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학 이야기

똥패

아리박 2009. 10. 9. 03:50

 

 

똥패  /  박이화

 

화투라면
꾼 중의 꾼이었던 나도
다 늦게 배운 고도리 판에서는
판판이 깨어지고 박살납니다.
육백시절의
그 울긋불긋한 꽃놀이 패를
(그러나! 고도리 판에서는 만년 똥 패를)
미련 없이 버리지 못하기 때문이지요.
그러니까 나는 저 한물간 낭만주의에 젖어
이 시대의 영악한 포스트모던에 영합하지 못했던 겁니다.
사랑도 움직인다는 016 디지털 세상에서
나는 어리석게도 아날로그 주제에
빠져 있었던 겁니다.

그래서 지금 내 생애도
버리지 못하는 패가 하나 있습니다.
젖은 꽁초처럼 미련 없이 던져야 하는 데도
도무지 홍도의 순정으로
내 손목을 잡고 놓아주지 않는 패가 하나 있습니다.
그렇습니다. 사랑이 더 이상 히든 패가 아닌 세상
잊어야 하는 데도
언제 어디서나 흥얼거려지는 당신
흘러간 동숙의 노래처럼
그리움이 변해서 사무친 미움이라면
당신은 분명
내 생애 최악의 똥 패인지 모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