸웃하는 처녀는 금이라는 이 같고

내가 들은 마산 객주집의 어린 딸은 난이라는 이 같고

 

         

                   백석의 초상화

 

 

다음으로 만난 여자가 함흥 권번에서 만난 진향(김영한. 기생 )이었다

백석은 처음 만난 날 `당싱은 나의 마누라야' 라고 친구들 앞에서 선포했다

자야(子夜)라는 이름을 지어 주고 외로울 때마다 실의에 빠질 때마다 그녀를 찾았다 

그런 백석을 자야는 다 받아 주고 어루만져 그의 안식처가 되어 주었다

후일 김영한은 성북동 대원각 요정을 길상화라는 법명을 받고 법정스님에게 시주하여 길상사를 봉축한다

또한 `내 사랑 백석'을 저술하여 영원한 백석의 연인으로 살다 간 여인이다

나와 나타샤와 흰 당나귀라는 시를 지어 그녀에게 주었다

자야는 기생으로 자기 신분을 드러내 놓을 수 없는 것을 알고 백석의 편력을 이해해 주는 여자다

오늘에 백석의 여인으로 널리 알려진 것도 그녀의 이런 모습이 크게 영향한 것이라고 생각한다

 

나와 나타샤와 흰 당나귀 / 백석

 

가난한 내가

아름다운 나타샤를 사랑해서

오늘밤은 푹푹 눈이 나린다

 

나타샤를 사랑은 하고

눈은 푹푹 날리고

나는 혼자 쓸쓸히 앉어 소주를 마신다

소주를 마시며 생각한다

나타샤와 나는

눈이 푹푹 쌓이는 밤 흰 당나귀를 타고

산골로 가자 출출이 우는 깊은 산골로 가 마가리에 살자

 

눈은 푹푹 나리고

나는 나타샤를 생각하고

나타샤가 아니 올 리 없다

언제 벌써 내 속에 곶곤히 와 이야기한다

산골로 가는 것은 세상한테 지는 것이 아니다

세상 같은 건 더러워 버리는 것이다

 

눈은 푹푹 나이고

아름다운 나타샤는 나를 사랑하고

어데서 흰 당나귀도 오늘밤이 좋아서 응앙응앙 울을 것이다

 

                          관광엽서 모델이 된 자야

 

다음으로 등장하는 여인이 최정희이다

최정희는 노천명, 모윤숙과 함께 당시 서울의 신여성이다

나와 나타샤와 흰 당나귀라는 시를 지어 자야와 최정희에게 보낸다

이 일로 백석은 한 동안 구설수에 오르게 된다

그러나 최정희의 마음은 딴 남자(김동환)에게 있어 그녀의 마음을 얻는데 실패한다

 

흰 바람벽이 있어 / 백석

 

오늘 저녁 이 좁다란 바람벽에

어전지 쓸쓸한 것만이 오고 간다

 

이 흰 바람벽에

희미한 십오촉 전등이 지치운 불빛을 내어던지

때글은 낡은 무명샤츠가 어두운 그림자를 쉬이고

그리고 또 달디단 따끈한 감주나 한잔 먹고 싶다고 생각하는 내 가지가지 외로운 생각이 헤매인다

그런데 이것은 또 어인 일인가

 

이 흰 바람벽에

내 가난한 늙은 어머니가 있다

내 가난한 늙은 어머니가

이렇게 시퍼러등등하니 추운 날인데 차디찬 물에 손을 담그고 무이며 배추를 씻고 있다

또 내 사랑하는 사람이 있다

내 사랑하는 어여쁜 사람이

어늬 먼 앞대 조용한 개포가의 나즈막한 집에서

그의 지아비와 마조 앉아 대구국을 끓여놓고 저녁을 먹는다

벌써 어린 것도 생겨서 옆에 끼고 저녁을 먹는다

그런데 이즈막하야 어늬 사이엔가

 

이 흰 바람벽엔

내 쓸쓸한 얼골을 쳐다보며

이러한 글자들이 지나간다

- 나는 이 세상에서 가난하고 외롭고 높고 쓸쓸하니 살아가도록 태어났다

그리고 이 세상 살아가는데

내 가슴은 너무도 많이 뜨거운 것으로 호젓한 것으로 사랑으로 슬픔으로 가득 찬다

그리고 이번에는 나를 위로하는 듯이 나를 울력하는 듯이

눈질을 하며 주먹질을 하며 이런 글자들이 지나간다

- 하늘이 이 세상을 내일 적에 그가 가장 귀해하고 사랑하는 것들은

모두 가난하고 외롭고 높고 쓸쓸하니 그리고 언제나 넘치는 사랑과 슬픔속에 살도록 만드신 것이다

초생달과 마구지꽃과 짝새와 당나귀가 그러하듯이

그리고 또 `프랑시스 쨈'과 `도연명'과 라이넬 마리아 릴케'가 그러하듯이.

 

이 시는 백석의 시편 중에 가장 돋보이는 명작이라는 생각이다

 

 

 

그 다음으로 첫 부인과 정식으로 결혼한다

부모들의 강요로 결혼을 하지만 첫 부인과의 관계는 알려진 것이 없다

첫 부인과 헤어지고 곧바로 서울을 떠난다

 

두번째 진천 부인과 결혼한다

그러나 10일만에 두번째 부인을 떠나 자야에게로 돌아온다

이 때 백석은 함흥에서 교편을 잡고 있었고 자야는 같은 함흥에서 요정을 하고 있었다

 

다음으로 평양에서 친구 동생인 문경옥과 결혼한다

문경옥은 피아니스트로 작곡가이며 1년간 결혼 생활을 했으나 헤어진다

그녀는 북한에서 최고의 여성 음악가로 칭송받은 여인이다

 

34세에 마지막으로 열네살 아래 여인 리윤희를 만나 평양에서 결혼한다

그녀와의 사이에는 2남2녀의 자녀들이 태어났다

북한에서 목적 문학에 적응하지 못하고 평양에서 축출되고

백석이 개마고원 삼수갑산에서 죽을 때까지 옆에서 지킨 마지막 여인인 셈이다

 

정식으로 결혼은 아니 했지만  백석의 영원한 연인 자야는 죽으면서 자신의 뼈를 한 겨울 눈이 가장 많이 오는 날 길상사 마당에 뿌려달라는 유언으로 지금도 백석 한남자만을 기리고 있다

 

남신의주 유동 박사봉방 / 백석

 

어느 사이에 나는 아내도 없고. 또.

아내와 같이 살던 집도 없어지고

그리고 살뜰한 부모며 동생들과도 멀리 떨어져서

그 어느 바람 세인 쓸쓸한 거리 끝에 헤매이었다

바로 날도 저물어서

바람은 더욱 세게 불고, 추위는 점점 더해 오는데

나는 어느 목수네 집 헌 삿을 깐

한 방에 들어서 쥔을 붙이었다

이러하여 나는 이 습내 나는 춥고 누긋한 방에서

낮이나 밤이나 나는 나 혼자도 너무 많은 것 같이 생각하며

달옹배기에 북덕불이라도 담겨 오면

이것을 안고 손을 쬐며 재 우에 뜻없는 글자를 쓰기도 하며

또 문밖에 나가디두 않구 자리에 누워서

머리에 손깍지벼개를 하고 굴기도 하면서

나는 내 슬픔이며 어리석음이며를 소처럼 연하여 쌔김질하는 것이었다

내 가슴에 꽉 메어 울 적이며

내 눈에 뜨거운 것이 핑 괴일 적이며

또 내 스스로 화끈 낯이 붉도록 부끄러울 적이며

나는 내 슬픔과 어리석음에 눌리어 죽을 수 밖에 없는 것을 느끼는 것이었다

그러나 잠시 뒤에 나는 고개를 들어

허연 문창을 바라보든가 또 눈을 떠서 높은 텬정을 쳐다보는 것인데

이때 나는 내 뜻이며 힘으로 , 나를 이끌어 가는 것이 힘든 일인 것을 생각하고

이것들보다 더 크고 높은 것이 있어서, 나름 마음대로 굴러 가는 것을 생각하는 것인데

이렇게 하여 여러 날이 지나는 동안에

내 어지러운 마음에는 슬픔이며 한탄이며, 가라앉은 것은 차츰 앙금이 되어 가라앉고

외로운 생각만이 드는 때쯤 해서는

더러 나줏손에 쌀랑쌀랑 싸락눈이 와서 문창을 치기도 하는 때도 있는데

나는 이런 저녁에는 화로를 더욱 가가 끼며, 무릎을 꿇어 보며

어느 먼 산 뒷옆에 바우섶에 따로 외로이 서서

어두워 오는데 하이아니 눈을 맞을, 그 마른 잎새에는,

쌀랑쌀랑 소리도 나며 눈을 맞을,

그 드물다는 굳고 정한 갈매나무라는 나무를 생각하는 것이었다.

 

지금으로 생각하면 백석은 여인들에 쌓여 평생을 산 것처럼 보이나 그의 가슴에는 언제나 텅 비어 있는 허전함으로 둘러 쌓여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길상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