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작시

묵비권

아리박 2012. 12. 30. 10:19

묵비권

 

생대구 한마리 수산시장에서 잡아와

해륙의 경계를 그어 분리한다

 

 

온 바다를 헤집고 다닌 큰 입과

지느러미와 꼬리 날개는

바다를 얕잡아보고 비늘에 새긴 문신

 

해수면 종횡무진 깍두기까지 다 먹어치운 몸집

살점 툭툭 불거져 세상을

겁주고 놀래킨 전과다

 

이름값 하느라 굴곡진 머리뼈에 붙은 찰진 거드름

살아서는 순순히 진술할 수 없는 묵비권

넋 빠지게 고아내면 최후 진술로 우러나온다

 

빈틈 하나없이

소화해낸 내장 안을 가득 채운

허옇게 쌓아 숨긴 곤이의 축죄

 

마지막 계절 눈 내리는

섣달 그믐까지는

다 풀어놓고 갈 일이다

 

 

 

                                 *  대구는 설어(鱼) 라고 해서 눈 오는 철에 먹아야 제 맛이다

                                    또 배 안에 가득 들어있는 곤이를 맑은탕으로 끓여야 담백 고소하다

                                    요즘 동해안에서 대구가 많이 잡힌다고 한다

                                    눈이 많이 쌓인 연말 생대구 한마리 사다가 끓이면 제철 맛일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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